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살기 - 태국음식이 괴롭다

아버지의 태국 음식 극복기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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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에서 셋이 매일 같이 자는 상황은 그러고 보니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이후 처음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한국 시간에 몸이 맞춰져서 새벽 네 시쯤이면 눈이 떠진다. 스마트폰부터 찾을 게 뻔한데, 환한 곳에서 보시라고 불부터 켠다. 그리고 또 나는 잔다. 어머니는 가끔 잠꼬대를 하고, 코를 고신다. 아버지는 쩝쩝, 킁킁 괴상한 소리를 내신다. 나 역시 코를 곤다. 어머니, 아버지, 나는 돌아가면서 깨고, 돌아가면서 잠든다. 돌림노래 같은 잠이다. 여전히 불편하지만, 첫날의 끔찍함은 아니다. 하루하루 놀랄 만큼 덜 불편해진다. 전쟁 중에도 노래자랑을 하고, 만화책을 찾는 게 사람이다. 긴장감이라든지, 거부감은 아카시아 나무뿌리처럼 징글징글하지 않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와 어떻게든 한 방에서 자고 싶다. 같은 건물 옆방도 안된다. 불안해하신다. 스마트폰에 뜨는 밑도 끝도 없는 업데이트 메시지, 광고창을 한 번에 해결해줄 아들이 필요하다. 여권과 지갑을 채갈 이들이 주변에 우글우글하다. 아들은 꼭 붙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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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입맛에 합격, 기특한 카오 니야오 삥)


어릴 적 부모님은 나 대신 세상과 싸워주는 전사였다. 어딘가에서 쥐어터지고 오면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는, 나를 때린 아이네 집으로 향하셨다. 내 새끼를 이리 만든 놈 나와. 아이 싸움은 어머니 싸움이 된다. 골목이 쩌렁쩌렁. 맞은 것도 창피한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 창피하다. 어머니, 아버지는 미아리 사창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셨다. 가게 딸린 작은 집에서 구멍가게를 열고, 생계를 꾸리셨다. 갓난쟁이였으니, 내 기억엔 없는 풍경이다. 어머니의 무용담으로, 그때를 상상할 뿐이다. 창녀와 깡패들이 주 고객이었다. 외상도 안 갚고 또 외상을 달라는 깡패 놈을 우산으로 후려치고, 면도칼을 와작와작 씹으며 얼굴에 뱉겠다는 창녀를 멱살잡이로 쓰러뜨렸던 어머니다. 요즘 나는 안경을 벗고 다닌다. 시력이 덜 나빠질까 나름의 노력이다. 온통 뿌옇고, 짐작뿐인 세상이다. 일흔이 넘은 노인에게 세상은, 안경 없는 나의 시야와 비슷하겠지. 광고인지, 정보인지. 사기꾼인지, 아닌지 온통 불확실한 세상에서 벌벌 떠신다. 꼬부랑 영어 말은 왜 이리 넘치고, 줄임말도 한국어라 우기는 젊은이들은 또 왜 그리 많은가 말이다. 못 알아 들어도 되묻지 못하는 세상에서, 알아들은 척, 나이만큼 현명한 척해야 한다. 적응이 힘에 부치는 세상을 따라가느라 미아리 사창가 여사님은, 쪼그라들고, 온순해졌다.

튀긴 거 싫다. 냄새 싫다. 아버지는 태국 음식이 싫으시다. 쌀국수는 드신다. 모든 쌀국수를 다 드시는 건 아니고, 국물 맑은 거, 싱거운 거, 순한 것만 드신다. 어떤 음식도 눈 앞에 있으면 끝까지 드시기는 한다. 예민한 미각과 후각의 소유자지만, 금전엔 더 예민하시다. 싸면 군말 없이 드신다. 입에 안 맞아도 일단은 드시지만, 두 번 다시는 안 드신다. 어제저녁과 아침엔 크노르 인스턴트 죽을 드셨다. 뜨거운 물 붓고 3분이면 뚱뚱하게 부풀어 오르는 컵 죽.


-그럼 우리만 먹고 올게요.

어머니의 낯선 음식에 대한 적응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상한 향은, 이상해서 더 좋다. 나도 음식과 향에 익숙해지기까지 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입에 넣는 순간, 좋다. 이십 년만 늦게 태어나셨어도, 어머니는 여행자로 사셨을 것이다. 만 명당 한 명 나올까 말까 싶은 여행 천재. 아버지는 그래서 더 심통이 난다.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여행도 취미고, 취향이다. 얼마든지 거부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배신자가 된 기분이다. 아버지의 반발은 외로움이다. 어머니와 내가 아버지보다 더 투덜댔다면, 아버지는 달라지셨을 것이다. 이왕에 온 거, 잘 놀다 가자.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하셨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기여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것 때문에 사실 사람은 죽고 산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기쁘고, 살고 싶다면,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많이 쏘다니고, 많은 걸 먹어본 사람이 나다. 누구보다 까탈스러운 아버지를 상대할 적임자다. 이 멋진 승부를, 짜증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빠이에서 첫날 맛있게 드셨던 새우죽 가게는 문을 닫았다. 향이 없는 태국 음식이 뭘까? 아버지의 취향을 상상하며 음식을 찾으니, 살 게 없다. 먹을 게 없다. 이게 아버지의 막막함이었겠구나. 볶음밥, 볶음국수도 안된다. 기름기는 일단 탈락. 바질이나, 라임이 들어가도 안 된다. 태국 음식 어디에서나 나는 시큼함도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이거다.

카우니야우 삥.

구운 찹쌀밥. 둥글넓적 호떡처럼 밥을 눌러서, 숯불에 굽는다. 구운향이 나긋나긋, 식감은 쫄깃쫄깃. 아버지가 시비를 걸 구석은 없다. 하나에 십 밧. 사백 원이다. 싸기까지 하다. 아버지는 얼마냐 물으실 테고, 4백 원이란 말에 냉큼 집으실 것이다. 과감히 여섯 개를 산다. 두 개를 드실까? 두 개만 군말 없이 드셔도 대성공이다. 네 개를 드시면, 보물 지도를 해독해 낸 기분이 들 것이다. 평생 아들 둘을 먹이기 위해 사셨다. 이제 내가 부모님의 식사를 책임진다. 구운 닭과, 꼬치 몇 개도 산다. 죽만 드셨으니, 많이 시장하실 텐데. 발을 동동 구른다. 오늘따라 음식을 담는 이들의 속도가 굼뜨다.

-이게 뭐냐?

-구운 밥인데요.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예요.

자신감으로 일단 아버지 기를 누른다. 아버지가 밥 두 개를 동시에 드신다.


-하나씩 드세요.


아버지는 두 개를 겹쳐서 동시에 베어 무신다. 왜 그리 성격이 급하신지. 쫄깃하다면 쫄깃하고, 질기다 싶으면 질긴 찹쌀밥이다. 숯불에 구운 밥이라니. 생전 처음 드셔 보시는 음식이다. 보드랍고, 뜨거운 누룽지가 아버지의 입속에서 은은하게 퍼진다.

-먹을만하네. 자네도 먹어 보소. 누룽지 맛도 나고, 계란 맛도 나.

이런 적은 처음이다. 어머니에게 권하셨다. 아버지의 식사 시간이 경쾌할 때도 다 있다. 괴로운 음식아, 냉큼 사라져라. 공포에 눌려, 화급히 입으로 밀어 넣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어머, 어머. 고소하네잉. 아따 맛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활기가 반갑다. 아버지는 네 개의 카오니야오 삥을 내가 담근 태국산 김치와 꼭꼭 씹어 드신다. 심술보 덕지덕지 스크루지 영감이 이제는 순한 토끼처럼, 눈 앞의 음식만 오물오물 씹는다. 불완전한 감정을 끊임없이 분출하며 산다. 별것도 아닌 것들로 발끈하며 살았구려. 진즉에 깨달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사실 불가능하다. 죽음이 코앞일 때, 모든 걸 용서한다. 그 불가능함을 가능할 거라 믿고, 어떻게든 현명해지려고 한다. 몸뚱이에 어울리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기본값임을 명심하는 쪽이, 관계를 건강하게 한다. 덜 기대하고, 덜 실망하는 내가 되겠다. 이번 여행은 잘 끝낼 수 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희망이 보인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나는 외로운 사람인가요? 아닌가요? 글을 쓰기 전과 쓰고 난 후, 전혀 다른 기분이 들어요. 들다가요. 또 같아져요. 결국 그냥 그래요. 몰입하는 순간이 사실은 최고였나 봐요. 그걸 몰입하는 순간엔 몰라요. 몰입하느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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