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발리기 싫은 것들 위주로 까발리세요
1. 나의 가난을 적에게 모두 알렸더니
사람들은 저를 '똥 작가'라고 불러요. 책에서 똥 이야기 몇 번 했다고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억울합니다. 똥 이야기 많이 안 했어요. 탁월한 글발로 실감 나게 묘사했을 뿐이죠. 개인적으로 '통장 잔고 작가'라고 생각해요.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는 이렇게 시작해요.
배부른 소리 하네. 먹고살기 바쁜데 여행 타령이나 하고
가려면 결혼하고 가. 어미 속 새까맣게 탄다.
사는 거 다 똑같다. 다를 것 같아도 다를 거 없어.
결국 질러버렸다. 통장 잔고 259만 원.
네, 259만 원 들고 14개월간 남미를 다녔어요. 259만 원만으로 어떻게 14개월을 다녔겠어요? 사이사이 잡지에 여행 원고 쓰면서 여행 비용을 충당했죠. 지금도 심심할 때마다 통장 잔고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때보다 통장 잔고가 더 쪼그라들 줄 정말 몰랐네요.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박 나서 그물침대 대롱대롱 살라미에 와인이나 홀짝일 줄 알았죠. 왜 구질구질 통장 잔고를 까발리냐면요. 그게 저라서요. 자본주의 시대, 자산은 자신을 나타내는 기준이죠. 네, 저는 현재 백오십만 원짜리 인간입니다.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나 봐요. 와, 나보다 더 거지네. 그래도 사는구나. 나의 가난은 타인에게 위로가 되죠. 글을 왜 쓰겠어요? 공감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싶어서죠. 제가 통장 잔고를 까발릴 때마다 조회수가 폭발을 합니다. 그냥.
2. 나의 노화가 누군가에겐 쌤통입니다
예민한 건지, 부실한 건지 그렇게 잘 체할 수가 없어요. 요즘엔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죠. 외국에 있으면 병원도 잘 못 가잖아요(지금 태국 방콕에서 살고 있어요). 이러다 큰 병 되는 건 아닌가? 솔직히 무서워요. 큰 병을 키우는 건 아닌가? 이런 불안함도 다 써요. 병도 저니까요. 아, 나도 아픈데, 나도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 중인데. 아픈 이야기도 조회수 폭발입니다. 아픈 사람끼리 반가운 거죠. 노화에 대해서도 곧잘 써요. 마흔 살 이후에 훅 빠지는 볼살, 어릴 때부터 있었던 팔자 주름,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던 원형 탈모 이야기요. 건강에 좋다는 것도 이것저것 시도해 봐요. 메가도스 비타민 C, 간헐적 단식, 샴푸 안 쓰기 등등요. 후기를 올리면 또 조회수가 쑥 올라가요. 다들 여기저기 성한 데 없으시죠? 몸무게도 다 마음에 안 드시죠? 저부터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니까요. 독자들도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요. 의사도 아니고, 나누는 정보가 얼마나 영양가가 있겠어요? 중요한 건 아픈 자들의 연대죠. 아,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나만 늙는 게 아니구나. 제가 아파서 쌤통이라고요? 악의가 없는 거 알아요. 나만 못 사는 것 같아서 불안했는데, 못 살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안심하는 거죠.
3. 짧고 굵게 여행 좀 하게 해 주세요 - 알짜 여행 정보
사실 저는 이걸 잘 못해요. 숫자 제목 역시 조회수 폭발입니다. 베트남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일곱 가지, 호텔 안 부러운 5만 원대 숙소 열 곳. 이러면 조회수 폭발에 공유도 엄청나죠. 오해하실까 봐 밝히지만 제가 쓴 글 목록엔 없어요.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여행 가는 거니까요. 짧은 시간에 양껏 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인 거죠. 정보 위주의 글을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고, 실행으로는 잘 안 이어지더군요. 찰진 재미, 요게 제 글의 이유라서요. 정보성 글은 제가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것조차 재미있게 쓸 수 있어야 진짜 좋은 글쟁이인데 말이죠. 제가 좀 게으르기도 해요. 꼼꼼하게 메모해 놔야 하는데요. 여행 가면 놀기 바쁘고, 먹기 바빠서요. 그래도 작심하고 정보성 글을 써보려고요. 가끔이라도요.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태국 음식 열 가지, 태국 마트에서 고른 인생 술안주 열 가지. 캬 제목만 봐도 엄청난 조회수가 보이네요. 네, 준비해 보겠습니다.
4.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요
쓰고 싶은 글과 세상이 원하는 글은 다를 수 있어요. 고뇌하는 멋진 작가의 모습은 포기하세요. 절대 반지 같은 절대 문장으로 초토화시키고 싶으시죠? 심금을 울리고 싶으시죠? 냉소적이고, 빈틈없는 문장으로 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하고 싶은 마음 알죠. 어떻게 쓸까가 아니라, 어떻게 보일까가 먼저인가요? 그러면 좀 힘들어요.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욕망으로 글을 쓰거든요. 경쟁이 어마어마해요. 그 안에서 튀는 게 참말로 어렵습니다. 약점 전문 작가 어떠세요? 수치스러웠던 과거, 비굴했던 그때의 나, 차마 입에 담기 싫은 비밀들요. 그것들을 드러내 보는 건요? 저도 어려워요. 특히 친구들이 제 글 안 봤으면 좋겠어요. 민우가 저렇게까지 거지 같이 살아? 들키고 싶겠어요? 그 아픈 부분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반가워해요. 그 용기까지 다 보이니까요. 아시잖아요. 독자들이 더 현명하다는 거요. 보여주기 싫은 부분들을 보여주는 용기를 내보세요. 우리도 사실 그런 글들을 더 즐겁잖아요. 와 닿잖아요. 우리가 독자였을 때를 생각하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답이 나오죠. 이 밤에 저는 또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나요? 빨리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밤이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위로를 꿈꿉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셨나요? 안녕하셨으면 해요. 아프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