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이기심 반, 사랑 반, 가족

아니 그래도 그 석양이 어떤 석양인데요

by 박민우
20200107_173524.jpg
20200107_173701.jpg

(빠이 캐니언의 석양, 경기도 광주의 석양에 의문의 1패 기록)


-그러니까 내가 태국 안 온다고 했지? 이러려고 왔어?

아침 일찍 빠이의 대불상을 보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삼십 분 더 걸으면 폭포가 나온다. 아버지는 삼십 분 더 걷자. 어머니는 더 못 걷겠다. 잠시 실랑이.

-집에 가면 뭐 할 거야? 이러려고 왔어? 내가 그래서 태국 안 온다고 했지?

외진 곳의 숙소. 걸어서 나오기엔 부담스러운 거리. 오토바이를 한 대 더 빌릴까요? 나는 오토바이 운전 못 한다. 그러니까 왜 그리 외진 곳에 방을 예약했냐? 공격의 의도는 이 여행을 망치는 것. 일상의 반복, 일상의 나열. 원래의 내 여행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매일 하나씩은 하자. 야시장을 가고, 일출을 보고, 카페를 가고, 맛집을 갔다. 치앙마이에서, 빠이에서 꼭 해야 하는 것들을 챙겼다. 그게 여행이냐? 그냥 밥 먹고 차 마시는 거지. 아비를 이렇게 멀리까지 데려와놓고, 그게 다야? 폭포 하나 더 보겠다는데, 그것도 안 가줘?

나는 어쩐지 여유가 있다. 그날로 여행사로 달려가서 투어를 신청한다. 1인당 6백 밧(24,000원). 점심 포함.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매일 칭얼대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마음이 된다. 투어를 신청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한다. 나는 노력하고 있다.


-아침엔 아무것도 안 주냐? 투어라면서? 한국은 김밥이라도 주는데. 화장실 봤어? 아이고, 더러워서. 한국에서 이런 화장실로 장사하면 당장 난리 난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한 귀로 흘려듣는다.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지. 아버지가 이리도 애국자다. 우리나라의 모든 게 너무도 자랑스러우시다. 한국이 기준이고, 한국의 평균에 못 미치는 태국이 한심하시다. 일본이 가장 잘 살던 90년대 아버지는 불법 체류 노동자였다. 오사카 건설 현장에서 한 달에 삼백만 원은 족히 버셨다. 그 돈으로 분당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우리 형제 대학 교육을 책임지셨다. 오래 머물기도 했고,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났던 오사카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계시다. 놀라운 건, 그리 사랑하는 일본에서조차 우동, 라면, 우메보시, 나또 등 대부분의 일본 음식에 진저리를 치셨다는 것이다.


-볶음밥은 그냥 먹지. 비슷하니까.


한국 볶음밥과 비슷해서 일본에선 무조건 볶음밥을 주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까다로운 입맛은 뿌리가 깊고, 어떤 나라든 공평하게, 진저리 나도록 진저리 치신다. 목이 긴 카렌족 마을, 빠이의 가장 오래된 사원, 노천 온천, 대나무 다리, 폭포, 빠이 협곡을 차례로 보는 투어다. 어머니, 아버지는 TV에서만 보던 카렌족을 코앞에서 마주쳤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하셨다. 목이 긴 걸 이미 알았던 카렌족이, 긴 목으로 스카프와 장신구를 팔고 있을 뿐이었다. 스카프와 동전 지갑이 엄청 비쌀까 봐 벌벌 떠셨고, 백 밧(4천 원), 백오십 밧(6천 워)에 스카프, 원피스를 장만하고는, 어머니는 흡족해지셨다. 온천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돌이켜 보니)을 보이셨다. 어머니는 화장으로 답답한 얼굴을 온천물에 씻어도 되냐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며, 흐르는 온천물에 얼굴을 닦으셨다. 그래도 물어 보신 게 어디인가?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내가 군기반장이긴 하구나. 악역은 필요하다. 아버지의 표정은 확실히 더 생기가 돈다. 네덜란드 부부 아기가 아장아장 걸을 때마다 아버지 눈이 반달로 휘어지신다. 네덜란드 부부와 아기, 이스라엘 아가씨 두 명, 우리 가족 셋. 총 여덟 명이 함께 이동한다.


-아기랑 사진 한 장만 찍어 봐라.

아버지의 명령이다. 아기에게 쏟아지는 태국 사람의 지나친 관심과 사진 공세에 피곤하다는 말을 아기 아빠 스테판은 한숨을 쉬며 내게 했다. 나는 거래를 따내야 하는 술상무가 된다. 엄마 앤이 아기를 안고 타고, 내릴 때 차문을 열어주고, 닫는다. 사진 찍어 줄까? 스냅 사진사를 자처하며 가족사진도 여러 장 찍어 준다.

-아버지가 아이를 너무 예뻐하셔서 그러는데,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

-그럼!


아기 엄마 앤이 활짝 웃는다. 내가 이룬 성과다. 어머니, 아버지 보셨습니까? 아들이 이토록 유능합니다. 거래 몇 개는 우습게 따냈을 술상무가 어머니, 아버지 아들입니다. 대신 알콜성 간경화로 오늘내일하며 병실에 나자빠져있어야겠지만요.

-아이고, 이뻐라. 쪽!

웃어, 웃어. 아기의 표정을 살리려고 나는 온갖 아양을 떠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아기의 손을 잡더니, 손등에 쪼오옥,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정도로 힘차게 입술을 문대셨다.

-아, 아버지이이이!!!!!


또, 또 나는 이성을 잃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수상한 할아버지의 타액에 관대한 어머니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어머니도 아버지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박력 있게 선을 넘고 계셨다. 아버지는 얼음이 되고, 허둥지둥 당황하지 않은 척 시침을 떼신다. 대신 말수가 급격히 줄어드신다. 아버지는 내가 소리를 높였던 지점을 착실히 모으신다. 다음 공격에 활용할 불쏘시개로 쓰신다. 나의 목소리 탓인지, 앤은 한사코 괜찮다고 한다. 정말 괜찮았는지, 그날로 내 페이스북에 친구 신청을 하고는, 몇몇 사진에 좋아요까지 눌렀다.

-어제 드셨던 구운 밥, 오늘도 드실래요?

-오늘은 못 먹겠다.

저녁밥은 뭘로 드실래요? 투어가 끝날 때쯤, 나는 물었다. 구운 밥, 카오니야오 삥을 그렇게 맛나게 드시더니, 네 개를 드시더니. 그새 싫증 나신 걸까? 아, 정말 아버지랑 못 다니겠다. 이렇게 짜증을 내려던 참이었다. 잠시, 아주 잠시 내 짜증에 제동을 걸어 본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울컥해야 마땅하다. 아버지도 노력을 하고 계신다. 아비가 맛나게 먹을 걸 기대하는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드셨다. 연기를 하셨다. 노력이었다. 나름 최선을 다하는 건 나 혼자인 줄 알았다. 아버지 역시 이 여행을 지키고 싶으신 것이다. 하다하다 안 되니 나오는 불만이고, 푸념이다. 그걸 아들은 시비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도 이기적인 모습과 사랑을 골고루 섞어서 가족이 됐다. 일방적인 천사라면 더 좋았겠지만, 날개 없는 인간은 반성하고 발전하면 된다. 우린 매일 엄청난 수의 장애물을 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값진 시간임을 명심하겠다.

나는 매일 확신하고, 절망한다. 나의 솔직함을 나열하다 보니, 조울증 환자처럼 들쭉날쭉. 나도 감당 안 되는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다음날 아머니와 핏대를 세우며 으르렁댈 줄은 몰랐다. 그런 아침이 우릴 기다릴 줄은 정말 몰랐다. 아, 오늘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빠이 캐니언의 석양이었다. 가이드도 자신만만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들어가는 입구 초입에서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 하셨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는 게 훨씬 낫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미약하게 남아서, 미약한 진동이 되고 싶습니다. 떨림은 불완전해서, 아름다워요. 우린 그렇게나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살기- 미스터 트롯에 홀린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