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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배 아저씨가 수코타이에 입수한 이유

세상은 놀이터. 나만 재밌으면 돼. 그래서 풍덩해 봤어요

by 박민우

2월 말에 수코타이에 잠시 다녀왔거든요. 지난 여행기를 올리는 이유는, 여행이 불가능해서입니다. 저의 옛 여행이 작은 숨통이기를 바라요. 나름 비장한 이유는, 코카서스 여행기 출사표라 이해해 주시면 되겠네요.


지금 수코타이에 와 있어요. 하루 삼만 원 방에서 뒹굴뒹굴하는데 좋네요. 수코타이엔 종종 와요. 태국에서 가장 친한, 아니 인생 가장 존경하는 형님이 태국 사람인데요. 수코타이에 농장이 있어요. 본가가 있기도 하고요. 냉큼 따라왔어요. 차비 안 들이고,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곳에서 공짜로 잘 수 있지만, 호텔을 잡아요. 불편하잖아요. 제가 좀 배가 불렀거든요. 점점 불편함에 과민해지네요. 잠이라도 편히 자자. 이게 종교가 됐어요. 잠은 확실하게 내 잠이어야 해요. 도미토리도 이젠 꺼려져요. 편하지 않으니까요. 장기 여행을 하면 돈이 더 절박해지니까, 그땐 또 적응해요. 섞여 자도, 쿨쿨 잘 자요. 지금은 안락한 곳에서 자고 싶어서, 하루 삼만 원 방을 과감하게 질렀네요. 불만이라면 이렇게 편한 것만 찾다가는, 새로운 도전도 멀리하는 게 아닐까고요. 만족스러운 점은, 쓸 수 있는 돈을 최대치로 쓴다는 점이에요. 아끼고, 대비하지 않는 삶에 충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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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 도리는 해야 하니까 형님 댁에 인사도 드리고, 밥도 먹고 나와요. 형님의 형님이 농장을 관리하는데요. 저한테 열 개 마스크가 든 봉지를 내미네요.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라니까요. 빈손으로 간 거지 손님한테 선물을 안겨주다니요. 일본 홋카이도에 다녀온 태국 부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태국도 난리가 아니네요. 한국 여행 다녀온 의심 환자도 조사 중이라고 해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죠? 저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큰 거겠죠? 여기에 오면 제가 항상 들르는 카페가 있어요. All blues라고 이름도 멋지죠? 미국 뉴올리언스(안 가 봤지만요)의 작은 카페처럼 재즈 뮤지션이 한쪽 벽을 채우고요. 한쪽 벽은 하얀색 조각 커튼들이 하늘거리죠. 무슨 커피를 마실까요? 이 작은 동네예요. 코스타리카, 브라질, 케냐 커피가 종류별로 있네요. 어떤 건 프루티하고, 어떤 건 넛티(nutty 견과류 맛) 하다며 친절히 설명해 주네요. 신 맛 안 나는 걸로 부탁한다니까 브라질 커피를 내려줘요. 드립 커피를 마시게 되네요. 달달한 커피여도 뭐, 이곳이라면 무조건 맛있었을 거예요. 어젯밤엔 믹스 커피가 또 그리 당기더라고요. 사다 놓은 게 없어서 망정이죠. 제 옆에 있던 사람들이 금세 일어나요. 에이, 설마 저 때문일 리가요? 한국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제가 어딜 봐서 코로나 바이러스 숙주로 보이나요? 제가 태국 왜 좋아하는지 자주 말씀드렸죠? 사랑받는 느낌, 관심받는 느낌이 좋아서요. 기회 되면 여러분도 실험해 보세요. 유독 자신을 예뻐해 주는 나라가 있어요. 평균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 인기가 좋죠. 어떤 사람은 미국에서, 어떤 사람은 유럽에서, 또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더 사랑받을 거예요. 사람이 그러라고 간사한 거예요. 예쁨 받는 곳에 마음 가는 게 당연한 거죠. 이제 그 사랑도 위기가 찾아왔어요. 태국 사람들 눈엔 제가 그렇게 일본 사람 같나 봐요. 일본, 한국, 중국이 다 코로나 숙주국이 되어 버렸죠. 저는 빼도 박도 못하는 인간 숙주입니다. 사랑 못 받는 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기복이 있어야, 사랑이죠. 저와 태국의 사랑은 이 고비를 넘기면 더 돈독해질 거라 믿어요.


제 나이가 마흔여덟 살이에요. 쉰이 내일모레죠. 환갑도 눈 깜짝할 새에 올 거라 봐요. 환갑 때쯤이면, 지금 머물고 있는 수코타이에서 작은 밥집을 할 것 같지만요. 모르는 거죠. 미래 예측처럼 허망한 게 또 있으려고요. 스무 살 때, 서른 살 때 상상했던 마흔여덟 살은 여기 없는 것만 봐도요. 이렇게 늙을 줄은 정말 몰랐죠. 주말이면 늘 어울려야 하고, 사람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인해야 소화가 되던 클럽 죽돌이(까진 아니었 ㅠㅠ)는 없네요. 흥청망청이 없는 삶은, 과연 재미가 있을까? 미리 엄청 떨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고요한 방에 갇혀서 얼마든지 글을 써요. 밤에 나가요? 어딜요? 씻고 자야죠. 내일부터는 또 3월의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2월의 저는 이제 하루면 끝이네요. 가장 기쁜 건, 한 시간마다 누가 정기구독 신청했나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제가 사라진다는 거고요. 페이스북에 그렇게 좋아요를 눌러 줘도 쌩까시는 모 작가님, 모 작가님, 모 작가님. 아, 진짜 성질 같아선 친구 삭제하고 싶다. 그런 지질한 나 새끼도 2월 29일을 기점으로 없어져요. 몰입의 즐거움으로 글을 써 내려갈 아이가 곧 태어나요. 그 아이가 코카서스 이야기를 들려줄 거고요(책으로 나올 코카서스 여행기를 집필 중이거든요). 신들린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고민을 멋지게 담아서 또 여러분께 드릴 거예요. 큰 영감이나 자극이 될 거예요. 그런 글이 아니면, 제가 쓸 필요 없으니까요. 존재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요. 오늘 세례식을 했어요. 평소에 수영장 얼씬도 안 하는데요. 마침 사람도 없고 해서요. 마음껏 놀았어요. 지금까지의 저와 결별하고요. 물놀이도 싫어하지 않는 3월의 저를 예습했죠. 동영상으로 보냅니다. 이걸 정지화면으로 천천히 본다거나 하는 만행은 안 하실 거라 믿어요. 가볍게 웃으시라고요. 저 하찮은 점프에도 허둥지둥 갈 길 몰라하는 바보 좀 보시라고요. 하루 3만 원만 주면 이리 방이 좋네요. 구독 신청은 내일 열두 시까지입니다. 저는 새로운 모습으로 반짝이겠습니다. 반짝반짝


PS 매일 글을 씁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하면서 조금 고통스러운 삶이 좋아요. 글은 가끔은 고통이기도 해요. 고통만은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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