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살기 - 다 싫다, 아들아!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를 봅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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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in love 그렇게 좋아하실 거면서 왜 안 오겠다고 하셨사옵니까?)


-어제저녁에 짐 다 챙겨 놓으라니까.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이번 여행은 치앙마이와 빠이(Pai). 두 곳에서 26일이다. 어디서 얼마나 머물 것인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달렸다. 빠이가 아니다 싶으면, 치앙마이로 다시 내려올 참이었다.


-뭘, 귀찮게 옮겨. 그냥 있어.


아버지는 빠이를 택하신다. 빠이를 택했다기보다는, 다시 짐 꾸리는 게 싫으시다. 숙소도 마찬가지. 지금 머무는 숙소가 좋아서라기보단, 그냥 다 귀찮다. 있던 곳에서 쭉 있다가 한국 가는 것. 아버지의 바람이다. 5일까지만 예약한 이 방은, 우리 뒤로 예약이 꽉 찼다. 옮겨야 한다. 첫날 노발대발 이것도 방이냐며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하루 만에 아버지는 적응하셨다. 치앙마이든, 빠이든 상관없다. 덜 귀찮은 쪽이 최고. 어쨌든 이 방에선 떠나야 한다. 체크 아웃 시간은 열한 시지만, 아버지는 일곱 시부터 짐을 싸신다. 아버지는 늘 화가 나있고, 모든 게 다 답답하시다.


-유명한 카페가 있으니까, 일단 거기로 가요. 거기서 새 숙소로 옮기자고요.


돈 내고 커피 마시는 게 무엇보다 아까운 아버지에게, 나는 또 이런 도발을 한다. 시장 나가서 밥 먹고, 산책 좀 하면 끝. 그리고 종일 유튜브로 사극이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신다. 어머니는 손빨래를 하려고, 여기까지 오셨나 싶다. 내 여행은 늘 보잘것없는 일상으로 채웠지만, 어머니, 아버지와는 그래선 안 된다.


Coffee in love.


빠이에서 가장 예쁘다는 카페에서 눈호강이나 합시다. 어떻게 모시고 가지? 나는 오토바이 한 대를 빌렸다. 아버지는 나보다 오토바이를 훨씬 더 잘 타시지만, 한 대 더는 안 된다. 다 돈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지출에 느긋해질 수가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총 천삼백 달러를 가지고 오셨다. 백오십만 원이 넘는 큰돈이다. 휴, 살았다. 사오백은 드는 여행이라, 혼자 끙끙 앓았다. 그 돈이면 충분하다. 충분의 기준이야 다르겠지만, 나라면 해낼 수 있다. 하루 방값 오만 원을 안 넘기면 백만 원 정도에 맞출 수 있다. 교통비, 식비, 기타 비용은 있는 돈으로 어떻게든 메꿀 수 있다. 비행기 값이나, 기타 여행 준비로 이백만 원이 나간 상태지만, 괜찮다. 넘치는 경비로 여행 다닌 적 없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예산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방값, 밥값, 교통비로 나가는 돈에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다. 가난한 나라니까 셋이서 백만 원이면 뒤집어쓰겠지? 웬걸? 딱히 하는 거 없어도 돈은 쑥쑥 나간다. 한식 한 번 먹으면 사만 원이다. 초반에 매일 한식에, 호텔 식사를 했는데, 그때 충격이 크셨던 것 같다. Coffee in love까지 세 번을 왕복하기로 한다. 어머니를 태우고 약간의 짐, 아버지를 태우고 약간의 짐, 마지막으로 남은 짐 모두. 이렇게 실어 나르면 어머니 아버지와 좋은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할 수 있다. 택시를 부르면 그만이지만, 그 200밧(8천 원) 아끼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어머니를 Coffee in love에 내려놓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노끈을 어딘가에서 주워 오셨다. 내 캐리어를 꽁꽁 묶는다. 우유배달과 구멍가게 사장으로 살았던 솜씨를 발휘하신다. 아래층 태국 여인이 등장한다.


-내가 태워다 줄게요.


숙소엔 방이 총 네 개. 아래층 방엔 태국인 부부가 산다. 월세를 내지 않고, 정원을 관리하며 지내는 부부다. 괜찮다고, 알아서 가겠다고 몇 번을 말했다. 그녀는 걱정 말라며, 아버지를 뒤에 태웠다. 아버지의 표정이 오래간만에 밝아지신다. 아버지는 신장이 149cm다. 150cm가 채 안되신다. 국민학교(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 후배가 집에 놀러 온 적 있다. 서울대 박사 출신, 삼성전자 연구원이다.

-우리 아들과 어울려 줘서 고맙네.


나도, 후배도 당황했다. 아버지는 이런 훌륭한 청년이 아들과 '어울려 준다'라고 생각하셨다. 키가 작고, 배움이 짧고, 볼품없는 사람.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아버지다. 이과수 폭포에서 한국인 단체 여행자를 만났을 때도 아버지는 먼저 다가가셨다. 반가운 마음뿐이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우리도 한국 사람이오. 비슷한 연배의 그들은 아, 네. 뒤도 안 돌아보고, 폭포 쪽으로 사라졌다.

-내가 볼품없이 생겨서 그래.

아버지는 자신의 외모를 탓하셨다. 내 모습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타인의 반응으로, 내 존재를 확인한다. 비슷하면서 다르다. 나는 먼저 다가갈 생각을 아예 안 한다. 관계에 그렇게까지 감격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집단에서 난 늘 비교 우위였다. 다들 나를 찾았다. 내가 당구를 정말 싫어했다. 나랑 어울리려면 카페에서 카페 라테를 시키고, 파르페를 먹어야 했다(90년대 고대 국문과에 그런 놈도 있었다). 그럼 지질한 박민우는 콘셉트였던 거야? 그랬던 나는 졸업할 때쯤 날개가 꺾인다. 손바닥만 한 원형 탈모, 취업 실패(당시 잡지사에 다녔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당장 죽을 것 같은 우울함에 숨조차 잘 안 쉬어졌다. 남미 여행은 공포의 몸부림이었고, 어느 순간 물 위로 뜨는, 수영이 저절로 되는 신비체험이었다. 숨이나 쉬어지면 좋겠다. 그랬는데, 황홀한 스노클링이 나를 기다렸다. 누추하고, 지질한 나도 나고, 누군가가 찾고, 반기는 나도, 나다. 아버지는 여행이 싫다. 기대되는 것도 없다. 먹는 건 다 이상한 것뿐이고, 풍경도 그냥 그렇다. 좋은 풍경은 좋지만, 감동까지는 아니다.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우리말로 하고, 잘 삭힌 홍어가 있고, 밤마다 사극을 볼 수 있는 한국이 좋다. 낯선 음식이라 더 맛있다는 아내와 아들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서양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카렌이라는 금발의 여자가 이부자리와 수건을 챙겨주고, 이제는 태국 여자가 오토바이까지 태워준다. 여행자란 이유로 특혜를 받는다. 배려의 대상이 된다. 열심히 배려를 해야 겨우 친구가 유지되는 아버지는 이런 환대가 난생처음이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위태롭다. 그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이 황홀하다. 다른 나라 사람이면 더, 더 황홀하고, 신기하다. 인간이 그리 가벼운 걸 어쩌겠는가? 결국 알고 보니 사람 다 같더라. 그런 바람직한 교훈은 나중에 깨달아도 된다. 인생학교에선 아버지가 선배지만, 여행학교에선 아들이 선배다. 아들 눈에, 아버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새내기다. 예쁘고, 예쁜 아이다. 아버지의 모처럼 밝은 표정에, 나도 안도의 숨을 내쉰다.

아버지는 또 이 여행을 불평하고, 나는 아버지를 불평할 것이다. 일 년 후에는 아버지도, 나도 같은 답을 내놓을 것이다. 우리가 그때 태국에서, 빠이에서 나란히 오토바이를 타고 카페라는 곳을 갔던 날, 그 아침, 그때의 날씨는 참 좋았다. 그런 때가 다시 올까?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못 오는 처절한 황홀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전부를 걸고 내기를 해도 좋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진동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불완전한 삶이, 완전함보다 못하지 않음을 작게 증명하겠습니다. 매일 오시면, 매일 흔들리는 저를 글로 보십니다. 자주 오세요. 늘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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