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고, 행복해지는 법

타이베이 3부작, 마지막

by 박민우



어머니, 이모님이 안 보여요. 아침에 잠깐 공원을 혼자 걸었거든요. 그래요. 제시간이 있어야 해요. 혼자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해야죠. 어머님, 이모님은 비싼 아메리카노 절대 안 마신다니, 저라도 마셔야죠. 커피 한 잔 들고 걸어요. 숨통이 트여요. 가족이어도, 가까운 친구여도요. 따로의 시간은 필요해요. 저도 챙겨야죠. 누군가를 책임지는 건 곤두서는 일이죠. 헌신이 최고. 이런 부담은 사람을 지치게 해요. 저는 저죠. 24시간 철벽 효자는 저는 아니에요. 잠깐 산책 다녀왔더니 어머니, 이모님이 없어요. 어디를 가신 걸까요? 길을 잃으면 숙소 못 찾으실 텐데요. 숙소 명함이라도 챙기셨을까요? 제가 미리미리 챙겨드렸어야죠. 그나저나 아침 댓바람에 어디를 서둘러 가셨을까요? 그 잠깐을 못 참으셨을까요? 주위를 한참 헤매다가 다시 숙소로 가요. 어머님, 이모님은 여전히 감감무소식. 경찰서로 가야 할까요?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볼까요? 어머님, 이모님이 숙소 문을 열고 들어오시네요.


“아들, 공원 잘 다녀왔어?”

“아니,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 조금 기다리시지, 왜 아무 말도 없이 나가고 그러세요?”

“요기만 왔다, 갔다 했는데 못 봤어?”


저 혼자 식은땀 흘리는 게 통 이해가 안 되시는 표정입니다. 숙소 앞 인도를 200m 왔다 갔다 하셨대요. 공원부터 뒤지고, 반대편 쪽으로 헤맸으니 당연히 못 찾죠. 한 발짝, 두 발짝. 여기까지 가도 될까? 용기의 끝이 고작 200미터였어요. 조심조심, 깜짝깜짝. 두 마리의 토끼가 되어, 콩알만 한 심장으로 한 발짝, 두 발짝. 아들한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한 200미터예요. 200미터를 넘어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까 봐, 그 200미터를 넘지 않으셨대요. 산책 나간 아들은 언제 올까요? 아들이 올 때까지, 심심하기만 한 200미터입니다. 울컥하고, 짜증 납니다.


아침은 티타임입니다. 공짜로 나눠주는 밀크티를 두 봉지씩 타서 드세요. 세상 고소하답니다. 비싼 돈 주고 아메리카노 사 마시는 아들이 이해가 안 가신답니다. 숙소 테이블엔 사과와 바나나가 수북한 바구니가 있어요. 사과와 바나나를 챙기십니다. 어머니, 그러지 마세요. 사람들이 흉봐요.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어요. 손님 먹으라고 주는 건데, 우리는 손님 아니냐? 어머님은 당당하세요. 신기한 건 그렇게 가져온 바나나, 사과를 요긴하게 먹는다는 거죠. 출출하고, 목이 텁텁할 때 벤치에 앉아서 사과를 하나씩 먹어요. 바나나를 먹어요. 갈증이 가시고, 힘이 생겨요. 욕심 많은 어머니들은, 그렇게 쟁취한 ‘공짜’로 새끼들을 먹여요. 남이 흉보는 뻔뻔함으로, 곳간을 채워요. 가족을 지키죠. 우리는 그걸 먹고 컸어요. 그것 때문에 풍요로웠죠. 자식들만 바르고, 떳떳하면 돼요. 당신들은 그거면 돼요. 자신의 삶은 나머지일 뿐이죠.


마지막 밤에 거금 35만 원을 들였어요. 35만 원짜리 방을 예약했죠. 스프링 시티 리조트(Spring city resort)라고요. 노천탕까지 있어요. 베이터우(Beitou)라고 들어보셨나요? 타이베이에서 멀지 않은 온천 마을이에요. 온천 마을이니까 호텔이 많아요. 그중 평이 좋은 호텔이에요. 조식도 잘 나온다고 해요. 온천욕도 하죠. 갑자기 달라진 풍경도 보죠. 여행도 기승전결이 필요해요. 처음부터 절정이면 안 돼요. 다음이, 다음다음이 시시해지거든요. 마지막에 팡 터뜨려야죠. 창문 없는 감옥 같은 방에서, 풍경이 쏟아지는 방으로 이동하는 거예요. 자연의 품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힐링해야죠.


택시를 타고 베이터우 온천으로 향해요. 구불구불 산길이네요. 야생의 산이 아니라 주택이 빼곡한 산이요. 아기자기하게 예쁜 동네네요. 살아보고 싶은 곳이로군요. 화려하지 않고, 칙칙하지 않아요. 팽팽한 균형미가 언뜻 평범해 보이죠? 비범한 제 눈엔 보여요. 이곳은 반짝이는 마을입니다. 어머님과 이모님은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졌어요. 그래요. 풍경에 취해 보세요. 아직까지는 순조로워요. 이모님, 어머님이 동네방네 자랑할 만한 호텔이어야 할 텐데요. 저도 두근두근해요.


“별채 방도 괜찮으신가요?”


우리나라로 치면 전형적인 콘도미니엄이군요. 나쁘지 않아요. 그렇다고 35만 원짜리 느낌은 아니고요. 이 호텔은 온천이 유명해요. 온천만 입장료 내고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35만 원에는 온천 입장료가 포함인 거죠. 별채의 방이라니. 새로 지은 건물이겠죠? 한적하고, 오붓하겠죠? 헉! 이게 뭔가요? 전형적인 일본식 다다미 방입니다. 썰렁해요. 온기가 하나도 없어요. 문에서 보이는 공간이 전부. 와와. 감탄할 구석이 하나도 없군요. 방 가운데 참 의미 없는 좌식 테이블이 있고요. 테이블을 치우고, 이불을 깔아야 해요. 35만 원이라고요. 누구는 같은 돈 주고, 방도 업그레이드해줬다면서요? 저도 살짝 기대했죠. 업그레이드가 아니고, 다운그레이드잖아요. 이것들이 나를 뭘로 보고.


“다른 방 없나요? 방이 추워요. 곰팡이 냄새도 나요.”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용 가능한 방을 알아보겠습니다.”


마지막 밤이라고요. 이런 밤이어선 안돼요. 낙심한 제 표정에, 어머님, 이모님이 안절부절못해하시면 안 돼요. 마지막 밤이 아까워서 어쩌나. 실없이 웃으셔야 해요. 그런 밤이어야 해요. 저는 이 여행의 연출가입니다. 오랫동안 저의 꿈은 영화감독이었어요. 객석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넋이 나간 관객들을 상상했죠. 그런 영화를 만들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었죠. 지금은 이 여행을 연출하고자 해요. 어머니와 이모님의 뜨거운 박수를 받아야겠어요.


“본관에 방이 남이 있네요. 요즘 매일매일 만실이거든요. 다행이네요.”

“아이고, 우리 같은 노인네는 자라면 그냥 자야 하는 줄만 알지. 대단하다. 우리 조카.”


어깨에 힘 좀 들어가도 되죠? 짐 제가 다 들게요. 힘이 납니다. 신이 납니다. 침대 세 개가 있는, 트리플 룸이네요. 깨끗한 침대 세 개, 온천물이 콸콸 나오는 큼직한 욕실, 그리고 기본적인 테라스. 이게 전부예요. 거지 같은 다다미방을 보고 난 후라, 궁전처럼 보여요. 욕실은 작은 목욕탕 느낌이네요. 이것저것 따지면 35만 원이 싸게 느껴져요. 방이 금세 매진되는 이유를 알겠어요.


“이게 지금 유황 냄새지? 온천물이 콸콸 쏟아져. 아이고, 세상에. 뜨겁기도, 겁나 뜨겁다잉. 우리는 여기서 목욕할란다. 안 나갈란다.”


그래요. 언니, 동생 서로 등 밀어주면서 수다 떠셔야죠. 알아요. 사실은 아들에게 주는 작은 휴식이라는 거요. 야외 온천에서 혼자 좀 쉬라는 거죠? 감사합니다. 이모님, 어머님! 냉큼 빠져나와요. 노천탕에서 아래로 펼쳐진 마을을 내려다봐요. 몸은 뜨겁고, 얼굴은 시원해요. 약간 오줌이 마렵고, 목 주변엔 소름이 돋아요. 뿌옇게 올라오는 김으로 환각상태가 돼요. 이 행복은 성취한 행복입니다. 어머님은 대놓고 저를 졸랐고, 이모님은 제대로 걷지도 못 하시지만 포기하지 않으셨죠. 저 역시 없는 돈, 바닥난 잔고를 시침 떼고 이 여행을 지켜냈어요. 세상 모든 여행은 어렵게, 아슬아슬하게 이루어져요. 시간이 없고, 돈이 없죠. 마음의 여유도 없어요. 함께 하는 여행은 정말, 정말 어려운 거예요. 그 어려움의 끝에, 빛나는 행복감이 기다리네요. 해냈어요. 이루었어요. 가벼움은 힘. 무일푼의 힘을 강조했지만, 정말 무서웠어요. 이러다 빚까지 져야 하나? 그런 공포심이었죠. 죽음에 대한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빈털터리가 되고, 굴욕감을 느끼고, 사랑의 배신에 만신창이가 되면 우린 빛을 잃죠. 영영 회복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지죠. 작은 죽음인 거죠. 그때 우린 작게 죽어요. 모든 작은 죽음은 좋은 진짜 죽음으로 가는 연습이죠. 발버둥을 치지만요. 그 발버둥이 점점 덜 격렬해지고 있어요. 그게 가벼워짐이고, 지혜라고 생각해요. 다음 여행을 준비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모님까지. 우리 또 가요. 더, 더 놀아요. 의심 없이 잘 살았다고, 최후의 순간에 누구에게라도 자랑할 수 있도록요.


PS 스프링 시티 리조트 홈페이지(https://www.springresort.com.tw)에 들어가 봤어요. 문제의 그 방이 더 비싼 방이로군요. 업그레이드 방이었어요. 나름 챙겨준 거였군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는 다다미 방보다 본건물 아늑한 트리플 룸이 훨씬 더 좋았어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들아, 늙은 어미의 여행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