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여행 되새김으로 여행 허기를 달랩니다
아, 살고 싶다. 그런 여행지들을 종종 만나죠. 자주는 아니고요. 며칠 만에 정이 떨어지기도 하고, 좋은 곳과 머물고 싶은 곳은 달라. 딱 좋은 곳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죠. 다분히 취향이죠. 저는 유럽과 미국, 캐나다는 자주 가고 싶어요. 살고 싶지는 않아요. 쾌적한 공원을 거닐고, 막 구워진 크루아상에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근사한 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먹고 싶고, 떠들썩한 클럽에서 맥주 한 병 홀짝이며 청승 떨고 싶어요.
1. 중국 청두
중국이 워낙 큰 나라잖아요. 칭다오에서 시작해서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어요. 상하이는 화려하지만, 대기 오염도 심하더라고요(10년 전 이니까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을 거예요). 거대한 빌딩 숲이 뭐? 화려하지만 압도되지 않았어요. 서울, 홍콩, 도쿄를 본 사람이 우와 하기는 좀 힘들죠. 상하이도 좋구나 정도였어요. 음식들은 기름지고, 식당 바닥은 쓰레기 천지더군요. 한 번에 몰아서 청소를 하는지, 손님들이 바닥에 쓰레기를 즉시즉시 버리더군요. 겨울이었어요. 버스 밖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더군요. 중국은 크기만 하구나. 청두를 만나기 전까지 그랬죠. 쓰촨 성의 주도죠. 중국이 워낙 크니까 성마다 수도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쓰촨 성의 수도인 셈이죠. 청두에서 저는 드디어 화색이 돌아요. 아, 이게 진짜 중국이구나. 녹지로 빽빽한 공원들, 즐비한 테이블, 테이블마다 마작을 하는 중국 노인들,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뜨거운 차. 귀를 파주는 사람, 새장을 들고 다니는 사람, 길거리에서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 판다처럼 느릿느릿 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죠. 다른 도시에도 있기는 해요. 특유의 나른함은 청두에만 있더군요. 매일 탄탄면을 먹었어요. 고추기름과 땅콩 범벅이 된 국수를 먹을 때마다 너무 좋아서 오금이 다 저렸네요. 너무나 그립습니다. 흐릿한 청두의 날씨조차 그립습니다. 청두에 꼭 가야겠어요. 맥주로 유명한 곳은 칭다오입니다. 다른 도시입니다.
2. 대만
청두와 대만이 제게는 비슷해요.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잘 생겼어요. 친절하고, 느릿느릿. 어머니랑 이모님을 모시고 갔을 때 대번에 실망하시더라고요. 무슨 나라가 이리 꾀죄죄하냐고요. 이렇게 좋은데? 저는 속으로 놀라요. 내가 사랑에 눈이 멀었던 거구나. 그래요. 꾀죄죄해요. 건물들은 주기적으로 새로 칠해 줘야죠. 그냥 방치해서 거뭇거뭇하고, 눅눅해요. 귀신 나올 것만 같죠.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의 소녀 시대'를 재밌게 본 저는 다 좋아 보여요. 너무 말끔하지 않아서 더 좋고, 더 궁금해요.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좋고, 쉽게 눅눅해지는 땀냄새도 좋아요. 네, 미친 거죠. 좋아하려고 작정한 거죠. 타이베이에 가면 저는 어디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요.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어요. 그냥 좋아요. 허름하면 허름한 대로,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이유가 있기는 해요. 무슨 인연인지 대만에서 초상류층들과 식사를 여러 번 할 기회가 있었어요. 대만 5대 재벌, 대만 5성급 호텔 대표 등등요. 그렇게 서글서글할 수가 없어요. 술을 너무 먹여서 죽다 살아났지만, 대학교 1학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고, 신선했죠. 재벌들이 마셔라, 마셔라. 안 마시면 쳐들어 간다. 쿵자작 쿵작. 어떻게 안 마셔요? 제가 마시면 좋아 죽겠다는데요.
3. 파나마 시티
어떤 때는 무식한 게 큰 자산이죠. 파나마라는 나라는 대운하 말고는 아는 게 없었죠. 그것만 보면 끝. 파나마라는 나라에 간 이유였죠. 사실 대운하는 대운하였어요. 없는 곳에 물길을 파는 어마어마한 대공사인 건 분명하죠. 지구의 물류 역사가 바뀌었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울산의 현대 중공업 조선소에 온 느낌 정도였어요. 그렇게 도시가 부티가 날 수 없어요.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같은 이웃 나라들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이 정도면 선진국 아닌가? 근사한 해변에 화사한 리조트들은 하와이 같고, 마이애미 같았죠. 면세 지역이라서 옷이며, 신발도 너무너무 저렴했어요. 사람들도 건강하고, 부티가 흐르더군요. 아니, 이런 나라가 왜 관광대국이 아니지?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어요. 날씨는 초여름이었죠. 백화점 앞에서 브라스 밴드가 캐럴을 연주하는 12월인데, 여름이었어요. 아, 오래 머물고 싶다. 그물 침대에서 종일 누워서, 김 빠진 맥주를 들이켜고 싶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그곳에 갈래요. 무시무시하게 맛있는 중국집이 있었어요. 생오이가 올라간 특이한 국수였죠. 지금도 있을까요? 찾을 수는 있을까요? 꼭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꼭 찾아야 하는데 말이죠(15년 전에는 그랬는데요. 요즘 파나마 시티 물가 자비 없답니다. 미국, 캐나다 뺨 후려 갈긴답니다. 어쩐지 너무 부티 나더라고요)
4. 멕시코 과나후아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예요. 물론 제 눈에요. 부산 감천 문화마을과도 비슷해요. 알록달록. 그렇게 알록달록한 마을은 생전 처음이었어요.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죠. 부산 분들은 시큰둥하실 수도 있겠네요. 아니에요. 달라요. 다르게 예뻐요. 첫눈에 반했지만, 머물수록 더 좋더군요. 중남미에서 대도시는 무법천지죠. 대학교가 중심인 도시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아요. 과나후아토도 그런 도시 중에 하나죠. 관광지지만 학생들이 즐겨 찾는 저렴한 맛집도 많죠. 주말이면 도시 전체가 불야성입니다. 어디서나 음악 소리가 들려요. 식당이건, 길거리건, 펍이건 다 난리예요. 더 놀겠다. 더 행복하겠다. 그런 사람들만 살아요. 다시 가면 시침 떼고 젊은 사람인 척 어울릴 거예요. 외국인의 특권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온 여자가 저한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고 했어요. 그런 극찬을 어디에서 또 들어 보겠어요. 미운 오리 새끼가, 덜 미운 오리 새끼가 된 날이었어요. 그러니까 더 애틋하죠. 더 그리울 수밖에요. 파나마 시티 한 달, 과나후아토 한 달, 그리고 과테말라 한 달. 가고 싶어요. 갈 수 없어서 더 가고 싶어요.
5.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는 좀 특이하더군요. 까칠한 프랑스가 아니라, 순해요. 까칠한 프랑스인에게 전 상처 안 받아요. 그러려니 해요.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쿨한 것뿐이니까요. 스트라스부르는 달랐어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아시죠? 요즘 교과서에는 없으려나요? 우리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교과서로 읽었죠. 그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도시죠. 한때는 독일이었다가, 한 때는 프랑스였다가. 그래서인지 특유의 프랑스 느낌이 상대적으로 덜해요. 이 도시에 반한 건 이비스 Ibis 호텔 조식 때문이기도 해요. 중저가 호텔인데 조식이 실하더군요. 생오렌지 주스, 종류별로 치즈, 완벽한 빵들. 프랑스 안들이 입 짧은 이유를 알겠더군요. 오성급 호텔은 훨씬 어마어마하겠죠. 저는 이비스 조식이 그 어떤 호텔 조식보다 좋았어요. 방콕 이비스도 그럴까? 어림도 없더군요. 이비스에서 조식만 먹어도 행복할 것 같아요. 마을 자체도 무지 예뻐요. 콜마르라는 마을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보셨나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된 곳이죠. 전 세계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곳만 찾아다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점찍은 곳이란 말입니다. 하하하.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은 좀 늦었네요. 어떻게든 쓰고, 어떻게든 올려요. 저는 그렇게 존재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