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왕교자, 너님!
"와, 대박! 12,000원에 비비고 만두 1kg 네 봉지를 주네요. 지마켓이요. 빨리빨리 주문하세요."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가 후끈 달아올랐다.
비비고 맛있는 건 알지.
동원 개성 왕만두를 우상처럼 떠받들던 나를 배교하게 만들었지.
비비고는 원래 비빔밥이었다.
가로수길에 매장도 있었다.
기내식처럼 1회용 고추장 주욱 짜서 먹는 프랜차이즈 비빔밥 집이었는데, 그냥 그랬다.
비빔밥이 맛없기도 힘들고, 맛있기도 힘들다.
그냥 비빔밥이었다.
그런데 만두로 대박을 치다니.
비빌 게 아무것도 없는 만두가 왜 비비고야?
만두와 비비고의 연결 고리는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사라진 쓸쓸한 에어 프랑스지.
찾아도, 찾아도 없어.
나는 이 근본 없는 만두가 맛있다.
맛있어져 버렸다.
비비고 왕 교자 4kg에 12,000원이라니.
싸다고 쟁여 놓는 건 작가에겐 치욕이라서, 꼭 필요한 자제심을 불러냈다.
교자로는 왕교자, 김치왕교자, 새우 왕교자, 김치 왕교자가 있고
군만두로는 고추 군만두, 그냥 군만두
한섬 만두로는 한섬 만두, 소고기 한섬 만두가 있다.
한섬 만두라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름이다.
싸다고 왕교자만 4 봉지 주문하는 사람들이 좀 못 됐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실수지.
왕교자만 1kg(정확히는 1.05kg), 나머지는 380g 전후.
왕교자가 흠 있는 거면 몰라도, 누가 다른 걸 사겠어?
실수야. 누군가가 이번 일로 잘릴 수도 있어.
그러니 작작 좀 주문해, 이 인간 피라니아들아!
나는 두 봉지만 사겠다.
두 봉지는 한섬 만두로.
"두 봉지만 가능하다고 연락 왔네요."
커뮤니티가 다시 술렁였다. 그럼 나머지는 뭘로 바꿔야 하나?
지금 들어가도 주문 가능하냐?
만두가 4kg에 12,000원이 되면, 온 세상이 만두가 된다.
양심적으로 소비한 나는 무사히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떡국에 넣어먹고, 떡볶이에 넣어먹고, 새로 산 에어 프라이어로 구워 먹겠다.
라면에 만두 세 개를 넣으면, 밥을 안 말아먹어도 된다.
만두를 가르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겠다.
3월이 간다.
진달래가 만개하고, 벚꽃 흐드러진 그날이 찾아올 때
샤우팅 자제하며, 만두 트림하겠다.
"주문이 취소됐습니다."
만두는 안 오고, 메시지만 왔다.
시티은행에 11,030원이 재빨리 들어왔다.
공갈 젖꼭지 같은 11,030원이었다.
나는 2kg만 시켰다고, 이 개자식들아!
한섬 만두로 그냥 다 줘도 되잖아.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개망나니처럼 11,030원을 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런 양심적인 소비자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만두를 팔아?
지마켓이야? 비비고야?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라도 쐈어야지.
나의 3월은 잿빛으로 바뀌었다.
미세먼지로 꽉 찬 하늘이, 소로 꽉 찬 만두보다 훨씬 재수 없었다.
나의 3월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새우 왕교자와 고추 군만두를 함께 주문한 건 동물적 감각이었다.
종류가 이토록 많다는 걸 처음 알았고
까탈스러운 입선비들의 추천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새우 왕교자 두 봉, 고추 군만두 두 봉.
새우 왕교자는 고작 315g이니까 1kg의 감동은 없다.
만두 봉지 무게나 확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이 CJ 새끼들아!
떡국에 새우 왕교자를 넣었다.
생굴도 넣었다.
한섬 만두와 왕교자 1kg을 두 손으로 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엄청난 질투심으로, 오늘 밤은 불면의 밤이다.
새우 왕교자가 아무리 맛있어도, 맛있게 먹을 마음이 없다.
새우가 보드라운 만두피 사이에서, 오로지 살점만으로 툭툭 터진다.
모든 수학자와 미식가가 동의하는 그 지점까지 만두소를 채워놨다.
만두 피는 세상에 없는 탄력과 두께로
평생 만두만 만들어 판 사람들을 모욕한다.
영혼의 거리가 만두피와 만두 사이에 존재하는데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일종의 불가사의로
논리로는 답이 없고
그저 영혼이 조금씩 움찔대는 불쾌함에
나는 졌다
너는 맛있다
방언만 터지게 한다.
그 맛있는 굴이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이런 만두를 1kg씩 먹겠다는 애초의 불손함이 누그러지고
미슐렝 가이드에 봉지 만두를 못 올리게 하는
프랑스 꼰대 미식가들이 답답해진다.
나는 이제 이 만두를 다섯 개 이상 먹지 않을 것이다.
딱 다섯 개를 쪄서
하나를 먹고, 사라진 하나가 내 위장에 있음을 확인하고
영원하지 않은 삶을 축복하듯
영원하지 않은 다섯 개를 축복하며
또 하나의 새우 교자를 집을 것이다.
간장 따위로 더럽히지 않고
가능하면 샤워로 몸부터 깨끗이 한 후
하나씩, 하나씩
스마트 폰도 끄고 하나씩, 하나씩
비비고 새우 왕교자를 몰랐을 때의 나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어서
나는 내가 낯설다.
벚꽃 만개하는 봄만 기다리면 된다.
PS) 고추 군만두는 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