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생으로 웅장해 보신 적 있나요?
풍경이야 당연히 끝내 주죠. 방송이 장난인가요? 시청자들 리모컨 돌아가는 소리 안 들리나요? 세상 공짜 없습니다. 모든 출연자가 개고생을 하지는 않지만, 개고생을 한 출연자는 시청률로 화답받죠. TV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자들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세상 공짜 없어요. TV에 나오는 딱 그만큼만 찍는 거 아니라요. 주야장천 찍고, 그중 가장 좋은 것들을 편집하는 거예요. 쉼 없이 구른다고요. 그때그때 적절한 방송용 멘트는 자동판매기처럼 줄줄줄 나올 자신 있으신 거죠?
콜롬비아 잃어버린 도시 ciudad perdida - 목숨 먼저 잃어버릴 뻔했다오
EBS 세계 테마 기행 촬영 때였죠. 콜롬비아에 마추픽추 뺨 때리는 신비한 유적지가 있다는 거예요. 이거 대박이겠다. 페루의 마추픽추는 모르는 사람 없죠. 콜롬비아 씨우닷 페르디다 들어보신 분? ciudad perdida는 잃어버린 도시라는 뜻이에요. 페루 마추픽추보다 무려 650년이나 먼저 지어진 신비의 유적지. 캬아아. 4박 5일 트레킹을 해야 해요. 하아. 배탈이 나버려요. 저와 PD가 교대로 화장실을 들락날락. 트레킹 당일날 뻗어 버린 거예요. 어쩌죠? 어쩌긴요. 가야죠. 안 가면 아이템 하나를 통으로 날리는 건데요. 3박 4일로 끝내야죠. 설렁설렁 걷는 애들 빡세게 쫓아서 따라잡아야죠. 하루에 이틀 치를 걷는다고요? 입 닥치고 걸어도 게거품 나올 텐데요. 우린 놀러 온 게 아니잖아요. 개미들 줄지어 이파리 나르는 모습도 찍고요. 쌓여 있는 돌덩이도 찍고요. 풍경도 찍고요. 풍경에 감동하는 저도 찍어야죠. 그러면서 밀림을 걸어요. 이틀 치 거리를요. 배탈로 거덜 난 내장을 갈비뼈 안에 고이 담아 두고요. 한쪽 발이 컴컴한 절벽 쪽으로 쑥 빠졌어요.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웠죠. 아, 이래서 사람이 죽는구나. 몸이 만신창이가 되면, 정신도 만신창이가 돼요. 긴장을 해야 하는데. 몸에 힘이 빠지니까요. 될 대로 돼라. 이렇게 돼버리는 거예요. 우리 짐을 싣고 가던 말까지 발정이 나서, 도망가 버렸죠. 어딘가에서 암말의 울음소리를 들은 거예요. 네, 다행히 죽지 않았고요. 무사히 촬영을 마쳤죠. 무사히라고 해야 하나? 한국 와서도 며칠은 밖에 안 나가고 죽은 듯이 방에만 있었네요.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요. 그렇게 고생해서 뭐를 봤냐고요? 천이백 년 전에 지은 1,200개의 계단과 내리꽂는 폭포 줄기와 허물어진 유적지를 봤죠. 그때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숨어야 했나? 해석이야 분분하지만, 신비로운 옛날의 도시인 것만은 분명하죠. 매트리스는 먼지가 폴폴, 유적이고 뭐고 잠이 와야죠. 같이 트레킹 하던 서양 친구들이 카메라 들이밀지 말라고 짜증내고, 그러지 말고 찍게 해줘잉. 영업사원 노릇까지 하느라 5년은 늙었습니다. 여러분도 콜롬비아 가면 꼭 트레킹 하셔요. 그 개고생 저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에콰도르 침보라소 6천 미터 선을 생초보가 올랐다고?
저는 산에 욕심 없는 사람이에요.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르는 사람들은 삶이 무료한가 보죠. 산은 산대로, 저는 저대로 따로따로 존재하고픈 사람이라고요. 네, 또 방송 때문에 간 거죠. EBS 세계 테마 기행에서 남미를 다시 한번 가자고 하더군요. 콜롬비아 편이 시청률이 별로였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시청률은 별로고. 그래 내 낯짝은 TV로 보기엔 좀 많이 부족해. 테마 기행과의 인연은 여기까지구나 했죠. 재방송 시청률이 괜찮았대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산이라고들 알고 계시죠? 해수면에서부터 재면 에베레스트 산이 맞아요. 그런데 지구 중심부터 재면 에콰도르 침보라소 산입니다. 지구가 타원형으로 생겼잖아요. 침보라소 꼭대기가 지구 중심에서는 가장 먼 곳인 거죠. 우쉬카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얼음을 캐요. 그걸 시장에다 팔죠. 태초의 빙하를 부셔서 나귀에 싣고, 시장에 내다 파는 할아버지. 이런 아이템이 꿀 아이템이죠. 할아버지를 쫓는다. 얼음을 캔다. 내려온다. 시장에 판다. 이걸로만 거의 한 회를 채울 수 있어요. 해발 6천 미터가 무슨 의미인지 알게 뭐예요. 며칠을 고생해도 한 회 분이 나올까 말까인데요. 하루 바짝 고생해서 깔끔하게 한 회분 끝내면 장땡이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입술이 파랗게 변하지만 죽지만 않으면 돼요. 아이들도 슬리퍼 신고 잘도 쫓아오는데요. 머리통이 목에서 잠시 떨어져서 따로 노는 기분이네요. 목 아래가 통제가 안돼요. 한 걸음 한 걸음 달 표면을 걷는 것 같아요. 숨은 왜 이리 안 쉬어지죠? 숨을 쉬다 만 느낌인 거예요. 비닐봉지에 있는 산소만 겨우 들이마시고 내뱉는 느낌으로 계속 올라요. 산 자체는 일직선으로 쭉 올라가요. 딱히 어렵다고 볼 수도 없어요. 단지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거죠. 우쉬카 할아버지 딸이 준 설탕 몇 조각이 아니었으면 산 중간에서 뻗었을 거예요. 설탕 몇 조각이 그리 위대한 물건인 줄 그때 알았네요. 성인 몸통 만한 얼음을 캐서는 나귀 등에 얹고 터덜터덜. 저는 영혼 탈출 빈 껍질 몸으로 할아버지 뒤를 졸래졸래. 정상으로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풍경이 끝내주더군요. 조각보처럼 여러 색으로 나뉜 논밭이 장엄하게 펼쳐지더군요. 지금 올라가라고 하면 못한다고 할 것 같아요. 그땐 방송 출연 자체가 가문의 영광이었고, 도전하는 것도 짜릿했으니까요. 덕분에 시청률은 잘 나왔어요. 원래 출연자가 개고생을 해야 시청률이 찔끔하는 거죠. 세상 쉽지 않아요. 공짜 없어요. 참, 지금은 우쉬카 할아버지 동상까지 세워졌대요. 할아버지 영웅 만들기에 저도 일조했다고요. 에헴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재롱을 떠는 광대가 제 꿈입니다. 줄을 탈 수 있었다면, 불을 뿜을 수 있었다면 그걸 했겠죠. 그걸 할 줄 몰라서 글로 놉니다. 재롱을 떱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