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입니까? 특혜 좀 드려도 될까요?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업적입니다

by 박민우
아제르바이잔 한국어 학원에 초대를 받았었죠


감히 나를 차별해? 외국에서라면 특히 더 발끈해야죠. 한국인이 차별받는 거잖아요.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나를 개무시하던 웨이터, 과테말라 게스트 하우스에서 내 옆에만 아무도 안 앉았던 기억, 치노, 치노(스페인어로 중국인이라는 뜻) 멕시코에서 나만 보면 눈을 찢어가며 놀리던 초딩들. 다 생생합니다. 분하고, 밉습니다. 억울했던 이야기를 하려는 거냐고요? 아뇨. 한국인이라서 대접받았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려고요.


1. 한국 사람이면 무조건 특별하오 - 우즈베키스탄 국경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는 날이었죠. 도떼기도 그런 도떼기가 없어요. 두 시간 동안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파김치가 됐죠. 그래도 결국 차례가 오긴 오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참 지긋지긋한 기억이네요.


-한국에서 왔어요? 줄을 왜 섰어요? 미리 말하면 줄 안 서도 됐는데. 아버지가 고려인이에요. 저도 반은 한국 사람이죠.


아니 군인 양반. 그럼 멀리서도 딱 보고 알아서 모셨어야지. 따로 데리고 와서 초콜릿 주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짐 검사도 대충 끝내 주더군요. 원래는 굉장히 까다롭고, 철저하게 검사한다고 소문났었거든요.


2. 차비 안 받아. 공짜로 그냥 타 - 방콕 오토바이 택시


방콕에 오래 살았잖아요. 가끔 공짜로 오토바이 택시를 타요. 태국 사람들은 정말 안 걸어요. 더우니까요. 한국 사람은 아무리 더워도 십 분 거리는 걷잖아요. 저도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죠. 가끔 모양 빠지게 우산을 양산 삼아서 써요. 제 피부는 소중하니까요.


-타


오토바이가 제 앞에 서요. 누구지? 가끔 제가 이용했던 오토바이로군요. 걷는 제가 불쌍해 보였나 봐요. 손님 한 번 태워주고 돌아가는 길이었던 거죠. 냉큼 올라 탑니다. 기분이 좋은 이유가요.진짜 이웃이 된 기분이 들어서요. 나 없으면 이 양반들 상심이 크겠어. 당당하게 얻어 탑니다. 제가 이 지역의 귀염둥이니까요. 데헷


3. 아니, 왜 제 음식이 먼저 나오냐고요


제 음식이 먼저 나오는 거예요. 저 그런 특혜 한 번도 바란 적 없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인데 말이죠. 먼저 주문한 사람이 빤히 보고 있는데, 밥이 넘어가겠어요? 넘어가기는 하더라고요. 이런 특혜 반갑지 않거든요. 무섭거든요. 조폭 손님한테라도 걸려 봐요. 무슨 해코지를 당하려고요. 제 음식이 먼저 나와도 다들 평화로워요. 그러려니 해요. 동남아시아에서 여러 번 있었던 일이네요. 아, 그 이유를 이제 알겠어요. 저 먹는 걸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거죠. 한국에서 온 귀한 손님의 먹방을 공짜로 보는 거야. 손님도, 주인도 한마음이었던 거죠.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었던 거였어요(제가 좀 졸려서 개소리로 마무리합니다)


4. 우리는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최근에 코카서스 3국을 다녀왔어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렇게 세 나라를 코카서스 3국이라고 해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저를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아요. 왜지?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더군요. 한류 때문이죠. 저를 만나서 네이티브 한국어를 듣고 싶었던 거예요. 제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눈동자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요. 와, 저런 완벽한 한국어는 처음 들어 봐. 우리의 당연한 한국어 구사능력이 누군가에게는 꿈의 한국어란 거 모르셨죠?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 또박또박 한국어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니. 작은 콘서트장에 온 줄 알았다니까요. 식사 대접에 선물까지 받았어요. 인스타그램으로 주로 연락이 오더군요. 해외여행 갈 때 인스타그램에 사진 열심히 올려 보세요. 코카서스 3국에서 여러분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존재 자체가 그냥 한류 스타인 거죠.


5. 나의 매형이 되어주실 수 없겠소?


쓰촨 성에서 캉딩으로 넘어가는 버스였죠. 이어폰도 없이 당당히 음악 뜯던 또라이였어요. 제가 한국 사람이란 걸 알고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요. 휴게소에서 밥을 사주더니요. 같이 자재요. 방값 내준다고요. 진짜 무서웠죠. 처음 본 사이인데 같은 방에서 자다뇨? 공짜의 유혹이 모든 공포를 누르더군요.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친구라 엄청 갑갑합니다. 좁은 방에서 어색 어색. 자기 전화기를 제게 주는 거예요. 여자 목소리더군요. 더듬더듬


-저는 누나입니다. 청두로는 언제 오나요?


자기랑 같이 청두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누나를 꼭 소개해 주고 싶다고요. 호의의 이유를 알고 나니 마음은 편하더군요. 다음에 청두에 가면 연락하마. 대충 둘러댔죠. 다음날 새벽에 저 깰까 봐 슬금슬금 까치발로 나가더라고요. 출장 온 거였거든요. 이리 순수한 청년을 색안경 끼고 의심했구나. 참 미안하고 고맙더라고요.


PS1 차별받는 거에 발끈하는 것만큼, 특별한 호의에는 늘 감사하자고요. 당연하게만 생각하지 말고요.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혜 꽤나 받아요. 한국 국적은 주식으로 따지면 우량주 중의 우량주입니다.


PS2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처럼 잠이 쏟아지는 날, 작은 성취감을 느끼거든요. 여러분에게 읽히는 기쁨이 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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