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무 살, 그 시절 우리가 떠났던 민폐 여행

우리는 그렇게 뻔뻔했고, 그래도 무사했지

by 박민우
지금의 대구는 이렇게나 멋져졌어요

지금 태국 TV에선 권총 자살한 남자가 엎드려 있어요. 그 자세로 죽은 거죠. 선혈이 낭자하네요. 경찰에 포위된 마약 업자가, 결국 모든 걸 포기하네요. 모자이크로 처리했지만, 저는 충격을 받고 말아요. 행복한 기억이 필요해요. 내 삶에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언제였더라.


대학교 1학년 때 저는 여행단을 모집합니다. 회비는 3만 원. 3만 원으로 전국을 여행한다. 93년이면 지금보다 물가가 저렴하긴 하지만, 그래도 3만 원은 말도 안 되는 거죠. 지방에 사는 친구놈들 집에서 자면 가능하죠. 무모할 수 있었던 건 철이 없어서죠. 다 큰 놈들, 그것도 남녀가 섞여서 일곱 명인데요. 복잡하게 생각 안 했어요. 재워주는 곳만 간다.


그러니 여행 루트가 특이합니다. 대구, 마산, 창원(그때는 두 도시가 분리되었을 때니까요), 부산, 익산. 원래 순천도 포함이었는데 동기놈 하나가(준선아, 잘 했어 ㅋㅋ) 먼저 신세를 지는 바람에 틀어졌죠.


대놓고 민폐 여행이었지만, 평생 남는 여행이 됐죠.


마산 친구네는 무려 고깃집을 했어요. 스무 살에 고깃집이면 천국 아닌가요? 철도 없지, 눈치도 없지, 자제심도 없지. 숨도 안 쉬고 고기를 먹었죠. 어머님이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인 우리에게 후식으로 부침개 스무 장, 부침개 탑을 쌓아서 가지고 오시네요. 그때 조금 겁이 나더군요. 아, 먹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날 밤 다 큰 것들이 길바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었네요. 부산대 임모 교수는 팩 소주를 처마셔가면서 정말 성의 없이 하대요. 동심으로 돌아가란 말이다. 애늙은이 새끼야. 걔는 그때부터 이미 교수였습니다. 외모도, 말투도.


창원에서는 상다리가 휘어질 수도 있겠구나. 커다란 상 세 개에 한지를 덮고 진수성찬으로 가득 채워져 있더군요.


-서울에서는 늘 잘 먹을 텐데. 먹을 게 없어서 어쩌지?


그때까지 저에게 지방은 다 시골이었어요. 부산, 대구 친구들이 왜 부산이, 대구가 시골이고? 따지면, 알겠다. 알겠어. 좀 번화한 시골인가 보네. 깔봤죠. 서울 촌놈은 창원에서 충격을 받아요. 지금이야 흔해졌지만 신도시의 전형적인 모습 있잖아요. 분당, 일산보다도 창원이 먼저더군요. 어찌나 다들 부티가 나던지요. 비비큐 치킨도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봤네요. 창원에서요.


부산에서는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아요. 떼거지로 몰려갔으니까 침구류가 부족할 거 아닙니까? 어머니가 책들 몇 권을 쌓아서는 수건으로 돌돌돌 말아 주신 거예요. 딱딱한 책을 베고 누었는데 뭉클하대요. 진짜 여행이고, 진짜 민폐구나. 하지만 이 민폐가 이런 저런 이유로 추억이 되기는 하겠구나. 너무 행복할 때 다가오는 기묘한 불안감이 있었죠.


익산에서는 마침 친구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병원을 먼저 갔어요.


-연대생은 돈 없어도 부티가 나던데, 고대생들은 어째 돈 많아도 이리 빈티가 나냐?


어머님, 저놈 때문이죠? 저 아니죠? 우린 서로를 째려보면서 시치미를 뗐죠. 나름 우리 학번에서 두 번째로 잘 생긴 애도 있었어요. 무려 강남 8학군 출신. 그놈도 우리 사이에 섞이니, 그냥 고대생인 거죠. 우리 학번에서 제일 연대생처럼 생긴 여자애도 있었 거든요. 애교심은 지구 최강인 척하면서 고대생처럼 생겼다고 하면 발끈하던 이중인격자들이 우리였습니다. 눼눼.


우리는 그 3만 원을 다 못 썼어요. 사실은 늘었어요. 그렇게 봉투를 찔러 주시는 거예요. 벌써 27년이 흘렀네요. 그때 우리를 그렇게 먹여 주셨던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어요. 그때 철없던 것들은 지금은 시침 뚝 떼고 다들 잘 살아요. 저렇게까지 대단한 놈들이었나? 지금도 수상해요. 다들 같이 공부 안 했거든요. 제 학점이 가장 낮은 이유를 모르겠어요. 세상 믿을놈들 없다니까요. 그때는 문집이란 게 있었어요. 아무거나 끄적대는 노트였죠. 장마철. 여행 문집 이름이었죠. 시시콜콜 우리의 이야기들을 거기에 담았죠.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남들 자는 방에서도, 그 시끄러운 술집에서도 누군가는 진지하게 한줄한줄 그날을 썼어요. 그 노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노래방에서 내 노래 중간에 끊었던 네 이뇨온. 저 노래방에서 뛰쳐나갔잖아요. 울지는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PS 글을 쓰면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매일 조금씩 쓰고, 조금씩 웃겠습니다. 이미 이룬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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