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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8090

여행지로서 일본, 저랑은 안 맞아요

취향이 일본스러운 것과는 잘 안 맞나 봐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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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란 나라가 별로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왜 일본이 여행지로서 확 끌리지 않는가(개인적으로요)에 대해서 써보려고요. 백이면 백이 다 좋아하는 나라가 어디 있겠어요? 어느 나라나 취향을 타죠. 저는 사실 일본에 환장할 줄 알았어요. 70년대 베이비 붐 세대에게 일본은 아이돌이죠. 소니 워크맨을 만든 나라니까요. 지금의 아이폰, 아니 그 이상이었죠.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전축(그때는 턴테이블이 있는 음향 기기를 그렇게 불렀어요)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VTR도 마찬가지죠.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계를 만들다니. 코끼리 밥솥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강남 엄마였죠. 조지루시 보온병도 좀 사는 집이면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했고요. 거기다가 일본 만화는 또 얼마나 재밌었냐고요. 우리 때는 손바닥만 한 해적판 만화책이 범람했죠. 조잡하게 번역한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시티 헌터, 북두 신권을 수업시간에 몰래 읽었죠. 아다치 미츠루의 H2는 또 얼마나 달달했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FOVcuW0FvgA

일본 코카콜라 광고예요. 80년대 일본의 풍요로움을 생생하게 보여주죠. 걸작 광고로 평가되죠.


https://www.youtube.com/watch?v=Iruyrdl_nQA

일본 광고를 그대로 가져온 한국 코카콜라 광고고요.


일본만 가면 세련된 선남선녀가 어디에나 있고, 한참 앞선 문명과 극단적인 깨끗함, 남다른 도덕관과 질서가 신세계처럼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어요. 막상 일본에 가보니까, 무덤덤한 거예요. 왜지? 왜지? 향기가 다 빠진 와인처럼 맹숭맹숭한 거예요. 이유가 뭘까요?


1. 너무 심각하게 사람이 안 보여요


도심지는 당연히 사람 천지죠. 주택가로 가면 사람들이 안 보여요. 없어요. 정말 사람들이 사나? 빈집과 사람 사는 집을 어떻게 구별하지? 걸어 다니지를 않나? 교외로 조금만 들어간 주택가는 묘지 분위기가 나요. 파친코(도박 오락기)에 가면 또 사람이 한가득. 우리도 요즘은 걷는 사람이 많이 없기는 하죠. 집 앞에 꾸며 놓은 예쁜 화단, 쓰레기 없는 골목들이 예쁘긴 한데, 금세 시들해져요. 시든 꽃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2. 라멘이 이렇게 짠 음식이었구나


제가 태국에 있다 우리나라에 가면 놀라는 게 음식 간이예요. 그렇게 싱거울 수가 없어요. 아예 소금을 안 넣는 건가? 국밥류는 특히 싱겁더라고요. 간을 거의 안 하는 추세인가 봐요. 알아서 소금을 더 넣어 먹든가 말든가가 요즘 한국 국밥의 기본 간이더라고요. 일본에선 너무 짜서 깜짝 놀랐네요. 라멘 국물이 너무 짜서 면만 조금 건져 먹고 나왔네요. 내가 잘못 고른 걸까? 다른 라멘집에서도 두 젓가락 먹고 나왔어요. 우리나라 평균 입맛에는 짠 음식이 많아요.


3. 일본 음식 중에 뭐가 맛있다는 거지?


돈이 많은 사람은 오마카세 위주로 먹겠죠. 오마카세는 요리사 마음대로 해주는 요리를 뜻해요. 어느 정도 돈을 내고 초밥이라든지, 일본식 가정식을 먹으면 확실히 더 맛있겠죠. 저도 현지 친구 덕에 소문난 집에서 초밥도 먹고, 정식도 먹었죠. 돈가스, 카레 류도 맛집에 가서 먹어 보고요. 훅 들어올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워낙 잘하는 집이 많아서인가 봐요. 제 혓바닥이 5성급 호텔 수준은 아니라서요. 미식가들이 감별해 내는 결정적인 수준차를 못 알아채는 걸 수도 있고요. 일본은 한 번 정한 레시피를 잘 안 바꾸잖아요. 순혈주의. 우리는 말 많은 손님들 취향을 즉시 반영하고요. 옛날 일본인 입맛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똥고집 레시피 때문은 아닐까요? 일본에서 먹었던 음식은 저를 사로잡지 못했어요.


4. 뭔가 막 이국적이지가 않아요


일본 글자는 확 다르죠. 도심의 간판을 보면, 이국적이기는 해요. 하나 같이 눈썹을 다듬는 남자들, 헤어젤로 떡칠을 한 머리를 보면서 아, 여기가 일본이구나 생각해요. 우리나라랑 비슷해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만화나 영화로 일본을 너무 많이 봐서인가 봐요. 이렇게 생겼겠지.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생긴 거예요. 버스를 타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아니라, 매일 출퇴근하는 일본 회사원이 된 것 마냥 자요. 잠이 쏟아져요.


5. 답답한 공기가 저를 짓눌러요


최근엔 좀 나아졌으려나요? 와이파이가 안 되는 카페가 대부분이었어요. 인터넷을 못 쓰는 게 우선 답답하죠. 하지만 대안은 있죠. 포켓 와이파이를 신청해서 가져가면 돼요. 와이파이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의심 많고, 사생활 끔찍이 중요한 사람들이라 인터넷(데이터) 나눠 쓰는 게 찝찝한 걸까요? 변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도 있죠. 아, 몰라. 변하는 건 더 싫어. 맹목적인 '고인 물' 느낌이 도처에서 나요. 융통성이 없는, 아니 있을 필요가 없는 인형 느낌이랄까요? 그런 느낌 때문에 정이 안 붙더라고요. 도시 형태를 갖춘 사막 느낌. 미묘하게 강렬한 고립감이 저와는 맞지 않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반전 매력이 어딘가에 있겠죠. 일본은 큰 나라니까요. 지금은 가장 먼 나라가 됐네요. 두 나라 사이가 회복되면 저는 일본을 갈까요? 아, 가장 친한 여행 친구 카즈마에게는 꼭 가 봐야죠. 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어요. 대만과 홍콩을 자전거로 돌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특히 대만은 이상하게 좋아요. 취향이란 게 그런 건가 봐요. 딱히 뭔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좋고, 마냥 좋고, 더욱 좋아요. 벽에 핀 지지부진한 이끼까지요.


PS 매일 글을 써요. 어차피 시간은 흐를 테고, 늘 후회만 남죠. 글을 쓰면, 그래도 나는 이것 만큼은 했다. '덜 후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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