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인 줄 몰랐다. 그래서 더 좋았다
2월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여행이 불가능한 지금, 작은 숨구멍 같은 글이었으면 해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물고 늘어지겠다.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달랏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세 시간.
첫날 캐리어를 질질 끌고 지나쳤던 곳이다. 첫날의 달랏은 깔끔했다.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 특유의 꾀죄죄함이 없었다. 무질서의 긴장감이 좋다. 개뼉다귀 소리로 들리겠지만, 취향이다. 가장 아름다운 도시? 프랑스 니스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세상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가 떠오른다. 연예인의 치아처럼 가지런한 요트, 쪽빛 바다, 궁전 같은 주택들. 천하의 프랑스가 빈민촌처럼 느껴지는 곳. 동화 속 왕자와 공주가 전 세계 복덕방을 두루 돌아다니고, 마침내 정한 신혼집 같은 동네. 길거리에서 주워 먹을 음식이 안 보인다. 빈속을 채울 뜨끈한 국물도 없다. 만 원이 넘는 햄버거뿐이다. 카지노 호텔에서 뷔페를 먹거나, 무릎에 냅킨을 두르고 스테이크를 썰어야 한다. 그냥 부자 말고, 나라에서 두 눈 부릅뜨고 세금 제대로 내나 관리하는 재벌들이 쉬러 오는 곳, 카지노 하러 오는 곳이다. 이따위 부자 동네엔 쉬운 가능성이 없다. 쪼그려 앉아서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쌀국수가 없고,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없다. 그 아름다운 도시가 그래서 내겐 무의미하다. 그리운 마음이 안 생긴다. 내가 부자가 된다면? 그땐 몬테카를로가 더 즐거울까? 한곳에 집중하고, 감격하는 건 가난뱅이나 하는 짓거리다.
Sunshine coffee.
지나치기만 했던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산이 천장에 가득하고, 달랏을 발아래 둔 카페가 등장한다. 반복되는 장관이다. 거대한 산동네라서, 산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들이 많다. 백 개는 넘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행복해 보인다. 현재의 나는 시시하다. 보나 마나 좋은 곳은, 가볼 필요조차 없다. 어차피 좋은 곳은, 좋은 곳이 아니다.
마지막 장소 Nha long - The green house은 별로여도 된다. 즐거운 긴장감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겠다. 천장이 높은 곳이다. 무척이나 밝다. 높다. 천장은 하나, 두 개의 공간. 한 층을 더 내려간다. 두 번째 공간에선 천장이 두 배로 높아진다. 높은 천장, 가득 유리창, 두 공간을 나누는 철제 선반. 그 선반을 가지런히 채운 화분과 소품들. 한쪽 벽을 모두 채운 유리창은 성실하게 빛을 퍼담는다. 단순하지만 높고, 환하다. 더 없겠지. 마지막을 자축하는 소박 함이면 족하다. 그렇게 방심했다.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진 햇빛이 나를 감싼다. 손끝이 얼얼한 추위조차 다 이유가 있었구나. 구름의 윤곽이 유난히 뚜렷한 하늘이 경계를 뚫고, 내게로 온다. 눈사람이었다면, 나는 녹았을 것이다.
-한국 사람인가요?
종업원이 묻는다. 웃는다. 존재감이 지지리도 없었던 달랏이었다. 순하지만, 무표정한 달랏 사람이었다. 달랏을 지독하게 좋아했더니, 내게로 온다. 나를 궁금해한다. 베트남 사람이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으니, 딱 봐도 부티 나고 잘 생겼군요란 뜻이겠군. 내리쬐는 볕에 몸을 덥힌다. 몰입하는 여행이었다. 가속도가 붙는 여행이었다. 남은 날짜를 세는 여행이었다. 내 안의 간절함이 자주 튀어나오는 여행이었다. 간절한 누군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행이었다. 65억의 졸부가 될 뻔한 여행이었다. 머저리로 놀아났고, 가까스로 사기극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청춘의 짧은 불꽃같은 달랏의 1월, 2월. 매일 찬란하고, 매일 꽃이었다. 과거의 내가 죽음을 앞두고 이곳에 왔다. 마음의 힘으로 시공간을 초월했다. 간절함이 답이다. 시공간을 초월했으니, 육신의 사라짐도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을 것이다. 편한 마음으로 돌아가, 예정된 죽음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길 바란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것도 못해내면 굶어야지. 밥값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써요. 아, 물론 이 글을 쓰건, 안 쓰건 제게 돈이 생기는 건 아니죠. 하지만 자격이 생겨요. 저는 밥 먹어도 되는 놈이 되는 거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