나를 인터뷰 하는 사람은 꼬꼬마 때 동생입니다

나는 내가 좀 못 마땅합니다만

by 박민우

(2018년 8월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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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 역에서 강변역. 한강이 펼쳐진다. 양복 입은 남자가 주머니에서 갤럭시를 꺼낸다. 카메라를 켠다. 자기 얼굴이 나온다. 아냐, 아냐. 뒤집는다. 한강이 끝나간다. 찰칵, 찰칵. 강변 역 그냥 건물을 찍는다. 지우진 않는다.


아파트 값이 폭등이다. 특히, 서울. 특히, 강남. 사람들은 분통이 터진다. 뼈 빠지게 벌어도 집 한 채 못 산다. 자기 집이 없으면 저주받은 삶. 우리 모두 화냅시다. 서울이어도 빌라 안 되고, 집값 싸도 지방 안 되고, 전세도 지긋지긋. 집값 오르는 서울에 내 아파트 한 채. 그래야만 화 안 내겠습니다. 집 값 올라도 팔아야 돈. 더 오를까 봐 팔지 못 하고, 내리면 옛날 생각에 못 판다. 집에 갇힌다. 그래도 숫자 커졌으니, 안심. 그 집에서 평생 살다, 죽는다. 남의 집이 오르면 화가 나는 걸 어떻게 해? 약 올라라. 약 올라라. 인간은 원숭이. 화가 나 미치겠다. 너무 쉬운 약 올리기.


놀아나지 않기.


쉽지 않아서, 다짐.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하나도 안 아픈 세상이어야 한다. 집은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면 고민해야 하는 물건. 물건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한다. 집값은 올라도, 모든 게 담담, 모든 게 시들. 초조함이 없는 자본주의는 시체. 재미가 없으니, 가격도 시들. 더 늦기 전에 사둡시다. 이런 사람이 없는 세상. 지루하지만, 그게 천국. 배 아픔은 진짜 이상한 예능. 허접한 리얼리티.


Travie 여행잡지 인터뷰 약속. 성수역.


어떻게 보일까? 거울을 한 번 더 본다. 신경 안 쓰고 살다가, 망했다.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잘 안 보는데, 보고 싶지 않아서다. 성수역 화장실 거울, 괜히 봤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지방이식, 필러 이런 정보를 자주 검색했다. 허벅지에서 지방을 뽑아 얼굴에 넣어야겠어. 앙상한 얼굴이 싫다, 왜 이렇게 말랐어? 매년 백 번 이상 듣는 이야기.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나는 엑스레이 미라가 되었어야지. 고민 끝에 자연스럽게 늙겠어. 내 딴엔 대단한 결심. 당장의 돈도 돈이지만, 계속 개보수할 돈이 엄두가 안 난다. 용기만 있으면 돈이 굳는다. 자연스럽게 늙을 용기.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이 가장 두렵다. 왜 이렇게 늙었어? 충격의 표정이 싫다. 내 용기를 후회하게 한다. 소현이는 Travie 잡지의 왕고참. 잡지 경력 20년 차. 성당 2년 후배. 스무 살 나는 무려 성당 초등부 선생님. 지금은 안 다닌다. 26년 만의 재회. 인터뷰하기. 옛날의 내 직업. 이젠 내가 답하는 입장.


-박민우가 누구지? 낯이 익긴 하는데. 학교 사람? 성당 사람? 잘 기억 안 나서, 성당 동기들한테 물어봤어요. 민우 오빠 몰라? 민우 형이잖아. 동기들은 다 기억하더라고. 아, 성당 사람 맞구나. 민우 오빠구나. 맨 처음엔 정말 누구지? 했어요.


나를 기억한다는 건지, 못 한다는 건지. 삐치면 나만 못난 놈 되는 절묘한 공격. 곤두선다. 성수역 카페 사진창고. 예전에도 와본 곳. 좋아하는 곳.


-오빠, 아시아를 간 게 언제죠? 남미는요? 남미랑 아시아 사이가 비어요. 뭘 하신 거죠?


무슨 인터뷰하는 로봇이야? 비다니? 기록이 없으면 비는 시간이야? 소현아, 질문이 너무 숨 막혀. 릴랙스. 릴랙스는 내가 필요하다. 나를 지켜야 한다. 반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빈다는 그 시간, 뭘 했더라? KBS 아침방송도 했고, 라디오 게스트도 했고, 테마 기행 출연도 했지. 시간을 채웠음을 증명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모양이야. 소현이는 그대로다. 나만 늙었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


잠시 올 때 버스 이야기. 맨 둬 다섯 자리가 비었다. 가운데 앉는다. 곧 누군가가 옆에 앉겠지만, 내가 선택할 필요는 없다. 끝까지 내 옆이 텅텅 비지는 않겠지? 박민우, 정신병자. 피해망상증 환자.


한 남자가 여자 옆에 선다. 여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여자가 일어선다. 남자는 창가 쪽에 앉는다. 여자는 다시 앉지 앉는다. 그냥 일어선다. 곧 내리나? 아니다. 남자는 여자 쪽을 힐끗, 여자는 못 본 척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뒤따라오던 사람들도 그 자리에 못 앉는다. 차가 부릉, 뒤에, 뒤에 오던 남자, 상황을 전혀 모르는 남자가 그 자리에 앉는다. 나는 당신 옆이 싫어요. 당신이 왜 내 옆에 앉으려고 하나요? 내가 그 남자였다면, 치명타. 회복하는데 시간 꽤 걸렸을 것이다. 내 옆에는 덩치가 굉장히 큰 남자, 게임을 한다. 불편하지만, 불편 정도야 뭐.



-오빠, 그런데 블로그에서 보니까, 이력서란 글 쓰셨잖아요. 오빠 정도 되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블로그에 썼지. 박민우식 이력서. 저는 돈이 필요합니다. 일거리 없을까요? 저를 불러 주세요. 강의 대환영. 장황하게 풀어쓴 글. 얼굴이 화끈. 박민우는 솔직하다. 솔직함이 후회될 때는 이런 때. 들키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들킬 때. 가족이라든지, 오늘의 쳔소현이라든지. 굽실거리지 말아요. 왜 그렇게까지. 그런 뜻이겠지? 창피하다. 창피하지만 ‘오빠 정도 되면’ 이란 말이 듣기 좋다. 소현이나 나나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예민하다. 말도, 글도 가려서 한다. 상대방의 말도 분석한다. 분석이 과해지면 안 하느니만 못해진다. 그냥 기운만 빠진다. 진심은 말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아닌데도, 피해망상증 환자인 오빠는 벌벌 떤다. 아니, 너도 벌벌 떨고 있을 거야. 우린 약하다. 이것만 툭 터놓고 시작해도, 배꼽 잡고 웃을 일이 더 많아질 텐데. 아무것도 아닌 걸로 힘 빼며 살았어. 바보처럼. 죽을 때가 되면 그게 가장 후회된다는데, 그걸 못 놓는 내가 등신 같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빙글빙글 어지럼증이 도졌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가 놓지 못하는 허황된 것들을 쓰고 싶어요. 후회나 비참함도 관심이 많아요. 그런 감정을 소중히 다룰 수 있어야겠죠. 내 약함을, 흉함을 내가 토닥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조금씩 저를 받아들이며 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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