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취향 분석하시고, 동행 구하시는 거 맞죠?
저는 카페 성애자예요. 커피보다는 분위기 때문이죠. 예술이 별건가요? 한 사람의 정신을 그림으로, 구조물로 표현하면 예술이죠. 그런 의미에서 카페는 흥미로운 예술 여행이죠. 제 취향을 누구에게 강요하겠어요? 그러니까 혼자 다니죠. 노트북 켜놓고 글을 쓰다가, 음악을 듣다가, 뉴스를 보다가, 아무것도 안 하다가. 고작 그딴 걸 하려고 비행기를 타요. 이해의 영역은 아니죠. 처음부터 이런 취향도 아니었고요. 백 명이면, 백 가지 취향이 있죠. 여러분은 어떤 취향의 여행자인가요?
1. 역사와 지식이 주는 기쁨 - 학구파
유적지와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죠. 유적지 돌덩이만 봐도 좋다는 사람도 봤어요. 지식이 많을수록 상상력이 더 풍부해지니까요. 한 때의 찬란함을 곱씹으면서, 세월의 허망함도 느껴볼 수 있고요. 지적 쾌락이 주는 뿌듯함은 또 덤이죠. 누구에게 취향을 말할 때도 괜히 힘 좀 들어가고요. 아, 저는 물론 그런 사람이 못 됩니다. 그런 친구와 동행한다면 철저히 따로 다녀야죠.
2. 자연보다 위대한 건 없음 - 대자연 전율파
일출이나, 에메랄드 빛 바다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못 봤어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호불호를 타지는 않죠. 단, 그런 대자연을 보기 위해 고생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여기서 호불호가 갈리는 거죠. 더, 더 깨끗한 바다를 보기 위해서 무인도에서 잘 수 있는지, 산 꼭대기 풍경을 보기 위해 쥐 나도록 걸을 수 있는지,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네 시에 일어날 수 있는지. 네, 역시 저는 아닙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다뇨? 잠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트레킹에 대한 매력에 눈을 뜨긴 했어요. 걸어서 지구를 돌아볼까? 안 할 거지만, 그런 상상을 곧잘 해요. 상상으로 끝내야죠. 아니 되옵니다.
3. 시끌벅적, 혼잡함의 매력 - 대도시파
저는 대도시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도시가 편해요. 혼잡하고, 시끄러워도 그러려니 해요. 사람이 많으니, 흥미로운 곳도 많죠. 카페는 물론이고, 재즈바, 도서관, 대학교, 묻지 마 버스 여행이 있죠. 구글맵 요게 참 효자예요. 우나 나라에서는 먹통에 가깝지만, 외국에선 천하무적이죠. 주변의 카페, 식당, 볼거리 등을 알아서 정리해 주니까요. 어디든 존재하는 한국인들의 후기를 참고하면 알찬 여행이 가능하죠.
4. 나는 먹으러 왔다 - 식도락파
대세 여행 중 하나죠. 유명 맛집을 가는 건, 연예인을 실물로 보는 것과 같죠. 사진으로, 후기로 실컷 상상하고, 직접 그곳에서 시그니처 메뉴를 영접할 땐 뭉클하기까지 하죠. 요즘 사람들 집요해요. 맛집이기만 하면 몇 시간 기다리는 거 안 무서워하던데요? 아니, 몇 시간 기다리는 곳이어야 잘 왔구나 생각하더라고요. 네, 저도 식도락 파 맞아요. 하지만 몇 시간 기다리는 건 안될 말이죠. 입이 즐겁자고, 내 다리, 내 인내심, 내 피로를 학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5. 사는 게 남는 거야 - 쇼핑파
물건을 보면 콧구멍과 동공이 동시에 확장되는 사람들이죠. 쇼핑파는 쇼핑파랑 같이 다녀야죠. 아닌 사람에겐 너무 큰 희생이니까요. 저는 쇼핑파가 될 수 없어요. 돈이 없으니까요. 욕망이 알아서 조절되더군요. 쇼핑파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좋아요. 단 한 시간을 넘기지 말아야죠. 그 이상은 지쳐요. 기 빨려요. 예전에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옛 직장 후배들이 놀러 왔어요. 미친 듯이 명품을 쓸어 담더군요. 괜히 제 눈치를 보더라고요. 전 상관없는데요. 한 백화점에서 손님에게 추첨으로 사은품을 줬는데, 덜컥 당첨이 됐어요. 이건 선배 거라며, 저한테 양보하더군요. 제가 그래서 프라다 여권 지갑을 장만했다는 거 아닙니까? 너무 커서 안 들고 다녀요. 제길.
6. 아무것도 안 하면 초조해 - 에너자이저 파
쉬는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이죠. 어렵게 왔으니 좋다는 거, 맛있다는 거, 유명하다는 건 다 보고, 먹어야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전투적으로 일정을 소화해요. 여행 와서 책이나 읽고, 마사지나 받는 사람들이 제일 이해가 안 가죠. 가끔은 피곤해서 코피도 좀 쏟아 봐야죠. 어떻게 온 여행인데요. 하나라도 더 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데요. 여행 프로그램 촬영도 에너자이저 파 여행과 비슷해요. 하나라도 더 찍어둬야 한다. 꼭 필요한 것만 찍자가 아니라, 나중에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 잠들기 전까지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해요. 여행으로 극기 훈련, 여행으로 다이어트를 원하신다면 에너자이저 파와 동행하세요.
7. 가기는 어딜 가? 숙소에서 책이나 읽어야지 - 배짱이 파
여행을 온 건지, 잠자러 온 건지. 가성비로만 따지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류죠.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왜 이 먼 곳에서 하려는 걸까요? 최소한 주변 골목이라도 돌아야 여행의 예의가 아닌가요? 갑자기 달라진 날씨, 갑자기 달라진 침실, 집에 없는 수영장 정도면 충분하다는 거죠. 다 가져서 더 행복하지 않다면, 덜 누린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금욕적인 여행자들은 이미 득도한 사람 아닐까요? 짐 싸서 공항으로 돌아가는 게 참 힘겨워 보이더라고요. 여행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짐 싸고, 발권하고, 비행기 기다리는 모든 게 귀찮아 보여서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사람에게 제 글이 닿기를 바라냐면, 전부요. 모두가 제 글을 읽기를 원해요. 불가능하다뇨? 매일 한 명씩 늘어나는데요. 죽을 때까지 한 명씩 늘어나면 이미 이룬 거예요.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머무는 건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