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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 찾았다, 아버지의 기쁨

함께 찾아요. 우린 가족이잖아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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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부모님을 홀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애초에 사라졌다. 아버지는 깨지지 않는 바위고, 어머니는 이미 좋고, 좋으시다. 호스텔 거실에서 아버지가 우두커니 앉아 계신다. 아버지는 지금 한국인을 기다리신다. 말을 섞고 싶으시다. 가슴이 철렁한다. 다들 방에서 아무도 안 나오는 이유가 아버지 때문은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에버랜드에 납치된 수사자처럼 딱하고, 기괴하다. 남의 나라, 여행자들이 드나드는 곳에 일흔이 넘은 한국인 노인이 앉아 있다. 여행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대신 한국말이 고프시다. 어머니는 매일 빨래하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그 지루한 노동을 기꺼이 도맡으시고는, 빨래를 개킬 때마다 당당한 얼굴이 된다. 베이킹소다에 꿀을 섞어서 마사지를 하시고, 사놓은 과일로 주스를 만드신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아들이 데려가는 마사지샵이 그리 좋으실 수가 없다. 나는 따지고 싶다. 아버지, 도대체 왜 오셨나요? 마사지도 싫다. 태국 음식도 싫다. 방에서 유튜브만 보실 거면, 왜 오셨나요? 왜 저처럼 소박해지지 못하시나요? 감사하지 못하시나요? 그래요. 무사히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저도 할 만큼 했어요.

먹어야 하니까, 일단 시장으로 갑시다. 시장엘 가면 어머니는 또 날아다니시죠. 과일 값이 한국보다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즐거우시니까요. 갈아서 삼시 세끼 주스만 마셔도, 본전 뽑고도 남으니까요. 한국에서는 들었다 놨다만 했던 망고가 이리 흔하고, 싱싱한 나라니까요. 어머니, 아버지는 두 분 다 어찌 그리 잘 걸으시나요? 친구분들은 하나같이 무릎이 망가지셨다면서요? 무릎 한 번 두드리시는 법이 없네요. 혹 제가 택시라도 타자고 할까 봐, 더 씩씩하게 걸으시나요? 저 멋진 사원들은 눈에도 안 들어오시고요? 근사한 카페를 지나쳐도 콧방귀도 안 뀌시네요. 꼭 불교신자여야 사원이 눈에 들어오나요? 예쁜 건 예쁜 거예요. 카페에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신다고, 기둥뿌리 안 뽑혀요. 도대체 아버지는 어디서 흥이 나세요? 저에겐 이제 남은 무기가 없어요. 다 썼다고요. 아버지는 여행하면 절대로 안 되는 분입니다. 분위기를 이렇게 망치시다니요? 어머니랑 저만 왔어봐요. 이 꽃이, 이 나무가, 이 따뜻한 열대의 온기가 다 반갑고, 신났다고요. 우리기 이렇게 말이 없어진 건, 아버지 책임이라고요. 아버지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준비하지 못한 제 탓이죠. 이제 땅 형님도 없어요. 차도 없어요. 매일 무미건조하게 걷기만 할 건데요. 사원 밑에 그 나무에 서 보세요. 팔을 양쪽으로 올리시고요. 네, 네. 만세 하듯이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찍힐 때는 왜 그리 고분고분해지세요? 혹시, 사진 찍는 거, 아니 찍히는 거 재미나세요? 카톡으로 보내 드릴까요?

아기에게 뽀로로를 보여줄 때의 표정이 되시네요. 그렇게 한참 보실 정도인가요? 저기서 좀 찍어볼까? 사원 안으로 좀 들어가자. 아버지가 먼저 들어가 보자고 하실 때가 다 있네요? 여기서 좀 찍어 봐라. 여러 장 찍어 봐라. 찍어드리고 말고요. 백 장도, 천 장도 찍어드릴게요. 옛날처럼 필름 카메라였으면, 한 장, 한 장 손 떨며 찍었을 텐데요. 세상이 이리 좋아졌어요. 백 장을 찍어도 공짜, 천 장을 찍어도 공짜. 공짜는 우리 가족을 웃게 하는 마법의 단어잖아요. 이 정도 사진이면 친구들이 입을 못 다물겠구먼. 그 생각하셨죠? 사진 욕심이 생기시죠? 주위가 새롭게 움직이기 시작하나요?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니까요? 풍경을, 사원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요? 사진 찍히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나요? 아들이 하라는 대로 하니까 사진이 더 끝내주나요? 아이고, 이런 사진 따위에 홀리실 줄이야. 아버지도 찾고 계셨던 거죠? 자신을 놀라게 할 그 무언가를, 여행의 재미를요. 우리는 이제야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고 있네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한 번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으셨죠? 우유배달로, 가게 일로 늘 바쁘셨으니까요. 운동회 때도 아버지는 늘 학교가 아닌, 집에 계셨잖아요. 저도 키 작은 우유배달부 아버지를 부끄러워했어요. 안 오셔서 속상한 게 아니라, 안 오셔서 다행이었죠.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은 나이가 되려고 마흔여덟이 됐나 봐요. 무릎이 쌩쌩해서 자랑스럽기까지 해요. 이토록 건강한 어머니, 아버지를 뒀어요. 여행이 끝나감이 이제야 초조하세요? 초조하신 거면 잘 여행하시는 거예요. 백 점 짜리 여행을 하고 계시는 거라고요.


PS 지난 여행기입니다. 매일 글을 써요. 이 글이 집에 갇히신 많은 분들께 작은 숨통이었으면 해요. 희망을 봐야죠. 끝나가고 있음을 믿어야죠.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희망을 찾고, 보자고요. 우리가 참 아름다운 별에서 살잖아요. 노력해야죠. 너무 좋은 곳에 태어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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