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 외삼촌

조카는 삼촌이 그렇게나 두렵고 지긋지긋 했어요

by 박민우
DSC06191.JPG 80년대 서울 삼양동을 꼭 닮은 인도 다르질링


가끔보다는 자주, 죽은 외삼촌을 떠올려요. 뇌물을 받다가 걸려서 직업 군인에서 잘렸죠. 1970년대니까 50년 전 일이네요. 직장이 사라진 삼촌은 늘 화가 나 있었어요. 술에 절어서 살았죠. 그때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했어요. 삼촌이 다녀가면 집안은 황폐해졌죠. 어머니와 외삼촌은 서로 머리채를 잡고 드잡이를 하거나, 삼촌이 몰래 소주병을 훔쳐 도망을 치거나 했죠. 너네 집은 왜 그 모양이냐? 삼촌이 사라지고 나면 부부 싸움이 시작됐죠. 어린 저는 늘 삼촌이 죽었으면 했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삼촌을 돕고 싶어했죠. 이제라도 술을 끊자. 술만 끊으면 우리도 돕겠다. 삼촌은 소변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하자, 반성을 해요. 정신 차리고 잘 살아 보겠다. 이번 한 번만 믿어 보라. 마지막으로 5천 원만 달라. 머리도 깎고, 옷도 좀 사 입겠다. 아버지는 가게 금고에서 5천 원을 꺼내요.


-이 돈으로 술 마시면 다신 우리 볼 생각 마시오.

-알겠네. 알겠네.

-민우 네가 외갓집까지 다녀와라. 술집으로 내빼지 못하게


국민학교 1학년 아이가 삼촌의 감시자가 된 거죠. 8살 아이에게 이런 임무가 가당키나 하나요? 안 간다고 떼를 쓰다가, 결국 외삼촌을 따라나서요. 외삼촌은 길 건너 삼양동 산꼭대기에서 외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죠. 떡진 머리에 술로 찌든 검은 얼굴. 우리 집에서 제일 인물이 좋아야. 어머니 눈에 뭐가 씌웠나 봐요. 그냥 비렁뱅이인 남자를 저는 한 걸음 떨어져서 걸어요. 친구들한테 들키면 안돼요. 저는 거지 아들이 아니니까요.


-삼촌, 이젠 정말 술 좀 그만 마셔요.


아무 말도 안 하기엔 산동네까지 길이 너무 길었으니까요. 그놈의 입단속은 어릴 때부터 쭉 안 됐어요. 삼촌이 웃어요. 선량하게. 그리고는 냅다 뛰어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삼촌. 삼초온.


내 목소리는 주산부인과 원장님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컸지만, 삼촌을 붙잡지는 못했어요. 그때 삼촌의 얼굴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할 수 있는 돈이 있어서였을까요? 어린 조카에게도 면이 안 설 만큼 부끄러워서, 가장 예쁜 표정을 지었던 걸까요? 그때 나는 뛰어가는 삼촌을 보며 마음이 놓였어요. 그 산꼭대기 다 무너지는 판잣집까지 가지 않아도 돼요. 집주인네 개가 좀 사나워야죠. 저를 물어뜯을 것처럼 짖어댔거든요. 삼촌, 이왕 마실 거면 제대로 마셔. 그리고 빨리 죽어 줘. 삼촌에 대한 연민은 없었어요. 저는 그 나이에 노이로제라는 단어를 알았어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철렁. 심장이 명치 아래로 털썩 주저앉는 느낌을 알아 버렸죠. 삼촌이 온다. 삼촌이 온다. 그 생각만 하면 죽고 싶었어요. 삼촌은 그리고 일 년 정도 더 살았던 것 같아요. 살아서 뭐 하나? 어릴 때부터 저는 삼촌을 보고 자랐어요. 그래서 삶이 꼭 죽음보다 위대하거나, 낫다는 생각은 안 해요. 1년밖에 살지 못하는 남자의 그 빠른 뜀박질을 생각해요. 당장을 구원할 마약, 소주. 소주야, 기다려라. 기쁨에 치를 떨던 삼촌의 모습이 선해요. 지금의 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염세적인 아이였어요. 지금요? 저는 밝아요. 밝아졌어요. 노력했으니까요. 어차피 눈을 뜨고 있는 순간은 '삶'에 집중해야죠. 죽으면 '죽음'에만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매일 아침 희망을 이야기해요. 그게 어떤 사람에겐 상처일 수 있아요. 함부로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시대니까요. 비릿한 절망의 통증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아픈 사람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들 속에서 천천히 녹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가볍지만, 남발하지 않는 사람이 었으면 해요. 밝지만, 오만하지 않은 빛이고 싶어요. 노래가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마음으로 불러야죠. 오늘은 긴 밤 옛날 노래를 들으면 잠들겠습니다.


PS 가끔은 제가 왜 이 글을 쓰지? 저도 잘 모를 때가 있어요. 매일 씁니다. 오늘은 약간의 열기운이 있네요. 몸이 가라앉을 때, 글을 쓰기 좋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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