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안 깎는다고 더러운 사람 아니라라고요 ㅠㅠ
한국에 있을 때 가장 부담스러운 건 장례식이나 결혼식 참석이죠. 외국에 오래 있다 온 저만 다들 빤히 봐요. 그렇게 느끼는 게 더 크겠지만요. 제 나이 정도 되면, 결혼에 대한 압박은 없어요. 다 큰 조카들이 혹시라도 그런 걸 물으면, 형수님들이 알아서 커트해 주실 정도죠. 글을 쓰며 살기를 잘했죠. 왠지 혼자 사는 것도 어울리나 봐요. 어머니도 이젠 결혼 이야기 잘 안 꺼내세요. 아버지만 가끔 화를 내듯 어떻게 할 거냐. 타 들어가는 속을 못 참으시고 한 마디 하실 뿐이죠.
-수염 좀 깎아라. 제발!
네, 어머니 소원은 말끔한 얼굴입니다.
-야, 이게 멋있냐? 너희들도 입이 있으면 한 마디씩 좀 해 봐.
이모님은 이종 사촌들을 불러 모으더니, 제 얼굴 품평회를 하자시네요. 다들 제 눈치만 보네요. 입도 뻥끗 못해요. 제가 수염을 말끔하게 안 깎은 것뿐이지, 기른 것도 아니거든요. 그렇게 보기가 싫은가 봐요. 하긴 저도 런던에 어학연수 갔을 때 수염 기른 남자들을 보면서 똑같이 느꼈죠. 저게 멋있어? 더럽기는, 쯧쯧. '털'을 미용으로 생각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죠. 회사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매일 죽자 사자 면도를 하지는 않아요. 그 어느 나라도요. 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안 해요. 수염 얼굴들을 매일 보다보니 무덤덤해져요. 가끔 멋있어 보일 때도 있어요. 저야말로 면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정도 까칠한 얼굴이 제 얼굴이 됐어요. 수염을 깨끗이 밀면, 거슬리는 거예요. 얼굴에 여백이 많아서 더 못생겨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털을 말끔하게 밀지 않아요. 어느 정도는 남겨 둬요. 일부러요. 한국 사람 기준으로는 굉장히 추잡해 보인다는 걸 알죠. 알 수밖에 없죠. 어디서나 한소리 들으니까요. 그런데도 말끔하게 깎지를 못하겠어요. 여자들이 앞머리 1cm에 난리 나는 거와 같아요. 자기 눈에는 확연히 다르니까요. 외모가 자기만족이란 걸 언제 느꼈냐면요. 이십 년 전에 잡지사에서 일할 때요. 우리나라 최고 미인 연예인 중 한 명을 영화 촬영장에서 만났는데요.
-너무 뚱뚱해서 실망하셨죠?
설마 농담이겠지. 제일 작은 사이즈 옷이 너무 헐렁해서 옷핀으로 집어줘야 해요. 그런 몸으로 뚱뚱하다는 말을 해요. 우리는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외모를 생각하지만, 연예인은 모니터 안의 외모가 기본값이죠. 실물이 더 예쁜 건 별 도움이 안 되죠. 무조건 화면발인 거예요. 더, 더 말라서 화면에서 똑 떨어지는 얼굴이어야죠. 가시처럼 말랐지만, 여전히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죠. 당장 병원에 실려갈 것 같은 몸으로 더 빼고 싶어 해요. 자기 눈에는 여전히 살쪄 보이니까요. 제 수염에 불만이 많으신 어머니, 아버지. 한국 가면 제가 하루 정도는 말끔하게 밀게요. 그리고 몰래 또 조금씩 놔둘게요. 그러면 또 불효가 되는 건가요? 일단은 자유로울 것. 에라 모르겠다. 저는 그냥 불효자 하렵니다. 제 얼굴은 털이 좀 있어야 한다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가수가 매일 노래 연습을 하듯, 저는 매일 글을 써요. 잘 쓸 때도 있고, 못 쓸 때도 있죠. 그게 천 개가 모이면, 평균값이 나올 거예요. 괜찮은 평균이기를 바라면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