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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아빠VS 아들. 죽어도 못져

지기 싫어하는 것까지 똑 닮았죠?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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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은 조금 볼만 하구나)


-아니, 치앙마이가 뭐가 좋다는 거냐?

-신발을 꼭 그런 걸 신어야 하니?

-우리 아들은 뭘 시작해도 제대로 끝내는 법이 없어.

-얼굴색이 왜 그 모양이냐?

아버지는 아들을 공격하고 싶으셨던 걸까? 그냥 나오는 말을 하셨을 뿐일까? 왜 하나같이 아플까?

-아버지, 재채기를 그렇게 크게 하시면 어떻게 해요?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맹인 가수는 아버지의 재채기 소리에 노래를 중단해야 했다. 아이고, 놀래라. 가슴팍을 움켜쥐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재채기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 여기 카페 아니라고요.


한식당에서 아버지는 식사를 끝내시고, 태국 종업원에게 커피 달라고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는 한식집에 왜 공짜 커피가 없냐며 인상을 쓰셨다.


-아버지, 저 책 열 권 낸 사람입니다. 제대로 끝내는 게 없다뇨?


이 말을 꺼낸 순간, 나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깟 잔소리에, 나의 책 열 권을 들먹이다니. 내가 더 형편 없어졌다. 가족은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는 데 천부적이다. 천부적인 아버지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약한 존재다. 말도 안 통하고, 몸도 늙었다. 아들이 지팡이고, 안경이다. 한때는 엉덩이가 부풀어 오를 정도로 매질을 하고, 한때는 어깨에 올리고 어린이 대공원을 거닐었댜. 그런 아들놈에게 지고 살라고?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지만, 아예 아닌 것도 아니다. 팽팽한 기싸움이 존재한다.


아버지의 말씀이 상처인 이유는, 약한 부분을 정확히 가격해 주셨기 때문이다. 예민하다는 핑계로 매사에 도망갈 궁리부터 한다. 끝내는 것보다는, 순간의 행복이 중요하다. 거지 같은 신발은 내 자유다. 내 자유는 그 누구도, 설사 가족이라도 침해할 권리가 없다. 내가 안 불편하면 된다. 남의 눈에 합격인지, 불합격인지는 내가 더 잘 안다(나의 독선이 아버지의 독선보다 나을까?). 내 얼굴빛엔 나도 불만이다. 남들이 보기엔 좀 낫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산다. 방콕 방 안 장롱엔 붙박이 거울이 있다. 근 6개월 눈을 똑바로 뜨고 본 적이 없다. 햇빛이 그대로 투과되는 잔인한 거울에는, 엄청 늙은 박민우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큰 충격을 받고는, 그 앞을 지날 땐 주의를 기울인다. 남들 눈에는 좀 나아 보이겠지.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뭐라셨죠?


-치앙마이가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냐?


첫날 숙소 옆 샹그릴라 호텔 정원을 거닐 때만 해도 입을 못 다무셨다. 두 번째 날, 피곤이 쌓이신 거다. 긴 시간 비행기에서 시달리고, 낯선 방에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 피로가 쌓여서, 마침내 터진 것뿐. 정신은 몸이 지배한다. 식중독이 걸린 여행자는, 트레비 분수에서 젤라토를 핥는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래, 몸 상태다. 그거였어. 피곤이 사라지면, 아버지는 관대해지실 거야. 향신료에 민감한 아버지는 태국 음식도 못 마땅하시다. 낯설수록 더 맛있게 드시는, 내가 봐도 좀 어이없는 어머니, 국적 상관없이 모든 음식을 먹게 된 나. 아버지는 외롭게, 까탈스럽다. 분위기 깨기 싫어서 한 젓가락 들지만, 노력이 필요한 한 끼 한 끼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해석해내야 한다

급박한 하루였다. 못 참고 소리를 지를 경우, 이 여행은 산산조각이 난다. 나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더, 더, 더 화가 나게 된다. 여행은 이미 망쳤어. 자포자기하겠지. 선을 넘는 고함이나, 신경질은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피곤함과 음식. 이 두 가지를 해결하라. 우리의 평화는 불가능하지 않다.

차가운 이성으로 해석하고, 대안을 마련할 것.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재래시장에서 내 운동화를 사겠다. 우린 이기기 위해서 이 여행을 하는 게 아니다. 신발 하나 바꾼다고, 내 자유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없는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치앙마이에 모였다. 명심하고 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우리 삶에 충분한 흥이, 재미가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어떠신가요? 재미있으신가요? 그러면 됐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제게 충분함을 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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