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게 대단한 건가요? 일기를 쓰는 사람만 해도 수백만 명일 텐데요. 대단한 일까지는 아니죠. 저는 게으른 놈이라, 대단한 일입니다.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초반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재미를 붙였더랬죠. 사진 올리고, 글 올리다 진 빠지더군요. 할 게 못 된다. 어느 순간 손을 놓게 됐죠. 제 이름으로 나온 책이 열 권이지만,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셀러도 아니고요. TV 여행 프로그램 출연도 뚝 끊겼어요. 방콕에 머무니까요. 손 놓고 있다간 잊힌 글쟁이가 되겠더군요. 신비주의 작가면 몰라도요. 버젓이 살아 있고, 관종 기질도 있는데요. 이렇게 잊힐 수는 없잖아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글을 쓰기로 해요.
매일 쓰자.
다짐을 하고 후회해요.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잡지사에서 일할 때도 마감 넘겨서까지 원고를 붙들고 있었어요.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제 책은 열 권이 아니라 스무 권이었어야죠. 매일 글쓰기라뇨? 시작은 어찌어찌했지만, 금세 한계가 오더군요. 쓰기 싫고, 눕고 싶고, 유튜브 보고 싶어지더군요. 글이라는 게 성실하기만 하면 되나요? 누구나 읽을만한 거여야죠. 꾸역꾸역 채우기만 하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걸 아니까 더 쓰기 싫더라고요. 잘 쓴 글이 아니면, 썼다는 것뿐인 거니까요. 그런 쓰레기 같은 만족감도 싫었어요. 스스로 정한 마감 시간이 있어요. 태국 시간으로는 밤 열 시. 한국 시간으로는 자정이 되기 전까지는 끝내야 해요. 아침에는 힘이 넘쳐요. 마음만 먹으면 금세 끝내죠. 식은 죽 먹기가 돼요. 식은 죽 먹기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식은 죽은 천천히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딴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식은 죽이니까 미뤄두는 거죠. 세탁기 돌리고, 방청소하고, 점심 정도는 만들어 먹고. 이러면 해가 져요.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열두 시간인 게 분명해요. 사람들이 순진해서 오냐오냐 하니까 시간 새끼들이 염치도 없네요. 시간과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제 식은 죽을 끝내야죠. 한 시간 정도 남았을 때, 죽은 갑자기 뜨거워져요. 이걸 한 시간 안에 어떻게 먹어? 천불이 납니다. 후회가 밀려들어요. 식은 죽일 때 얼마든지 끝을 냈어야죠. 죽이 이렇게 뜨거워질 줄 누가 알았나요? 아, 한 시간 안에 못 먹을 수도 있겠다. 그때부터 한 술 한 술 입으로 가져갑니다. 맨발에 모래들이 뾰족뾰족 박히는 통증을 느끼며 걷는 순례자가 돼요. 어쩌겠어요. 순례자는 포기할 권리가 없는 걸요. 포기는 옵션에 없죠. 그러니까 걸어야 해요. 쾌적하고, 복지를 누리는 안락 개미일 수도 있었지만, 셀프 베짱이가 되어서 온갖 기구함을 독점하고 한 글자, 할 글자 써내려 가요. 마감 시간에 다 이르러서 겨우겨우 끝내요. 죽다 살아난 기분이 들어요. 살고 싶으면, 글을 끝내거라.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긴박해져서, 창백해져서 글을 끝내요. 끝을 내고 나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홀가분함이 밤의 저를 지배하죠. 가벼워진 자부심은 왕 안 부럽죠.
매일 써요. 비법이요? 그게 있다면 아침에 끝냈겠죠. 언제나 미뤄두고, 못할 것 같다. 주저앉고 싶을 때 머리채를 질질 끌고 가는 것뿐이에요. 내가 나를 학대하고, 내가 나를 구원하는 자작극이죠. 이렇게 오래오래 쓰고 있을 줄을 몰랐어요. 앞으로요? 그걸 누가 알겠어요. 언제라도 그만 둘 거예요. 저는 약속의 감옥에 갇혀있지 않아요. 그래서 누구보다 강하죠.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자유를 안고, 매일 씁니다.
방콕의 밤도, 서울의 밤만큼이나 덥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