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지 말고, 잘 전하세요
글은 자기 자신이죠.
부정할 수 없죠.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어있어요.
사람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해요.
왜죠?
어떤 문장에 감동을 받아요.
엄청 받아요.
나도 그 감동을 전하고 싶다.
욕심이 생겨요.
저도 그랬어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으면서
문장이 촘촘해요.
꽉 차 있으면서 군더더기도 없더군요.
거기에 액자식 구성까지
문장에 힘을 너무 실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도 않네요.
하루키의 나른한 문장도 얼마나 멋진가요?
슬픔도, 고통도 나른나른
냉장고에서 꺼내 피우는 차가운 담배 한 개비
신중하고, 권력 없이 얌전히 틀어놓는 재즈
고양이 같은 문장으로
우리를 잔잔하게 설득하죠.
나도 그런 문장을 쓰고 싶다
나라고 왜 못해?
써보고, 써보고
나는 이따위 문장뿐일까?
이렇게밖에 못 쓰나?
좌절하고, 밀쳐두죠.
다 귀찮아졌어요.
잠시 문학 신인상 후보였네요.
글을 좀 더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건 어때요?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도구로서 봐주시는 건요?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보다는
전하고 싶다로 끝내세요.
그리고 다가가는 거죠.
글은 원래 도구인데
뽐내는 화장품으로 쓰려니까
탈이 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는 말주변이 없다.
당신이 생각난다는 말도 추접하고
그냥 뭐라도 쓰고 싶은데
한 문장도 괴롭다.
그래서 그냥 쏘주만 빤다.
생각만 난다.
이런 연애 메시지는 어때요?
치장하지 말고, 딱 할 말만 쓰는 거요.
알아요.
이 문장도 별 거 없고
이것조차 저는 자주 써본 사람이니까 쉬운 거란 거요.
울림은 진심에서 시작돼요.
기교에는 없어요.
울림부터 생각하면 울림이 없죠.
가벼워지세요.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나를요.
내 마음이 너무 많은 것을 거치지 않도록
조금은 모자란 채로
내 안의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아이니까, 유치해도 돼요.
서툴러도 돼요.
그 아이가 온전히 놀게 해 주세요.
위대한 거장의 눈으로
아이를 윽박질러 왔어요.
내 안의 아이는 천진하고, 상처 받기 쉽죠.
대신 나도 모르는 상상력과
영원을 보는 힘이 있죠.
아이와 놀아 보세요.
내가 쓰는 거 아니고요.
나는 그저 전달자에 불과해요.
내 안의 아이가 알아서 다 해줄 거예요.
저도 몰라요.
왜 제가 이 글을 쓰는지.
원래는 태국 쇼핑 템을 쓰려다가요.
쓰고 싶은 대로 놔뒀더니 이런 글이 나왔어요.
작은, 작은 도움이었으면 해요.
저의 작은 글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