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 당신들은 특히 더 기억에 남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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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개미 따위는 그냥 먹어. 왜냐면 작으니까


멕시코 과나후아토에서 만난 미국 친구. 매직 머시룸을 따러 가자는 거예요. 버섯의 한 종류인데요. 먹기만 하면 하늘을 날고, 태평양 휘젓는 돌고래가 될 수 있대요. 높은 건물에서 먹으면 위험하다네요. 창문 열고 뛰어내려서 죽는다고요. 자기가 새가 되었으니, 창문 열고 날아야죠. 그 정도로 센 버섯이래요. 제가 그런 걸 할 용기가 있겠어요? 정말 사람이 새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발광하나가 궁금했죠. 같이 농장을 찾아 나섭니다. 할아버지 한 명이 까만 비닐봉지를 주는 거예요. 버섯이 가득 들어 있더라고요. 이렇게 쉬운 버섯이었어? 실망스럽기까지 하더군요. 그런데 버섯 안쪽에 작은 개미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설마, 이걸 먹겠다고? 그놈이 뭐라고 했냐면요


-우리가 훨씬 더 큰데 어때?


이런 신박한 논리로 그 버섯을 쳐묵쳐묵 하더군요. 자기는 더 따먹고 내려가겠다면서 먼저 내려가래요. 텐트를 가지고 갔었거든요. 다음날 초주검 얼굴로 내려와서 저보고 살려달래요. 결국엔 미국에서 배를 가르는 큰 수술을 했어요. 진짜 죽을 뻔한 거죠. 자기 몸뚱이보다 짧으면 무조건 잡아먹는 게 갈치라면서요? 개미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입에 처넣다니요? 그놈은 갈치 인간이었습니다.


2. 눈 깔아! 중국 화장실 일진


중국에서 시골로 들어가면 화장실이 문도 없고요. 아니, 그냥 다 없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소변을 보러 가면, 쭈그려 앉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야 하죠. 쓰촨 성에서 윈난 성으로 넘어갈 때였어요. 따오청이군요. 그 지역 이름이 지금도 생생한 이유는 화장실 때문인데요. 재래식 화장실 남자 소변기 아시죠? 그냥 배수로만 있는 거요. 똑같이 생겼는데, 그게 대변을 보는 곳입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엉덩이를 까고 밀어내기 한 판을 하는 거죠. 문제는 물이 항상 흐르는 게 아니라는 거죠. 똥탑이 제법 차야만, 물을 큰 마음먹고 한 번씩 내려줍니다. 제가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저를 뚫어져라 보던 티베트 청년 눈빛이 지금도 생생해요. 제가 큰 실수라도 한 줄 알았어요. 사람이 똥을 누면 좀 수줍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래로는 밀어내기를 하면서 제가 뭘 하는지 그렇게 집요하게 쳐다보더군요. 그때 똥 누러 간 거였는데, 오줌만 누고 나왔습니다. 그 눈빛은 제 괄약근 힘 조절에 큰 부담이었으니까요.


3. 나만 보면 커밍아웃하는 레즈비언


라오스에서 만난 아가씨. 혼혈이었어요. 어머니가 한국 사람, 아버지가 네덜란드 사람. 방비엥에서 얘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화상을 입어요. 배기통 부위기 엄청 뜨겁거든요. 붕대로 다리를 칭칭 감고서 매일 숙소에만 있는 거예요. 그렇게 나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더군요.


-나, 레즈비언이야. 혹시, 내가 너 좋아한다고 오해할까 봐


야, 누가 뭐래? 네가 먼저 말 걸었거든. 그렇게 나랑 이야기하면 편하고, 재밌다더니요. 묻지도 않았는데 커밍아웃을 왜 하냐고요? 제 친구 말로는, 제가 멀쩡한 아이도 레즈비언 만드는 마력의 소유자래요. 절대 레즈비언 아니다에 천 원 건다면서요. 웃긴 건 그러고 나서 엄청 친해졌다는 거죠. 같이 클럽에 가서 밤새 춤도 췄어요. 그날 까만 연탄 같은 물체가 웃통 까고 깡충깡충 뛰어다녔어요. 사람이더라고요. 일본에서 온 고무공 인간. 걔랑, 저랑 둘이 웃통 까고요. 고무공 2인조 했어요. 클럽에서 몸도 가장 쓸모없이 생긴 2인조가 열심히도 깡총거렸죠.


4. 천하 효자 대회 1등을 소개하옵니다


방콕에서 신세 지고 있는 태국 형님. 제 글 자주 읽으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양반 고향이 수코타이죠. 거기에 농장도 있고요. 제가 농장 구석에 한식집 열어도 된다고 허락받았어요. 언젠가 거기서 한국 백반집을 해보려고요. 가끔 놀러를 가는데요. 어머님이 연세가 있으시니까 자주 편찮으세요. 그날은 배탈이 나서요. 화장실에서 토하시는 거예요. 천하의 효자인 이 형님께서 등을 두드리더니요. 한참 안 나오는 거예요. 어머니가 토한 걸 하나하나 막대기로 저어 보면서 뭘 드셨나 살펴 보더라고요. 저라면 일단 물부터 내렸을 텐데요. 이런 사람이 위인전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천하의 효자로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화장을 했어요. 치아가 몇 개 나왔는데요. 그중 하나를 캡슐에 담아서 목걸이를 하고 다니더군요. 태국에는 그런 풍습이 있나 봐요. 개인적으로 태국의 노인들이 제일 행복해 보여요. 효자, 효녀의 나라입니다.


5. 런던 식당 주인 씨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였어요. 식당 화장실 청소 알바를 구했어요. 알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운이 좋았죠. 그런데 제가 청소를 너무 못하는 거예요. 전임자 한국인이 그렇게 변기를 기똥차게 닦았대요. 저는 열심히는 하는데, 요령이 없었던 거죠. 콕 집어서 어디가 더럽다. 그런 게 잘 안 보여요. 화장실 청소를 하면 안 되는 천하의 고문관인 거죠. 식당 주인은 당당한 게이 아저씨였는데, 언제 저를 자를까만 고민했나 봐요. 잠시 이탈리아 갈 때 대타로 다른 한국인을 연결시켜 줬어요. 이탈리아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부탁했죠. 사장이 그 친구를 그렇게 붙잡더랍니다. 너만 좋다고 하면, 걔가 돌아오든 말든 너를 쓰겠다. 에휴. 그 한국인 친구는 뭐하러 제게 다 일러바치냐고요. 사장이 그 친구에게 흑심 품어서라고요? 더 자존심 상하는군요. 제가 못 생겨서 받은 구박이었던 건가요? 그 친구는 사장의 제의를 거절했어요. 저는 모든 상황을 다 알고도 다시 변기를 닦으러 출근해야 했죠. 먹고사는 게 이리 구차합니다. 얼마나 쭈글이였겠어요? 덴마크 청년이 웨이터였는데, 갑자기 나가더니 크루아상 하나랑 커피를 사 와서 제게 줘요. 먹고 하라고요. 불쌍해 보였던 거죠. 영어도 짧지. 청소도 못하지. 나만 빼고 다 백인이지. 사장은 나를 자르고 싶어 하지. 저를 동정하는 덴마크 청년의 크루아상이 어찌나 따뜻하던지요. 제 인생 목표 중에 하나가 그 식당 찾아가는 겁니다. 제일 비싼 거 먹고, 팁도 두둑이 줘야죠. 사장 나오라고 해. 저 기억하시나요? 팁을 사장에게 즐겁니다. 봉투에 넣어서요. 하하하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는 글로 지구를 꼬시고 싶은 한 스케일하는 영업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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