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명 사망, 태국의 끔찍한 총기 사건

누가 이 병사를 악마로 만들었을까요?

by 박민우

태국에서 가장 큰 TV 채널이 채널 3입니다. 3번 채널이란 얘기죠. 우리로 치면 KBS 정도 되겠네요. 악당과 주인공이 대치를 하다가요. 악당이 손가락으로 총 들고 있는 주인공을 꼼짝 못 하게 해요. 자기편에게 총구를 겨누게 하죠. 성인들이 보는 시간대에 참 신선한(?) 장면입니다. 광선이라도 CG로 쏴 주든가요. 그냥 손가락에 힘만 주면, 흑마술 되는 겁니다. 다 큰 어른들이, 요런 날로 먹는 드라마를 입 헤 벌리고 봐요. 우뢰매나 울트라맨도 진지하게 몰입해서 볼 사람입니다. 그런 나라입니다. 태국이요.


그런 태국에서 엄청난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요. 짜크라판 톰마라는 선임 하사관이 상사와 상사의 장모를 차례로 죽이고요. 뛰쳐나와서 보이는 대로 총질을 해요. 아이에게도요. 왜 저를 쏴요? 되묻는 아이에게 두 번째 총알을 겨눕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해요. 아이의 아버지는 펑펑 울며 인터뷰를 해요. 같이 저녁 먹자고 부르지만 않았어도, 그냥 더 뛰어 놀았을 아이였대요. 같이 저녁 먹자는 통화가 천추의 한이 됩니다. 무장한 채 쇼핑몰로 들어가서요. 또 총알을 갈겨댑니다. 기관총을 가지고 있었대요. 사람들은 혼비백산 숨기 바빴죠. 열아홉 명이 숨은 방을 계속 열려고 해서요. 그 열아홉은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막고, 공포에 떨었대요. 공포 영화도 이런 공포영화가 없죠. 포기한 병사는 옆 방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던 다른 세 명을 사살해요. 어떤 방에 숨었는가에 삶과 죽음이 엇갈렸던 거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집을 팔았대요. 상사가 말입니다. 거의 두 배 가격에요. 뒤늦게 알아채고는 집값을 돌려달라고 하죠, 너는 그러면 감옥 간다. 상관이 협박을 했답니다. 눈이 뒤집힌 거죠. 백 프로 밝혀진 사실은 아닙니다. 목격자의 증언이라면서, TV에서 나오네요.


-부자는 남의 돈을 빼앗아서, 부자가 되지. 지옥에서도 그 돈을 쓸 수 있을까?

-차라리 패배자가 편하다.


사람을 죽여가면서도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남겨요. 생중계까지 해요. 진짜 미친 사람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이것도 태국 뉴스에서 본 건데요.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요. 한 사람이 무기를 들고 반항을 하는데요. 우리가 볼 땐 이제 지쳤겠구나. 이 시점에서도 맹렬하게 다시 달려들고, 아무나 죽이려 하더군요. 움찔하는 법이 없어요. 죽여야겠다. 꼭 죽여야겠다. 망가진 스프링 쿨러가 끝없이 돌아가듯이요. 지치지도 않고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더군요. 병사는 새벽녘에 사살됐어요. 사살되기 직전에 죽인 한 청년은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남겨요. 아직까지 무사하다고요. 새벽 네 시까지 살아있었어요. 몇 시간을 더 숨어있었으면 될 것을.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저 세상으로 떠났네요.


태국 사람들이 얼마나 겁이 많냐면요. 귀신 이야기에 환장해요. 귀신을 믿지 않으면 환장할 이유도 없죠. 귀신 목격담만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국민 프로그램일 정도니까요. 죄짓는 것도, 그래서 엄청 무서워하죠. 살인마인 이 남자는 착했다. 성실했다. 내성적이었다. 이웃과 친구들의 증언은 대체로 그래요. 총알을 갈겨대는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는 말까지 페이스북에 남겨요. 악마 맞죠. 악마가 안 될 수도 있었어요.


꿈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우린 모두 명심하며 사나요? 약자에게 충분히 겁먹고살고들 계시나요? 그게 쉽지가 않아요. 만만하거든요. 약자가 뭘 못 하거나, 따지려고 하면 더 밉거든요. 이상하죠? 강자가 그러면 당당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만만한 것들은, 그냥 밟아줘야 해. 강자의 폭력을 합리화하죠. 겁을 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분노는 똑같이 느껴요. 약자는 못 느낀다? 그게 바로 사이코패스죠. 뉴스가 실시간으로 중계될 때는 숨도 못 쉬겠더군요. 한 번도 굶주려보지 않은 나라. 밀림에 들어가면 굶어 죽을 일이 없다는, 하늘이 내려준 풍요의 나라. 돈이 오가고, 법이 생기고, 계층이 나뉘고선 화가 난 사람들이 폭증하고 있어요. 금은방을 터는 무장강도, 채무에 자살하는 연예인, 연쇄 살인마들이 아침 뉴스에 꼬박꼬박 등장합니다. 행복해지자고 돈을 버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돈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어요. 잡아먹히는 줄도 모르고, 사람 탓만 하네요. 돈은 아무 잘못이 없다네요. 아픈 사람이 참 많아서, 저도 아픈 밤입니다. 죽은 이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무시무시한 쇼핑몰에서 탈출한 이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사해서 감사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흔들리니까 글도 쓰고 싶어집니다. 아프니까, 또 글이 나오더라고요. 저의 작은 떨림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당치도 않은 큰 꿈을 꾸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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