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꼰대의 답
네, 누구나 다 좋아해야죠. 여행이니까요.
이런 답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여행은 놀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꼰대 같은 답을 해보려고요.
얼마 전 강연에서 그런 질문을 받아요.
아이가 여행을 가도 게임만 해요.
어떻게 하면 여행에 재미를 붙이게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아이들에겐 스마트폰이 최고죠.
어디를 가도요.
저는 게임을 할 줄 몰라요.
그 큰 재미를 모르죠.
엄청 재밌겠죠?
한 번 시작하면, 허우적, 허우적
탈출이 불가능한 늪일 거예요.
그 아이가 게임을 포기하고
여행에 눈을 뜨게 할 방법은 몰라요.
스스로가 찾아야 하죠.
못 찾을 수도 있어요.
게임도 여행이죠.
저에겐 미지의 시공간이죠.
외계행성과 같은 의미로 신비로워요.
세상이 달라지는데
다른 친구 들이어야죠.
같은 사람만 계속 태어나는 것도 징그럽죠.
비행기를 타도, 불편하기만 하고
어디를 가도 게임 속 박진감 만한 풍경은 없죠.
그런 친구들이 여행 자체를 거부하는 시대도 올 거예요.
여행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의 가치가 더 큰 사람
지금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들에겐 여행, 여행하는 세상이 너무 요란해요.
벅차죠.
작고 안락한 가치만 쫓는 사람들이 무시받는 기분도 들고요.
저야말로, 여행이 참 싫었어요.
지금도 캠핑에 흥분하는 사람들이 좀 낯설어요.
오들오들 떨면서 구워 먹는 삼겹살이 그렇게 좋을까요?
자갈이 등짝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잠이 그렇게도 달달해요?
FM 라디오 틀어놓고 막힌 고속도로에서 한숨 내쉴 때, 후회는 안 돼요?
잠은 편히 자야죠.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1박 2일만 다녀와도 30만 원 우습게 깨지죠?
집에서 뒹굴뒹굴 나 혼자 산다를 보다가요.
깻잎 떡볶이 시켜 먹는 재미를 이길 수 있어요?
치즈 토핑까지 추가했어요.
이 붉은 고소함을 이길 수 있을까요?
훨씬 싸기까지 한데도요?
네, 이겨요.
저는 꼰대입니다.
여행 꼰대죠.
돈 없고, 시간 없고
때론 직장을 때려치워야 해요.
그런 사람에게도 여행 가라고 해요.
사표를 내고서라도요.
네, 저는 당당합니다.
수중에 백만 원 있고요.
전 재산입니다.
놀면서 탕진했어요.
길에서 뿌렸어요.
적어도 위선자는 아니죠.
낯선 세상, 뭐든지 불안하죠?
안전할까요?
먹어도 될까요?
가도 될까요?
그 불안이 가치예요.
내 존재를 걸고 고민해요.
걱정은 머릿속에 없죠.
눈 앞에 있어요.
집에서 우리 고민요?
다 머릿속에 있죠.
뉴스를 통해
통장잔고를 통해
분석과 짐작을 통해 잘도 자라는 고민들이죠.
머리통이 깨질 것 같아요.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나의 최선은 여전히 부족해서요.
갚아야 할 할부금
꼭 사고 싶은 자동차
장만해야 할 아파트
애한테만은 돈 안 아낄 거니까 좋은 유치원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잠깐 안심하고
길게 불안해하죠.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
딱 이 한 줄로
고민은 우리를 샅샅이 물어뜯죠.
네, 길에 답은 없어요.
우리를 진짜 세상으로 내모는 힘은 있죠.
도와주세요.
알려 주세요.
나를 가뒀던 소심함이 무너지고요.
부탁을 해요.
애걸을 하죠.
예상치도 못한 추위에
양말 두 켤레를 겹으로 신고요.
오들오들 떨면서 몸을 구부려요.
체온을 알아서 보존하는 동물이 돼요.
난방비를 걱정하고
전기장판의 전자파를 걱정하는 나와는 달라요.
허물 몇 겹을 벗은 채로 사람을 만나요.
비슷하게 허물을 벗은 떠돌이를 만나고
현지인을 만나요.
현지인에게 당신은 새로운 경이로움이죠.
당신은 당신의 가치에 너무 둔했어요.
그들은 가끔 놀랄 만한 말들을 해줘요.
당신의 아름다움이라든지, 매력이라든지요.
평생 들어보지 못한 말도 들어요.
당신도 평생 해본 적 없는 칭찬을 해줘요.
연대의 감정을 느끼죠.
집에 두고 온 모든 안락을 포기할 용기가 생겨요.
귀납법으로 사세요.
귀납법.
경험으로 결론을 내는 귀납법이요.
연역법
결론이 먼저, 과정을 꿰어 맞추는 연역법의 삶 말고요.
여행이 지겨우려면, 여행을 하세요.
그렇게 내린 결론이어야 해요.
그때 싫어하세요.
여행 지긋지긋해하세요.
내가 속한 세상이 최고.
그때의 안락함은, 다른 안락함이죠.
그런 허무한 결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탕진하세요.
활자, 문자, 정보만으로 이미 여행이 싫은 이들에게 드리는
감히 충고예요.
갑자기 꼰대 방언 터졌네요.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