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는 태국 방콕에 갇혔답니다
나는 노트북을 펼치면 글 쓰기가 싫어져요. 쓰고 싶었던 글들은 다 어디로 도망가고요. 저는 껍데기만 남아서는 뭘 써야 하지? 두리번거리게 돼요. 우유니 사막 아시죠? 그런 공간에 저만 있어요. 사방에 벽이라는 게 없어서요. 저는 일단 벽을 찾고 싶어요. 끝을 알아야겠어요. 만져야겠어요. 그래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아요. 그런 안심은 오질 않아요. 막막하기만 해요. 그런 상태로 앉아요. 심호흡을 하고요.
오늘이군요. 지금 저는 포르투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겠군요.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으면요. 리스본에 도착해서요. 며칠을 묵을까? 오래 있기엔 아깝고, 금방 떠나기엔 아쉽고. 그런 고민을 했을 테죠. 타르트를 사 먹고,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에서 몇 천 원에 한 끼를 해결하고 짜릿해했겠죠. 제 여행은 투덜댐으로 시작해요. 잠이 덜 깬 것처럼 모든 게 다 짜증 나죠. 이러려고 내가 왔나?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걸까? 이미 너무 많은 걸 봐 버렸나? 고르고 고른 나라인데요. 이 나라는 다를 거야. 그런 나라가 별 게 없는 거예요. 초반 며칠만요.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 거죠. 인간은 내면의 세계를 확신하면 거대해지고, 외부의 세게만 확신하면 초라해져요. 당장 내 눈 앞에 웅장하고, 더 대단한 걸 가져다 놓으렴. 이렇게 시작하니 여행이 삐끗할 수밖에요. 나이도 한몫해요. 쉽게 지치니까 짜증이 늘어요. 어디를 가도 젊은 사람들뿐이라서요. 눈치를 보게 되죠. 돈이 많아서 호텔에서만 지내면 뭐가 문제겠어요? 싸구려 호스텔을 전전하니까요. 어울릴 수도 없고, 외롭기도 싫고. 모호한 회색의 세상에서 결국 쓸쓸해져 버리게 되죠.
포르투갈은 다 생각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반전들로 속속 무너질 거예요. 코로나만 없었다면 깜짝 놀라는 하루하루가 이어졌겠죠. 투덜댐을 거쳐서, 경이로움에 바들바들 떠는 그 과정이 진짜 짜릿한 건데요. 여행의 희로애락은 아무래도 다 있는 게 나아요. 그저 좋고, 좋기만 한 것보다는요. 저의 투덜댐도 나름 필요해 보이는 이유죠. 이젠 못 가요. 비행기도 안 떠요. 못 간 여행지라서 더 아름다워졌어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어요. 역사책에 한 페이지, 아니 두 페이지를 차지할 수도 있는 엄청난 시련을 보내고 있죠. 여행이, 세계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요. 코로나는 시작일 뿐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해요. 저 낙천적인 거 아시죠? 지금 이건 저주가 아니라요. 적극적인 대비라고 해두죠. 매일 똑같은 태양이 뜨고, 바람이 부니까 거대함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으시죠? 저도 그래요. 하지만 이미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세계에서 제일 여행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서요. 충격이 더 클 수도 있어요. 어쩜 그렇게 가만히 있지를 못할까요. 돌아다녀야만 사는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요? 저부터 그런 사람이라요. 계속 묻는 중입니다. 왜, 내 삶은 여행이어야 할까?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이 재발견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이미 다 알려져 있지 않나? 아닐 거예요. 알려져도, 더 알려져야 하는 곳도 있을 거고요.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숨은 진주 찾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예요. 울릉도가 훨씬 더 부각될 거예요. 어지간히 아름다워야 말이죠. 제주도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충분히 압도적으로 아름답죠. 하동과 구례도 참 예쁘죠. 둥그스름 지리산을 등지고 촘촘하게 녹차밭이 펼쳐진 하동에 가고 싶네요. 통영에서 출발하는 섬들은 또 얼마나 좋을까요? 한 번 태어난 삶, 내 시야에, 내 숨구멍에 새로운 뭔가를 선물해 주고 싶은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방콕에서 머문 지 십 년이 넘어가요. 방콕의 통행금지는 예정된 4월에서, 한 달이 연장됐어요. 저는 방에 갇혀서 잘 지내고 있어요. 한국을 그리워하면서요. 새로운 세상이 오려면 진통은 당연한 거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지치지는 말기로 해요. 함께 겁을 먹으니까 훨씬 든든해요. 힘이 됩니다. 함께 이 순간을 겪고 있음을 잊지 않을게요. 술 안 마시고도, 주저리주저리 술 취한 사람처럼 참 말이 많죠? 언제나 반갑고, 감사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위로가 욕심입니다. 큰 욕심인가요? 여러분의 일상에 작은 울림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