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방구석 작가의 하루

치열하게 게으르고 싶은 건 아닙니다만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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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어나서 시장엘 가요. 방콕의 재래시장에서 주로 죽을 사 와요. 아침은 죽이죠. 저렴하고, 소화도 잘 되니까요. 졸음을 제가 또 못 참아요. 잠깐 졸죠. 오전에 꼭 글을 마치자. 제가 매일 글을 여러 개 써요. 하나는 코카서스 여행기, 하나는 정기 구독자에게 보내는 글, 하나는 모두에게 보내는 글. 이걸 오전에 끝내는 게 목표죠. 죽을 먹고 배가 든든할 때는 뭐든 할 수 있죠. 훌륭한 작가는 똑 부러져야 하는 법이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전에 글을 깔끔하게 끝낸다면서요? 그리고 오후엔 주야장천 마라톤을 하는 건가요? 봐요. 베스트셀러 작가는 그냥 되는 게 아니었어요. 저도 흉내를 내봅니다. 오전에 끝내겠다. 일단 아이돌 새로 나온 노래 몇 곡만 듣고요. 아이유와 볼 빨간 사춘기의 음원 1위 경쟁은 아이유의 압승이군요. 노래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긴가민가 해요. 전 세계 유튜버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시청해요. 사들어질 때쯤 추천 동영상으로 눈이 가요. 드립팩토리? 뭐지? 연인이 개드립을 쉴 새 없이 날리는군요. 예를 들면 오빠, 대추나무에 사랑 살렸네 드라마 알지? 왜 대추에 사랑이 걸리겠어? 대추라서 걸리는 거야. 오빠는 소추라서 걸릴 게 없어. 이런 B급 개드립을 남발합니다. 이따위 한심한 말장난은 완벽하게 제 취향입니다. 감탄하면서 보죠. 올려놓은 동영상 다 봐야 제 마음이 편하겠더라고요. 이건 또 뭐죠? 코믹 마트라는 채널이 있네요. 간판 짓기 시리즈(5탄 강추)를 보다가 또 배가 찢어질 것 같아요. 개콘이 이러니 망하죠. 비교가 안 되는군요. 어찌나 웃었던지 배가 절로 고파지네요. 시장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덥혀서 먹어요. 그리고 방청소를 시작해요.


방에만 머물다 보니 청소가 중요해졌어요. 내 발바닥 때문에 방이 끈적이는 게 싫은 거예요. 걸레를 세숫비누로 빨아서 방을 닦고, 주방을 닦아요. 맨발로 조금 걸었다 싶으면 또 닦아요. 소파도 끄집어내서 바닥까지 벅벅 밀어요. 아이고, 피곤하다. 이럴 땐 배 찢어지는 동영상을 봐줘야죠. 게으르다뇨? 태국 더위에 저를 지키는 노력으로 봐주셔요. 열 두시가 넘어서까지 끙끙대며 글에 매달려요. 낮에 열심히 썼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후회요? 후회되죠. 빨리 저 안락한 침대로 기어들어가 자고 싶죠. 그렇게 잤는데도 또 졸려요. 아, 자고 싶다. 그런 마음을 등에 짊어지고 툭탁툭탁 써요. 평생 후회하며 살 건가 봐요. 돌이켜보니까 학교 다닐 때 단 한 번도 완벽한 시험 준비를 한 적이 없군요. 완벽한 시험 준비? 그게 가능이나 한가요? 오전에 글을 끝낼 것. 그 소원을 제가 못 이뤄주고 있어요. 약해 빠진 놈인 거죠. 유혹에 늘 질 준비가 되어 있죠. 자기 자신을 철저히 통제하는 사람에겐 없는 나약함으로 씁니다. 더 많은 사람과 공감하는 글쟁이는 그래로 나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지구를 구하는 대단한 글도 아닌데요. 이렇게 조금씩 누군가와 가까워지려고 씁니다. 누군가를 배 찢어지게 웃기고 싶은 유튜버가 되고 싶다. 그런 꿈도 꿔가면서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젠 안 쓸 수도 없는 족쇄에 갇혔네요. 그러게요.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닌데, 안락한 하루는 평생 없겠군요. 글 안에서 안락해지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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