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로 정말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데려가 드려요?
어릴 때 기억이야 필터링을 거치죠. 그립다고요?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이었나요? 겨울이면 방문이 흔들릴 정도로 외풍이 심했죠.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어요. 재래식 화장실 바닥으로는 구더기들이 들끓었어요. 가끔은 팔뚝만 한 쥐새끼들도 뛰어다녔죠. 어린 저를 골목으로 데려가, 삥을 뜯는 양아치도 흔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 양아치들도 중학생이거나, 국민학교 5, 6학년 정도였죠. 굶주리고, 헐벗은 아이들은 못할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 아이들의 집엔 술 받아 오라며 윽박지르는 아버지들이 있었죠. 어느 날은 열린 대문으로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세요. 쌀가마니에서 쌀을 좀 퍼오래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저는 그걸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담으라며 핸드백까지 주시더라고요. 무슨 핸드백에 쌀을 담아 달라고 하나? 이상하긴 했지만, 할머니를 거역하기엔 제가 너무 어렸죠. 나중에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맞아 죽을 뻔했죠. 할머니는 너무도 차분하고 당당했어요. 어린아이는 할머니의 쌀도둑에 열심히 협조했죠. 길거리는 알코올 중독자 천지였어요. 여기도 비틀, 저기도 비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길바닥에 퍼질러서 잠꼬대를 하거나요. 그때 국민 영화가 '엄마 없는 하늘 아래'였어요.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정신 착란증으로 정상 생활이 불가능했죠. 삼 형제는 아슬아슬 가난과 맞서 싸웁니다. 전 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든 국민영화였죠. 아마 3편이었을 거예요. 3편까지 제작됐으니 얼마나 대단한 인기였는지 감이 오시나요? 간장 한 병을 사서 집으로 가요. 삼 형제 중 둘째였을 거예요. 보통 간장이 아니죠. 맹물에 소금간만 해서 수제비를 끓여먹다가 드디어 간장을 쓸 수 있게 된 거니까요. 간장이 고기반찬 이상이었던 거죠. 둘째는 너무 흥분해서 넘어지고 말아요. 간장 병은 와장창 깨지고 , 아이는 통곡을 하죠. 저도 그 장면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관객들은 눈물바다가 되죠. 저 소중한 간장을 깨 먹다니. 너무도 슬프고 기가 막혀서, 온 국민이 따라 울었죠.
제 또래의 여자 아이였어요. 여섯 살 때쯤이었을 거예요. 고아원에서 도망 나왔다는 거예요. 우리 집에서 밥을 얻어먹어요. 깨끗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는 보자기가 하나 있었죠. 옷도, 수건도, 치약도 보자기 안에 있더군요. 밥도 잘 얻어먹고 그 아이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그 어린아이는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영하 2도였나? 학교에선 그렇게 확실히 추워야만 석탄을 배급해 줬죠. 고시리 손으로 추위에 떨면서 석탄을 기다렸죠. 사람들은 늘 몸을 긁었어요. 머리에는 이와 서캐(이의 알)가, 몸에는 빈대가 피를 쪽쪽 빨며 동거했죠. 나프탈렌 냄새는 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진동했고요. 치실은 전 국민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시대였죠. 악랄한 구취가 기본값인 시대였죠. 엄마들의 화장은 귀신 뺨치게 기괴했어요. 목과 얼굴색은 완벽한 투톤이어야 했죠. 밀가루톤 베이스에 초고추장 색 립스틱으로 완성된 달걀귀신 메이크업이 미아리의 대세였죠. 꼬불꼬불 오래가는 파마를 버섯처럼, 솜사탕처럼 머리에 얹은 아줌마들 뿐이었죠. 벗겨질 대로 벗겨진 양은 도시락통에선 김칫국물이 뚝뚝 흘렀고, 운동화 밑창은 뚫어져서 모래가 쓸려 들어갔죠. 옛날이 좋으세요? 저도 좋아요. 화사한 봄날의 소풍이, 추운 방에서 까먹던 귤이, 초겨울의 삼립 호빵 통이 그리워요. 그렇다고 해도, 그 순간에 머물면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요. 이미 지나간 과거니까 아름다운 거죠. 지금도 먼 훗날 그렇게 기억될 거예요. 촌스럽고, 구수한 기억으로 재구성되겠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의 영혼은 흔들리는 주파수고, 그것들은 허공을 떠돌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주파수가 마주칠 때 잠시 희미한 불꽃이 반짝. 제 글이 잠깐의 반짝임이었으면 해요. 그래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