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여행작가가 가고 싶은 곳

안 좋다고 해주세요. 안 가고 싶어지게

by 박민우

간사한 게 인간 아니겠어요? 그동안 여행이 좀 심드렁했어요. 어딜 가든 잠시 흥분하고, 방에만 처박혀 있었죠. 코로나 때문에 포르투갈 여행이 취소됐어요. 안 가는 것과 못 가는 것은 천지 차이더군요. '못 가는' 포르투갈은 취향 저격의 나라일 거예요. 보나 마나죠. 이렇게 좋은 곳을 못 올 뻔했다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매일 감격했을 겁니다. 지금 제가 너무도 가고 싶은 곳들을 꼽아 봤어요.


포르투갈, 그중에서도 마데이라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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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이 왜 가고 싶었냐고요? 물가가 싸다면서요? 날씨가 좋다면서요? 사람들이 순박하다면서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여서 가고 싶었어요. 부유한 나라는 물가도 비쌀 테니까요. 사람들도 깍쟁이일 테니까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는 부자가 되면 가고 싶어질게요. 여행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요. 상상력에 방해가 되니까요. 아니, 그 나라에 가서 거기를 안 가다니요? 그런 말로 후벼 파도 괜찮아요. 중요한 걸 놓치고 후회하는 쪽이 나아요. 게으른 여행자라서 포르투갈도 몰라요. 타르트가 맛있겠죠. 획기적으로 맛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돼요. 마데이라 섬은 좀 기대가 돼요. 페이스북에 누군가가 올려놓은 사진을 봤거든요. 눈이 휘둥그레 해지더라고요. 해안가에 오밀조밀 집들과 녹음이 우거진 트레킹 코스가 인상적이더군요. 바다만으로도 충분한데, 땅의 아름다움까지 있더라고요. 풍경과 해산물, 와인과 트레킹을 누리고 싶어요. 마데이라에서 갱년기 여행 작가 숨 좀 멎어보고 싶습니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돌로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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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하면 스위스죠. 스위스도 가보고 싶어요. 오스트리아 쪽 알프스도 그렇게 예쁘다면서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가장 아름다운 알프스는 이탈리아에 있다고. 제가 귀가 좀 얇아야죠. 허를 찔린 느낌이네요. 돌로미티는 신비로울 것 같아요. 제가 워낙 게으른 여행자였는데요. 어느 순간 트레킹에 눈을 떴어요. 알겠더라고요. 왜 사람들이 사서 고생하는지. 풍경이라는 게 여우 같아요. 사람을 가지고 놀죠. 입에서 단내가 폭발하고, 이따위 고생을 왜 하나 싶을 때, 짠 하고 최고의 풍경을 보여주죠. 불에 덴 것처럼 어쩔 줄 모르게 되죠. 이게 다 뭐야? 기습적인 풍경에 입은 벌어지고, 숨은 가빠오죠. 내가 보고 있는 게 뭔가? 말이 안 나와요. 아름답다, 멋있다. 그런 흔한 말로 풍경을 모독하고 싶지 않거든요. 붕어처럼 밉만 뻐끔뻐끔. 네, 돌로미티에 가면 그런 순간이 올 것 같아요. 착한 이탈리아 할머니가 밥 먹고 가. 스파게티를 한 냄비 끓여서 식탁 위에 올려줄 것 같아요(아, 이건 좀 망상이네요). 돌로미티에서 질질 짜고 싶습니다. 풍경에 완패하고 싶어요.


또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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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피여도 되고, 친퀘 테레여도 돼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해변 마을에 머물고 싶어요. 관광지니까 물가는 비쌀 테고요. 그래도 돈값하네. 아름다운 풍경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테죠. 오래 머물면서 단골집을 만들고 싶어요. 단골 빵집, 가성비 끝내 주는 와인, 단골 식당, 단골 생선 가게를 주기적으로 가고 싶어요. 바다가 지천이지만 수영은 안 하려고요. 보는 바다가 저는 좋아요. 내 곁을 든든하게 흐르는 바다를 두고 석양이 참 예쁜 곳에서 삼십 분 정도 앉아 있어야죠. 매일 같은 곳에 앉아서,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요. 비싼 식당에 큰 마음먹고 들어가서 와인 한 병에 지글지글 생선을 고양이처럼 파먹을 거고요. 시끄러운 이탈리아 수다를 경청해야죠. 알아듣지 못해도 즐거울 거예요. 내 방 발코니 그물 침대에서 책을 두 페이지 정도 읽고, 미지근한 와인을 조금씩 마셔야죠.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정신이 번쩍 들겠죠. 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환상이 깨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갈 꿈을 꾸죠. 이 먼 곳까지 와서 집을 그리워해요. 그러려고 왔냐? 그러려고 왔나 봐요.


왠지 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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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전혀 몰라요. 영어를 쓰는 나라라는 것 정도? 왠지 유쾌할 것 같아요. 먹는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노래하는 사람들이 거리마다 가득할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나라였어? 몰랐던 제가 새삼 한심할 것 같아요. 바닷물은 딱히 투명하거나 에메랄드 빛은 아닐 것 같고요. 대신 살찐 고등어가 유난히 맛있을 것 같아요. 안 좋은 날씨는 단 하루도 없을 것 같고, 사람들은 약간 게으르고, 지나치게 낙천적일 것 같아요. 수학은 잘 못하고, 춤 솜씨는 기가 막힌 날라리들이 제게 웃어줄 것 같아요. 여행자들이 넘쳐서 저의 존재감은 형편없겠지만, 그냥 그곳에 있는 게 축복이란 생각을 십 분마다 할 것 같아요. 굉장히 맛있고 두꺼운 빵과 달아도 너무 단 케이크가 후미진 골목 어딘가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테고요. 평생 주저앉고 싶은 나라일 거예요.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지상 낙원일 거예요. 몰타에서 눕고 싶은 밤이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글로 교류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은 사람이지만, 글은 저보다는 조금 더 컸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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