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의 추억 - 20년 전의 괌, 20년 전의 촌닭

처음이라서였을까요? 괌은 천국이었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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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 여행은 괌이었어요. 이십 대 후반, 프리랜서 기자로 일할 때였죠. 기사를 하나 써오겠다. 전부는 아니고, 일부 경비를 보조받는 조건으로요.


ANA(전 일본 공수) 항공을 탔죠. 제 옆 일본 아주머니가 신발을 벗으시네요. 일본 사람도 벗는구나. 나도 벗어야지. 비행기 안의 모든 사람은 관찰 대상이 됩니다. 밥을 뭘 먹을 거냐고 물으면, 무서워요.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 거지? 기내식은 맛있었어요. 무조건 맛있죠. 기내식인데요. 전 촌놈이니까요.


괌에 도착하면 뭐 하나요? 여권 검사를 한 사람당 십 분씩은 하나 봐요. 줄이 안 줄어요. 괌도 미국인데 나를 쉽게 들여보내 줄까? 느려도, 느려도 그리 느릴 수가요. 공항에서만 몇 시간을 버렸는지 몰라요. 어찌어찌 공항을 나왔더니요. 특유의 열대 과일 냄새랄까요? 후각으로 훅 들어오는 달달한 냄새가 부드럽게 충격적이더군요. 한국은 겨울일 때였어요. 비행기 몇 시간 탔다고, 어찌 이리 달라질 수가 있지? 천국이 괌보다 더 좋을까요?


호텔에 도착하니까 새벽 다섯 시 정도였어요. 조식이 언제부터냐고 물어요. 여섯 시래요. 기다려야죠. 외국 호텔에서 조식을 먹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요. 기다리는 동안 호텔 정원을 좀 걸어요. 해변이랑 연결되어 있는데, 꽃밭이더군요. 별의별 향이 콧속으로 들어와요. 듣도 보도 못한 향이라서 어질어질, 졸려서일까요? 몸에 힘이 빠지면서, 누가 좀 업어줬으면 좋겠어요. 걷기 싫더라고요. 바다에서 단 한 명이 그 이른 아침에 수영을 해요. 나는 언제쯤 저렇게 호텔이 당연하고, 당당해져서 혼자 웃통 까고 바다를 휘저어 보나. 성냥 팔이 소녀에 빙의해서 물끄러미 수영남을 봅니다.


조식으로 뭐를 먹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그 한 시간이 너무 안 갔다는 것과, 왼손이 포크? 오른손이 나이프? 냅킨은 무릎 위. 이런 것들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것 정도만 기억해요. 종업원이 저한테 와서 뭐 좀 안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코끝으로 들어왔던 커피 향만 기억에 남아요. 달달한 열대의 냄새에 섞인 응징에 가까운 쓴 향이요.


외삼촌이 괌에 사셨어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괌에 온 거였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삼촌 처가 식구들이 와 있었어요. 공짜 잠자리가 날아간 거죠. 그땐 서운했는데, 덕분에 호텔에서 머물렀죠. 처음 며칠은 내 돈, 나머지는 삼촌이 다 계산해 주셨죠. 저를 미군 부대로 데리고 가요. 미국인 친구가 군인이었어요. 미군 부대에서 군인들과 밥을 먹었어요. 밥 잘 나오더라고요. 촌놈은 엄청난 크기의 닭다리, 샌드위치, 프렌치프라이에 놀라 자빠집니다. 미군들이 식판에 꽉꽉 채워서 다 먹어치우고, 팔뚝만 한 애플파이를 후식으로 먹더군요. 미국 음식에 대한 호감이, 싹 사라지더군요. 선을 넘는 기름짐, 선을 넘는 풍요로움이 제게는 공포였어요.


힐튼 호텔이었나? 하얏트 호텔이었나? 삼촌이 그 비싼 곳을 데리고 가더군요. 영화의 한 장면이 그곳에 있더라고요. 어깨 끈이 없는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 턱시도에 나비 넥타이를 한 남자. 그런 백인들이 밥을 먹고, 와인을 마셔요. 신데렐라에 나오는 무도회장은 이런 곳이겠군. 촌놈은 양복도 없고, 백인도 아니어서 불안합니다. 삼촌만 없었으면 감히 앉을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호텔 식당엔 아무나 앉는 게 아닌 줄 알았으니까요. 저를 아무도 쫓아내지 않더라고요. 두근대면서 사람들 쳐다보기 바빴네요.


삼촌이 저를 스트립바를 데리고 가요. 1달러짜리를 한 다발 주면서요. 이게 다 뭐지? 작은 무대에서 여자들이 걸어요. 팬티 한 장만 입고요. 1달러를 주면 잠시 앞에서 멈추는 거예요. 여러분은 삼촌과 스트립바에 오고 싶나요? 저는 극도로 불편하더군요. 촌놈은 생전 처음인 스트립바에서 탈출하고만 싶어요. 그래서 써도 써도 줄지 않는 1달러를 눈 앞 여자에게 다 줍니다. 여자가 저를 무대 위로 끌고 와요. 아, 싫어요. 싫지만 끌려갈 수밖에 없어요. 제 웃통을 벗기더군요. 왜, 제가 벗어야 하죠? 왜 1달러도 안 주면서 옷을 벗기냐고요? 끈적하게 제 몸을 만지다가요


-짝


손바닥으로 제 명치를 후려칩니다. 이건 누가 봐도 폭행이죠.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남는 무시무시한 싸대기였죠.


-악


저도 정색하고 비명을 질러요. 스트립바는 갑자기 싸해집니다. 그게 제 탓인가요? 손님 허락도 없이 배때기를 왜 후려갈기냐고요? 저는 화난 표정으로 옷을 입고 내려와요. 삼촌은 흐뭇하게 웃더군요. 나나 되니까 우리 조카 이런 곳에서 호강시켜 주지. 딱 그 표정으로요. 한국으로 갈 때까지 그 손바닥 자국이 안 없어지더이다.


처음 기억은 모두 소중해요. 오감이 활짝 열린 채, 정신없이 빨아들이죠. 이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렇게 써 내려가는 것 좀 보세요. 한국에 돌아온 날은 폭설이 내려서 차들이 엉금엉금. 분당행 버스 타려고 양재역에서 한 시간 이상을 떨었네요. 이가 갈리는 폭설이고, 추위였죠. 지금 괌을 가면 어떤 느낌일까요? 다시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네요. 물 색깔이 끝내 줬는데 말이죠. 그런 바다가 흔한 줄 알았어요. 촌놈이었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세상은 모두 거짓말이고, 나는 꿈을 꾸는 사람. 이 글은 거짓말처럼 가벼워져서 훨훨 날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이 글이 거짓말이란 건 아니고요. 제가 지금 무지 졸려서 횡설수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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