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도 못 사는 비싸고, 귀한 수업
-오늘은 왜 이렇게 밥이 적냐?
-그러게 말이에요. 좀 적네요.
-그러게 말이에요라니? 그러게 말이에요라니이?
눈 뜨자마자 음식 사다 날랐더니, 아버지 또 이러시긴가요? 태국 양념까지 못 드시겠다면서요? 쏨땀(그린 파파야로 만든 태국 국민 샐러드. 우리나라 무채와 비슷하다)도 못 드시겠다면서요? 그래서 파파야 생채만 사다가 고추장 양념에 버무렸어요. 한국 여행자가 냉장고에 두고 간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서요. 혼자였다면 절대 안 건드리죠. 찝찝하잖아요. 누구 때문이겠어요? 지구 1% 까탈스러운 입맛 맞추려고, 아들이 이리 애를 쓰는데요. 밥이 좀 적으면, 적은 대로 드시면 안 돼요? 밥이 부족하구나. 더 사 오면 안 되겠니?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안 되는 거냐고요? 아버지가 어린애는 아니잖아요?
순간 아버지가 아들로 보였다. 내 밥의 절반을 아버지께 뚝 떼어 드렸다. 드리면서도 설마 드실까 했다. 그걸 넙죽 받으시더니, 오물오물 씹으신다. 평소에 양도 많지 않으신 분이다. 절대 두 그릇을 안 드시는 분이다. 가족 중에 허기에도 가장 강한 분이시다. 가족을 위해 빙판길 우유 배달을 하던 그 아버지가 아니다. 내가 드린 밥을 허겁지겁 씹으시는 아버지를 한참을 봤다. 아버지는 이제 정말 아이가 되셨다. 나는 반쪽의 밥덩이도 넘어가지가 않는다.
눈치가 빠르고, 재미있는 사람.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으셨다. 아버지의 노력도 있었지만,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무대체질인 사람이 많다. 대치동 학원 원장인 사촌 큰 형이 단역배우 협회(그런 협회가 있다고 한다)에 가입되어 있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친 형, 사촌 큰 형의 바로 밑 동생이자 나에게는 역시 사촌 형인, 한국 씨티은행 으뜸 오락 부장 경우 형까지. 남보기 부끄럽게 나서고, 웃기고, 노래한다. 남을 깔보는 듯한 말투,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감각도 비슷하다. 아버지도 동나이대 누구보다 유쾌한 사람이셨다. 모든 화제를 꿰차고, 말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으셨던 분. 그런 아버지가 아기새가 되어서는, 먹이를 더 내놓으로 빽빽 울어댄다. 남의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아버지가 맞나 싶다. 불의를 보면, 발끈하는 아버지가 맞나 싶다.
총기를 잃으셨다.
총기를 잃었다는 표현이 맞는 걸까? 어머니와 다투실 때, 언성을 높이고,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언제나 아버지 쪽이었다. 겨우 그것밖에 못 하냐? 그런 것도 모르냐? 당신네 집안은 왜 이리 형편없느냐? 둘만 있을 때만 그러시는 게 아니다. 남들 앞에서도 아버지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어머니를 밟으셨다. 어린 내게도 보였다. 만만한 당신만이라도 내가 이겨야겠소. 아버지의 슬픈 전략이... 어머니는 발끈하시기도 하지만 대체로 지는 쪽을 택하셨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가난한 살림, 살아남는 게 먼저. 돈에는 악착같으셨지만, 나머지는 무덤덤하셨다. 시댁에 가면 늘 눈물바다였다. 못 사는 친정, 그 못 사는 친정 식구들에게 몰래 챙겨줬던 뒷돈을 속속 들키셨다. 할머니는 당장 이혼하라며 아버지를 닦달하셨다. 그런 수모를 당해도, 어머니는 견뎌내셨다. 내 어머니라 하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는 혼자였으면 더 잘 사셨을 것이다. 배포도 있도, 성실하고, 돈을 읽는 눈도 있으시다. 여자로, 아내로 그 능력을 썩히셨다. 할머니의 노발대발도 이해가 된다. 어머니 쪽 식구들이 소중한 아들에게 빨대를 꽂는 기생충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명절날이면 기생충 대접을 받으셨다. 내가 똑똑히 목격했다. 울면서 손님 밥상을 차리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파를 다듬으셨다. 자신이 늘 옳아야 하는 남자가 지금 먼저 아이가 됐다. 눈치도 좀 없고, 구박 덩어리였던 어머니는 여전히 생기를 머금고 밝게 빛나신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버지의 유전자다. 관심 종자고, 내가 옳아야 하고, 내 확신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런 유형은 작아지고, 좁아진다. 더 젊고, 더 덩치 큰 아들이 더 허기지겠지. 아버지에게 분명 있었던 그 배려가, 앞뒤를 보는 분별력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아이가 되실 거면서, 늘 자신만 옳은 사람이어야 했다. 이보다 굉장한 수업은 없다. 옳음을 주장하는 건 쉽다. 져주는 게 훨씬 어렵다. 쓸모없는 승부에 전부를 바치지 않는 것. 순간의 승부가, 영원한 승부가 아님을 아는 것. 어머니의 지혜를 이제야 알게 된다. 우리의 아침 밥상은 진저리 나는 슬픔이지만, 이보다 값진 수업은 없다. 이 여행은 끝으로 가고 있다. 나의 노후를 생생하게 보고 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태어나 같은 시대를 보낸다는 거에 동질감을 느껴요. 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이 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아프면, 저도 아프죠. 세상이 아프면, 우리도 아파요. 세상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위로라도 보태고 싶어요. 제 글이 그런 힘을 가졌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