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 1% 가족이 아닐까요?
-숙소를 꼭 옮겨야 하냐? 여기도 괜찮다. 이 동네 집 내놓은 것 많은 것 같던데, 거기서 지내면 안 되냐?
월세 찾는 집을 말씀하시나? 문 두드리고, 방 좀 있으면 재워 주시오. 아버지의 머릿속엔 그렇게 쉬운 방이 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방을 옮기기 싫으신 모양이다. 숙소도 큰 여행이다. 일부러 여러 곳을 예약했다. 마지막 숙소로 간다. 어머니, 아버지도 이 여행이 끝나는 날, 내 의도를 알아주실 것이다. 아니, 몰라 주실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나중에, 나중에 민우가 애 많이 썼네. 그러면서 고스톱을 치실 것이다. 골목이 있으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신다. 어디로 들어가든, 목적지가 나올 거라 여기신다. 어머니, 아버지의 세상은 일직선의 단순함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사람 여행이 된다. 장소는 그다음이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인천 소래포구 정도인 줄 알았다. 아마존 같고, 남극 같은 여행이다. 어처구니없지만, 그래서 신비롭기도 하다.
우리는 새 숙소까지 걷기로 한다. 큰 짐은 땅 형님 차로 옮겨놨다. 땅 형님은 진즉에 비행기를 탔다. 지금쯤 방콕 스타벅스에서 라테를 쪽쪽 빨고 있겠지. 매캐하고, 뿌연 방콕의 매연을 킁킁 맡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카페에 숨어서, 분명 지루한데, 순식간에 흐르는 시간에 감탄하고 싶다. 종일 정신없는데,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나? 요즘의 하루다. 걸어서 삼십 분 거리다. 두 시간 거리여도, 어머니, 아버지는 걷는다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쓰라고 사지가 붙어 있는 것이다. Sale이란 영어 글자만 보면, 눈이 반짝이신다.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다. 아파트 분양 광고였는데 앞 숫자가 100이었다. 100밧이면 4천 원 아니냐? 4천 원에 파는 거냐? Sale은 깎아준다는 뜻만 있는 거 아니고요. 판다는 뜻도 있어요. 저건 한 달 얼마만 내면 된다. 낚는 숫자고요. 4천 원 아니고, 한 달에 사십만 원이라는 뜻이에요. 이리 답하고는 입맛을 다시는 아버지를 본다. 4천 원에 내 집 장만이 가능한 나라가 지구 어디쯤엔 분명 있을 거야. 아버지 머릿속으로 하루쯤 다녀오고 싶다. 남극이 아니라, 화성이고 목성이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곧 두 손가락으로 코를 잡고, 콧물 발사를 하실 것이다. 어머니는 한쪽 발을 약간 절뚝이며 꽃만 보면 멈추실 것이다. 향기에, 큼직한 크기에 번번이 놀라실 것이다. 하얗고, 노랗고, 붉은 꽃들이 치앙마이 담벼락에 주렁주렁. 뚱뚱하고 거대한 나무와, 좌판에 나온 과일 가격에 눈이 가실 것이다. 멀리서 한국어 소리만 들리면, 아버지는 발작처럼 두 어깨를 움찔하실 것이다. 어떻게든 달려가서 말 걸고 싶다. 인사라도 나누고 싶다. 그 갈등을 어깨로, 등으로 표현하실 것이다.
민우야, 나는 정말 여기가 너무 좋다. 어머니는 여러 번 내게 말씀하셨다. 아들만 좋으면, 함께 살고 싶다. 무슨 뜻인 줄 알지만, 같이 살아요. 그 말은 안 나온다. 손발이 차고, 겨울이면 이름 모를 고열로 응급실까지 다녀와야 했던 어머니다. 치앙마이에서 어머니는 날아다니시는 중이다. 아들만 좋다면, 어머니는 천국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알면서도, 아들은 어머니의 소원을 외면한다. 나도 살아야죠. 나의 자유는요? 나의 여행은요? 모든 걸 다 내준 어머니는, 본전의 10%도 못 건지신다. 춥디 추운 한국에서 어머니가 허망하게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모른 척, 어머니의 구애를 모른 척한다. 내 여행도, 글도, 자유도 포기가 안 된다. 어머니, 아버지를 태국으로 모실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으로, 그건 안 될 말이 되었다. 아버지는 동화될 능력이 아예 없으시다. 아버지의 탓이 아니다. 노화의 과정이다. 흥분하고, 화부터 내고, 듣지 않으신다. 그 증세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래도 긴 여행은 더 해볼 것이다. 29도의 적당한 땡볕을 걸으며 다음 여행을 다짐한다. 나에게도 놀란다. 진저리 쳐지는 일들이 반복되는데도, 나는 진저리를 치지 않고 있다. 잘 왔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더, 더 망가지고, 회복 불능이 되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기를 잘했다. 본격적인 최후를 대비해야 한다. 치매도 남 이야기가 아니다. 깜빡하는 어머니, 아이처럼 고집 불통 아버지는 언제든 나를 몰라볼 수 있다. 최후의 순간은 죽음이고, 죽음 전엔 그 어떤 일들도 가능하다. 그 최후가 오기 전에 우린 조금 더 놀아봐야 한다. 놀아두어야 한다. 치앙마이의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는 칠십 대의 부모가, 나의 부모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감하하다. 적어도 우린, 대한민국 99%가 못해본 걸 하고 있다. 원 없이 떠나보는 것. 따뜻한 나라에서 함께 머물러 보는 것. 그걸 해내는 중이다. 게다가 4천 원을 아끼기 위해 절뚝절뚝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 철의 여인이 어머니다. 그런 아내가 혹시 어떻게 될까 두근대며 살피는 아버지를 뒀다. 새로운 숙소다. 그러니까 새로운 여행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새롭게 또 나를 골탕 먹이실 것이다. 궁금하기까지 하다. 예상대로다.
-이제, 아버지랑 다시 여행할 일은 없어요. 아시겠어요?
좋은 다짐은 삼십 분만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라서요. 어머니, 아버지, 저의 일생이 이 여행 안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무한한 우주를 새롭게 탐구하는 시간. 여러분도 언젠가 한 번쯤 도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