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도시를 알려드립니다. 땅땅땅

뭐니뭐니해도 사람 여행이 제일 아니겠어요?

by 박민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임을 강조합니다. 나는 아니었는데? 이런 댓글 대환영입니다. 저만 사랑받은 거란 얘기잖아요.


1. 내 돈 내고 밥 먹기가 쉽지 않아요 - 파키스탄 라호르(La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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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밥을 사준 문제의 중학생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이유가 있죠. 안전하고, 쾌적하죠.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도 이유가 있죠. 불편하고, 불안하죠.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때 잠도 안 왔어요. 꼭 가고 싶은 훈자가 있어서 가긴 가야겠는데, 파키스탄은 가기 싫었거든요. 테러다, 납치다. 흉흉한 뉴스도 꽤 있었고요. 국경을 막아놨다면 안 갔을 거예요. 그런데 또 왕래는 가능하니까, 가도 되는 나라인가 싶었죠. 가기 전까지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라호르는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고요. 가장 잘 사는 도시이기도 해요. 위키피디아에서 보니까 세계에서 18번 째로 큰 도시라네요. 중심가는 우리나라 강남 못지않아요. 깜짝 놀랐습니다. 식당에서 음식 값을 안 받거나, 누군가가 대신 내주고 가는 경우가 참 많았네요. 심지어 중학생도 저를 사줬어요. 불쑥 돈만 내고 가서, 여리디 여린 삼촌 아저씨를 쓰레기 만들더군요. 사진 찍어 주세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요. 연예인병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신가요? 라호르가 딱입니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이기도 해요. 인도와 파키스탄이 원래 한 나라였던 거 아시죠? 감히 인도, 파키스탄 통틀어서 가장 맛있는 도시라고 주장합니다. 라호르에서 먹은 짜파티(인도식 빈대떡)와 짜이(인도식 밀크티)가 최고였습니다.


2. 지금은 갈 수 없지만 - 시리아 라타키아(Lata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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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딘 성, 나를 납치했던 라타키아 대학생들

시리아를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시리아가 최고였다고 해요. 이유는 많죠.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다마스커스나 알레포의 예스러움, 아기 피부로 돌려준다는 알레포 비누, 최고의 아이스크림, 최고의 중동 음식, 고대의 화려한 요새 등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푸짐해요. 특히 라타키아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잊을 수가 없어요. 라타키아는 지중해에 접한 해안 도시죠. 제가 밥 먹기를 기다렸다가 납치하다시피 끌고 가요. 대학생 다섯 놈이요. 시리아 대학교는 아무나 입장이 안돼요. 수위 아저씨에게 사정사정을 해서 겨우 입장했죠. 기숙사에서, 교실에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들고, 비명을 지르고.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구나. 내 존재가 세상에 이리 이롭구나. 이런 자부심을 매일 느꼈습니다. 저만 가면 음식값을 절대 받지 않는 식당도 기억에 남네요. 후무스라고 아시나요? 병아리콩 삶아서, 올리브유, 마늘, 레몬즙을 함께 갈아요. 이걸 빵에 발라 먹으면,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안 부럽죠. 라타키아 최고의 후무스 식당이, 저만 가면 돈을 안 받는 거예요. 미안해서 못 가겠는데, 또 너무 맛있으니 안 갈 수가 있어야죠. 공짜로 먹기만 하는데도, 식당 사람들 입꼬리가 양쪽으로 한없이 올라가요. 평화의 시리아가 재건되면 꼭, 꼭 가보셔야 해요. 그 예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여러분을 먹여줄 거예요. 안아줄 거예요.


3. 외롭게 좀 놔둬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Tashk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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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한국을 정말 정말 좋아해요. 한국에서 돈 벌어서 건물주 된 사람도 많고요. 하루에 최소 두세 번은 한국말로 말을 걸더군요. 어디에서 왔어요? 전 안산에서 일했어요. 밥 먹었어요? 뭐, 이런 식으로 다가와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생활력이 강해요. 한국에서도 악착같이 벌고, 모았던 거죠. 한국에서 머물던 시간이 그렇게 좋았나 봐요. 고려인들도 꽤 많이 살아요. 외모는 정말 다르거든요.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려인이라면서 그렇게 저를 반가워하더군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당근으로 김치를 만들어요.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지금도 침이 고이네요. 고려인 후손들이 김치를 많이들 팔더라고요. 저만 가면 어찌나 많이 주시던지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이탈리아 사람과 닮았어요. 외모도, 성격도요. 이글이글 진한 이목구비 선남선녀가 많아요. 다가오는데 거침이 없는 것도 비슷해요. 음식도 맛있고요. 아이들은 저만 보면 달려들어서요. 살짝 피곤할 정도였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는 제겐 사랑스러운 도시입니다.


4. 태국을 빼먹을 뻔했군요 - 치앙마이(Chiang 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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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어머니, 아버지도 아이처럼 해맑게 만듭니다

이렇다니까요. 태국 방콕에 머물면서 먼 곳만 생각했네요. 태국은 평균적으로 기이할 정도로 친절한 나라입니다. 어, 저는 사기꾼만 만났는데요. 택시 기사가 등쳐 먹던데요. 그래요. 완벽한 나라 아니죠. 여러분의 불운함에 제가 다 속상합니다. 전 여전히 이 나라의 친절함이 신비로워요.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데도, 눈알 안 굴리고 정직하게 제값만 받는 사람들이 훨씬 훨씬 많아요. 부모님과 치앙마이에 머물 때도 새삼 놀랍더군요. 장사가 잘 되고, 바쁜 식당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한다고 해야 하나? 특유의 퉁명스러움, 너 하나 없어도 우린 잘 먹고 잘 산다. 이런 느낌을 한 번도 못 받았어요. 붐비는 식당만 갔는데도요. 그게 치앙마이의 매력? 태국의 매력인 것 같아요. 큰 쇼핑몰이 생기고, 우후죽순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사람 안 변하는 게 쉽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이 참 많아요. 뭐 믿고 저리 착하지 싶은 사람. 오래 머물수록 그런 사람이 더 많이 보여요.


5. 부유하지만, 쌀쌀맞지 않은 도시 -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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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아무도 저를 거들떠보지 않죠. 관종 기질이 있는 저는 이렇게 세련된 나라가 심심해요. 외롭죠. 노숙자들의 성지이기도 해요. 가장 잘 사는 도시인데, 노숙자도 가장 많아요. 미네소타에서 온 친구가 깜짝 놀라더군요. 같은 미국이어도 자기 동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대요. 이렇게 많은 노숙자는 처음 봤다며 깜짝 놀라더군요. 노숙자들이 남의 식당에 종이 박스 깔고 잠을 자도 놔둬요(물론 식당은 문을 닫은 후죠). 텐트를 쳐도 놔둬요. 지나가는 사람이 자기 커피를 주고 안부를 물어요. 친구인 거죠. 그렇게 서로 안녕, 안녕 출퇴근 인사를 나눠요. 샌프란시스코 버스가 아주 지랄 맞은데요. 동전을 딱 맞춰서 내야 해요. 저 같은 여행 초보가 그걸 어찌 알겠어요? 배낭을 뒤져서 남은 동전 찾느라 난리가 났죠. 그러거나 말거나, 승객도, 운전기사도 어찌나 평화롭던지요. 겨울잠에서 덜 깬 곰 같은 도시였어요. 화를 잘 안 내는 사람들, 뭐 물어보면 웃기부터 하는 사람들이요. 도시 예쁘지, 바다 예쁘지, 날씨 끝내 주지, 사람들 느긋하지. 가난한 자와 부자의 공존이 이런 식으로도 가능하구나. 저에겐 꽤나 파격적으로 훈훈한 도시였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요. 의미있는 존재가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저는 씁니다. 믜미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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