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매일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죠. 사실
2월에 베트남 달랏에 다녀왔어요. 여행이 불가능한 지금, 제 글이 작은 숨통이기를 바랍니다.
사형 집행을 기다린다. 전날부터 착실히 준비한 죽음이다. 행복했던 시간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집중력의 힘은 상상 이상이라,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행복은 내 손안에 있구나. 그때로 돌아가도, 감옥 안보다 행복할 자신이 없다.
-당신의 누명은 벗겨졌습니다. 이제 자유입니다.
죽음이 사라졌다. 단 하루였기에 가능한 행복이었다. 상상력을 다 쏟은 관계로, 메마른 하루들은 그냥 살아야 한다. 덤으로 받은 선물 같은 하루인데, 행복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감옥 안과 감옥 밖. 감옥 안으로 되돌아갈 용기는 없다. 이 헐거운 자유는, 아무리 허우적대도 잡히지 않는다.
지어낸 이야기다. 딱 하루만 남은 사형수. 어떤 하루일까? 인간의 행복과 불행 총합은 누구나 결국 같다고 믿는다. 일찍 요절하는 안타까운 젊음, 그 젊음의 마지막 일주일은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큰 폭의 자유와 깨달음, 여유와 받아들임이 한 인간의 전부를 채우는 건 아닐까? 잡음 같은, 사족 같은 생각들을 걷어내고, 감사해야 할 것들, 고백해야 할 사람, 간직해야 할 기억을 천재적으로 정리하고, 실행한다.
세 시간 후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마지막 숙소 Brew and Breakast는 식당이 조금 더 유명하다. 인기 채식 식당은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열렬한 사랑을 받는다. 채식주의자들은 폭증하는데, 맛있는 채식 식당은 드물어서다. 특히 아시아 쪽은 비건(유제품, 생선도 안 먹는 엄격 채식주의) 식당이 귀해서 입소문만 나면 미여 터진다. 병아리 콩을 삶은 중동식 스프레드 후무스가 들어간 부리또에선 메뚜기 튀김 맛이 났다. 성스러운 채식 메뉴에서 곤충 맛을 떠올린다. 나나 되니까 이런 해석도 한다. 세계 테마 기행에 출연하면서 별거 별거 다 먹어 봤다. 가장 특이한 음식은 시큼한 날개미탕, 가장 먹기 곤란했던 건 토끼 대가리(살이 없어서), 가장 끔찍했던 건 식은 귀뚜라미 튀김. 곤충은 뜨끈한 맛으로 먹어야 한다. 식으면 육즙(충즙인가?)조차 차가워져서, 냉장고에서 갓 꺼낸 귀뚜라미즙 맛이 난다. 주인장이 날개를 떼고 먹는다는 걸, 한참 귀뚜라미를 씹고 있을 때 가르쳐 줘서, 입천장에 달라붙은 날개를 손톱으로 긁듯이 떼어냈다.
언젠가는 채식주의자가 될 거야. 십 년 전부터 그런 걸로 봐서 아흔 살쯤에 채식주의자가 될 것 같다. 생명의 애틋함, 자제에서 오는 자유를 아흔 살쯤에 획득한 척하겠다. 곤충 맛 부리또는 뚱뚱했고, 맛있었다. 곤충 맛은 내겐 찬사다. 따끈한 캄보디아 거미 튀김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Brew and breakfast 방은 지금까지 묵었던 방 중 2등으로 후졌다. 첫날 묵었던 모기떼 호스텔만 아니었다면 최악의 방도 될 수 있었다. 멀쩡한 방이다. 착한 사람들은 무난하다고도 할 것이다. 복도가 있고, 복도로 창이 나있다. 외부는 안 보인다. 외부로 환기가 안 되니까, 환풍기가 있다. 환풍기는 열심히 돌고, 음식 냄새는 음식 냄새대로 열심히 난다. 주방이 바로 옆이다. 음식 냄새도 채식의 향기다. 채식 주의자들은 환풍기를 끄고, 이 꿉꿉한 냄새를 콧구멍으로 다 빨아들이며 행복해할까? 이 방도 평점이 무지 높다. 그래 봤자 하룻밤이다. 원래는 오성급 호텔에서 십만 원 내고 마지막 밤을 보내려고 했다. 교보생명 보험료가 25일 빠져나가고, 매달 5일 신한은행에서 카드값이 나가는 걸 알고 있는 새가슴은 저지를 용기가 없다. 요즘 안경을 안 쓴 채 지낸다. 확실히 눈이 덜 나빠지는 것 같다. 식당 안의 모든 서양인이 나를 보고 있다. 눈코입은 안 보인다. 온통 뿌옇지만, 그들의 턱 각도로 알아챌 수 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온 이후로 확실히 서양 아가씨들이 나를 오래 쳐다본다. 뉴욕에서 묻혀온 글로벌 잘생김이 이런 식으로 들통나고 있다. 잘 안 보이니까, 오히려 만족스럽다. 모든 게 분명해지면, 상처 받을 것이다. 괜찮은 결핍이다.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제고 갈 수 있는 곳 중에 오사카가 있었다. 인생 친구인 카즈마가 머무는 곳. 카즈마는 갑자기 형을 잃었다. 심장 마비로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됐다. 나를 친아들 이상으로 아껴 주신 카즈마 아버지, 어머니가 걱정된다. 곧 가겠지. 꼭 가야지. 이런저런 핑계가 생기고, 먼저 가봐야 할 곳들에게 밀리다 보니, 일본 불매운동과 코로나가 와버렸다. 몰래라도 가면 가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가야만 할까? 언제 오사카에 갈 수 있을까? 가장 먼 곳이 돼버렸다. 알겠나? 박민우. 달랏도 평생 다시 못 올 수 있다. 다시 상상한다. 단 하루가 남은 사형수가 찾아온다. 지독한 바람으로, 전생의 나는 미래의 나를 잠시 찾아올 수 있었다. 내 뒤에 탄다. 내가 볼 수 있는 세 시간, 감옥 안의 나도 본다. 둘은 하나가 되어 달랏의 세 시간을 쓴다. 오토바이 시동은 지금의 내가 걸겠다. 과거의 나는 허리를 꼭 잡도록 한다. 어렵게 왔으니, 굉장한 곳을 보여주겠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예전엔 웅장하고, 반전 가득한 이야기를 꿈꿨어요. 이젠 작은 이야기, 누구나 맞아맞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글의 노화일까요? 성장일까요? 우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