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부부의 세계'가 왜 저를 사로잡았냐면요. 지선우(김희애) 몰래 친구들까지 짝짜꿍 불륜녀와 놀러 다니고, 불륜을 숨겨준 사실. 그 충격적 배신 때문이었어요. 대담하네요. 이태오(김희애 남편) 말고요. 작가가요. 아끼고, 아꼈다가 풀만한 반전을 처음부터 까더군요. 서사의 대담함. 힘. 이게 좋았어요. 훅 빨아들이더군요. 웬걸요. 그다음 에피소드는 더 세더군요. 불륜녀 집으로 곧장 찾아가서, 불륜녀, 불륜녀 부모와 맞짱 뜨는 거요. 전통적 서사라면 마지막에 준비된 통쾌한 복수잖아요. 이것도 그냥 앞에서 까요. 아이가 아빠와 살고 싶어하는 걸 알고 나서도요. 남편 이태오에게 아이를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죠. 눈 돌아간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요. 아이는 그 현장을 목격하고요. 결국 아이의 마음을 아빠에게서 뺏어 오죠. 기본이 막장인 아침 드라마에는 없는, 치밀한 구성이 뒷받침된 막장. 고오급 막장은 이런 거야. 힘 있는 이야기의 매력은 이런 거야. 제대로 보여 주더군요.
점점 몰입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일단 아이의 도벽이 너무 비중이 크더군요. 도둑질 자체가 가볍다는 게 아니라요. 이렇게 질질 끌 정도인가 싶은 거죠. 짧게 쳐야 마땅한 에피소드인 거죠. 아이의 학교 생활은 없는 쪽이 훨씬 좋았죠.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할 때 후반부에 대한 고민을 했을 텐데요. 조금은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뒤를 받쳐줄 확실한 사건 몇 개를 준비해 놨어야 한다고 봐요. 부원장 자리를 두고 암투를 벌이는 거 역시 좀 답답하더군요. 권력에 대한 욕심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요. 부원장 자리가 치명적으로 다가오지가 않아요. 갑자기 맹탕이잖아요. 내 새끼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살인한(것처럼 속이는) 엄마 이야기랑 비교해 보세요. 부원장 못 잃어. 이게 쫄깃하냐고요.
이태오(박해준)나 지선우(김희애), 여다경(한소희) 다 실제로 보기 힘든 개또라이잖아요. 바람을 피워도 조용히 피워야죠. 누가 친구들 다 데리고 다니면서 티를 내겠어요? 충격적인 개쓰레기라서 섬뜩하고, 몰입했던 건데요. 결국엔 자기 피붙이에게 쩔쩔 매고, 아내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고, 사주했던 양아치에게 오히려 끌려 다니죠. 섬뜩한 개쓰레기가 너무 순둥순둥 인간적이네요. 극을 끌고 갈 또라이가 없어져 버린 거죠. 김희애를 괴롭힐 궁리를 더 독하게 했어야죠. 부원장 자리를 뺏어야겠다. 으하하. 약합니다(원작에 있었다고 하면 원작을 욕하렵니다). 가정 산산조각 내고도 고향에 다시 돌아올 정도의 개또라이잖아요. 그런 막장 인간이 본처가 최고야. 꼬리를 내리니, 긴장감이 확 사라져요. 이태오가 계속 꼬리를 내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또 배신의 음모가 기다리고는 있겠죠. 그걸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포기합니다. 내가 기대한 또라이가 너무 뜸을 들여서요. 김희애도 마찬가지죠. 그런 개또라이 남편에게 맞서던 불굴의 여전사가요. 아들에게는 너무나 순종적이죠. 아들이 최고가 아닌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 이 드라마의 힘은 개또라이입니다. 밀려나면 끝장이다. 아들 앞에서 쩔쩔매는 게 아니라, 아들에게 협박도 할 수 있어야죠. 그런 설정이 극단적이라고요? 이 드라마는 그 맛에 보는 거 아닌가요? 대신 마무리를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더 쓰레기인 아빠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나는 독한 엄마가 됐어야 했어. 눈물 한 번 흘려주고, 격하게 아들 안아주면 되는 거죠. 좀 더 선을 넘는, 선 근처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드라마를 기대했어요. 지금처럼 내 새끼 못 줘. 이걸로 탁구 경기를 오래 할 줄 몰랐어요. 캐릭터를 끝까지 밀고 가기엔 한국 드라마가 너무 길기도 해요. 한 회에 거의 한 시간 20분을 하더군요. 일주일에 2회니까 엄청난 분량이죠. 서사로 꽉 채운다는 게 얼마나 어러운 일인가요? 1년 내내 매달리는 영화도 그게 쉽지 않은데요. 아이의 도벽, 부원장, 양육권 등이 극의 긴장감을 많이 훼손시키더군요. 개또라이 드라마였으면 끝까지 그렇게 갔어야죠. 저도 이런 개또라이 드라마 무서워요. 현실엔 그런 사람 없어야죠. 어쨌든 그런 걸로 꼬드겼으면 끝까지 책임졌어야죠. 그래서 저는 손절합니다. 제가 후회할 수 있는 멋진 반전의 마무리를 응원합니다. 그런 드라마인데, 제가 멍청해서 손절한 거였으면 좋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 글이 작은 재미와 기다림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작은 발버둥이 의미있는 반짝임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