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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8090

옛날 극장의 추억

쿰쿰한 냄새의 재개봉관에선 오징어와 땅콩, 삶은 달걀을 팔았더랬죠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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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퍼온 당시 대한극장 사진

어머니는 저를 업고 곧잘 영화관을 가셨대요. 형도 같이요. 갓난쟁이인 제가 울면 토닥토닥 엉덩이를 두드리시면서요. 저야 기억에 없죠. 제가 글을 쓰고, 감수성이 풍부한 건 그때의 영화관 덕이라는 거예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을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기는 해요. 설마 두 살 아기가 그걸 기억한다고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 장면. 감옥에서 평생을 썩느니, 바다로 뛰어내리겠다. 그 부질없는 도박을 저는 어디서 봤을까요? 아마도 TV였겠죠. 토요명화에서 봤을 거예요. 자꾸만 극장에서 본 것 같아요. 어머니 등에서 영문도 모르고 그저 거대한 화면에 압도되면서.


국민학교 방학이 시작되면 재개봉관에서 태권브이,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똘이 장군, 전자 인간 337 등을 상영했어요. 영화표를 사면 책받침을 선물로 줬죠. 영화관은 난장판이죠. 하지만 극장에서 만화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방학 때뿐이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만화 영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꿈에 그리던 그것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죠. 태권브이가 출격하면서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브이' 주제곡이 흘러나와요. 떼창이 시작되죠. 태권브이는 얼마나 뭉클하고 적절할 때 지구를 구했는지 몰라요.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도 주제곡이 끝내줬죠. '우리들의 아라치 날리는 주먹에 파란 해골 13호가 납작코가 되었네'. 제 기억 속 가사는 그래요. 검색을 해보니 '악의 무리 팔라팔라 납작코가 되었네'. 이거네요. 팔라팔라가 뭐죠? 파란 해골 13호만 기억나요. 기억이 이리 허술해요. 그 허술한 기억을 잔뜩 미화해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거죠.


극장 안에서 먹을 걸 팔았죠. 작은 매대를 어깨에 걸치고 쥐포, 오징어, 삶은 달걀을 팔았어요. 영화관에 가는 것조차 일 년에 한두 번인 저는 극장에서 뭘 사 먹을 돈이 없었죠. 사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남들 영화 보는데 그 시야를 당당히 가리면서 쥐포와 오징어를 배달해 줬었죠. 갑자기 영화가 까맣게 사라지기도 해요. 끊어진 필름을 영사 기사가 이어 붙이는 중이니까요. 닥치고 기다려야죠. 누군가는 뭐야? 화를 내기도 하고, 휘파람으로 야유를 하기도 했죠. 그러고 보니 인도의 극장 풍경이 우리에게도 있었군요. 인도 자이푸르에서 인도 영화를 본 적 있어요. 관객들이 장면 하나하나에 반응하더군요. 같이 분노하고, 웃고, 기뻐해요. 우리도 그랬다는 걸 잊고 살았네요. 필름이 닳고 닳으면 세로로 줄이 생겨요. 비가 내리지 않는데, 비가 내리는 장면을 꾹 참고 봐야 했죠. 독재 정권을 홍보하는 대한 늬우스가 마치 전채요리처럼 먼저 상영됐죠. 아니다. 동네 금은방과 식당 광고가 먼저였어요. 수유리 이화 레스토랑과 라이온스 클럽이 기억나네요. 나는 언제 나이프로 썰고, 포크로 찍는 '이화 레스토랑'에서 '비후 스테이크'를 먹어 보나. 영화 속 장면만큼이나 먼 현실이었네요.


지금처럼 한 영화를 여러 극장에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 극장에서 한 영화만 보여줬죠. 국도 극장과 피카디리, 단성사, 서울, 스카라 극장 등이 있었죠. 대한 극장은 당시에 선구자였어요. 70mm 초대형 스크린과 THX 사운드 시스템으로 다른 영화관을 압도했죠. 대한극장에서 하는 영화들은 매진이 당연했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입장권을 확보해야 했어요. 극장 앞은 전쟁터였고, 줄은 끝도 없었죠. 빽투더퓨처 개봉 당시 대한 극장은 정말 대단했어요. 두 배 이상 받는 암표 장수들이 표 없는 사람들을 유혹했죠. 매진이 되는 영화들은 그걸 자랑하려고 새로 포스터를 찍었어요. 매진사례를 알리는 포스터로 시내 곳곳을 도배했죠. 성의껏 그린 극장 간판이 영화관 입구를 가득 채웠죠. 지금보다 더 영화로 꽉 찬 세상이었죠. 언제 이런 장면들이 다 사라졌을까요?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없어요. 왜 없지? 그 순간엔 몰라요. 한참을 지나야, 없구나. 부재를 각성해요. 지금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은 또 뭐가 있을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작은 위로가 된다고 믿어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요. 언젠가 죽는 딱 한 번의 삶을 위로받고, 위로 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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