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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 우리 아들은 연예인 하하

아셨죠? 자식 자랑은 손 안 대고 코를 푸시듯 하셔야 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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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대학교 앙깨우 호수 예쁘지만 속상합니다)


-그깟 게 뭐라고 돈을 내? 안 본다고. 안 간다고.


어머니, 아버지 말씀을 무시하고 티켓을 끊는다. 치앙마이 대학의 앙깨우 호수를 보려면 1인당 60밧(2,400원)을 내야 한다. 어머니, 아버지도 좀 적당히 하세요. 한 시간 넘게 걸어왔잖아요. 2,400원 아끼자고, 그냥 돌아가요? 대학교 캠퍼스를 보는데 2,400원을 내라니? 내가 더 울고 싶다. 앙깨우 호수는 내게 치앙마이다. 자전거를 타고 거대한 치앙마이 대학을 돌다가, 우연히 호수를 봤다. 우연히 마주쳐서 참 좋았다. 작정하고 보면 시시한 호수다. 아무런 의도 없이, 뜬금없이 마주해야 하는 호수다. 자주 호수 주변을 거닐었다. 아무것도 아닌 느낌에 가까운 산책이어서 좋았다.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그런 느낌을 드리고 싶었다. 학교의 규모에 놀라고, 예쁜 캠퍼스에 놀란 후에 오, 이게 뭐냐? 호수냐? 가볍게 놀라실 수 있도록 동선을 짜 놨다. 웬걸? 우리는 제지를 당한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란다. 중국인들은 이런 수요가 많나 보군. 오죽하면 학교에서 표를 팔겠어? 단체 여행객을 위한 관광 프로그램이겠지. 우리 중국인 아닙니다. 개인 여행 중인데요. 콧방귀도 안 뀐다. 예외 없이 60밧을 내야 한다.


기다란 카트로 캠퍼스를 돈다. 영어와 중국어로 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중국인에겐 호감이 많은 편이지만, 이번엔 좀 밉다. 중국에서 히트한 영화 '로스트 인 타일랜드' 때문에 중국인들의 성지가 됐다고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돈이나 벌자. 치앙마이 대학은 강제 기부금 60밧을 받기로 한다. 볼 거 하나도 없어도 공짜인 곳과, 대단하지만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 부모님은 무조건 전자다. 공짜면 좋고, 공짜여서 더 재미지다. 이미 돈을 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으시고 만다. 부모님 때문에 태연한 척했지만, 내가 받은 상처가 더 컸다. 치앙마이가 좋았던 건,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질문에도 답이 안 나왔다. 그래, 그 잘난 치앙마이 볼 게 도대체 뭐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오가며 이과수 폭포와 칼라파테 빙하를 보신 아버지는 기준이 남미가 됐다. 그 정도 볼거리가 있어야 여행다운 여행인 것이다. 치앙마이? 어림도 없다. 비슷한 것도 없다. 후미진 곳,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골목 귀퉁이에서 벨기에 남자가 와플을 굽고, 영국인이 피시 앤 칩스를 판다. 삶이 누구보다 피로했던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숲에서 빵을 팔고, 숲에 시장이 선다. 그런 사소함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이해시킬 수 없다. 오래 머물면서, 함께 젖어보는 것. 유일한 방법이다. 그랬더니 치앙마이 대학이 장사를 하고 있다. 앙깨우 호수에서 딱 15분 드립니다. 어서 사진 찍고 돌아오세요. 우리는 타고 온 관광 카트에 몸을 싣고, 나온다. 안 본다고 했잖아. 이까짓 거에 돈을 왜 내니? 어머니,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나셨다.


돈에 대한 예민함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돈은 대략 백오십만 원. 대충 계산해도 총 오백만 원은 깨졌다. 아들 사정을 뻔히 아는데, 아들 주머니에서 삼백만 원 넘는 돈이 나간다. 그래서 더 언성을 높이신다. 아들 입장에선 쓸 수 있는 만큼은 다 써야 한다. 후회를 남겨선 안 된다.


-한식 먹어요.

-아무거나 먹자.

-6000원에 뷔페래요. 안 비싸죠? 한국 음식 실컷 드셔야, 또 태국 음식 드시죠.


평소엔 짠돌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낄수록 후회로 남는다. 쌀국수 먹고 몇 천 원 아낀다고 떼부자 되는 거 아니다. 미소네 식당은 오래전부터 알던 곳이다. 160밧 점심 뷔페다. 갈 생각도 안 했다. 평소에 한국인이 많이 가는 곳은 피하는 편이다. 실수라도 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다. 칠십 대의 노인에겐 한식이 절대적이다. 이틀에 한 번, 최소 사흘에 한 번은 한식을 챙겨 드려야 한다.


-그런데, 왜 이름이 미소네요? 일본 식당인 줄 알지 않겠소? 미소시루도 아니고.

-제 딸 이름이 미소라서요. 그런 말 종종 듣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올빼미가 되셨다. 왕이라도 된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니, 사장을 향해 달려드신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미소네가 뭐냐며 따지신다. 남의 식당 이름까지 시비를 거시다니. 가족이라고 모든 걸 편들 마음 없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상종도 안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손가락 하나가 없으시다. 공장 절삭기에 손가락이 끼는 사고가 있었다. 서울우유 배달이 너무나 싫으셨던 아버지는 공장을 차리셨다. 부품 공장이었다. 인건비라도 줄이겠다며, 기계 앞에 직접 앉으셨다. 손가락 하나를 잃고, 공장은 망했다. 빙그레 우유 배달부로 돌아오셨다. 어쨌든 서울 우유는 아니어서, 조금은 해방감을 느끼셨을까? 목장갑의 손가락 하나만 힘없이 펄럭댔다. 키 149cm. 평균의 키에 한참 모자라는 키. 그래서 평균의 사내와 어울리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아버지. 늘 웃기는 사람이어야 했다.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고, 재미있는 사람. 아버지의 역할은 광대였다. 태국 시장 어디에도 아버지에게 맞는 옷이 없다. 아동복 코너에서 하나도 안 팔리는 옷들이 아버지의 옷이 된다. 오래, 아주 오래 한 손은 주머니 안에 있어야 했다. 무례한 아버지. 무례할 수 있는 때가 평생 몇 번 없었던 삶. 약한 사람들이, 못된 역을 맡는다. 세상 모든 못된 사람들이, 다들 아프다. 아픈 사람들이, 아프게 한다.


-저, TV에 자주 나오시는 분이죠? 세계 테마 기행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출연자예요. 팬입니다. 정말 팬입니다. 오늘 식사 대접을 하게 해 주세요. 이런 영광이 다 있습니까?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아버지는 공짜 커피를 주는지 따지려 할 참이었다. 순천에서 온 선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나를 알아봤다.


-아버님, 어머님. 정말 부럽습니다. 이런 훌륭한 아드님과 치앙마이에 다 오시고요. 정말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기세 등등, 따져야 할 것들이 산적한 아버지는 느닷없이 순해지신다. 일단 자식 놈 주머니에서 돈이 안 나갔다. 이놈이 뭘 하고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아들이다. 호남 제일의 양반 반남박씨. 가난해도 글은 조선 최고였던 반남박씨. 아버지의 유일한 자부심이다. 아들놈이 혹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나? 제발 학교 선생님을 좀 했으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수를 했더라면. 아버지가 생각하는 양반은 그런 길을 밟았어야 했다. 장똘뱅이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는 한심한 한량이,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는 모질이가 누군가에겐 대단한 사람이기도 한가 보네. 커피 안 마셔도, 입가심한 것처럼 상쾌하다. 순천에서 왔다는 이 남자가 왜 박민우를 그토록 좋아하는지를 듣는 게 좋다. 아들이 바라던 순간이기도 하다. 세상이 알아서 알아봐 주는 것. 추켜세워주는 것. 며칠간 아버지는 고분고분, 그저 좋을 것이다. 신이 나실 것이다.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굉장한 여행을 하고 계시다. 이런 순간이 꼭 한 번쯤은 오길 바랐다. 그런 순간이 치앙마이 한식당에 그렇게 찾아왔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노동자입니다. 보잘것없는 놈이지만, 열심히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생하잖아요. 고생하는 모든 분들이 저의 글 손님이었으면 해요. 반갑습니다. 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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