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대에서 고문관이었습니다 - 중간은 아득한 꿈

두루 평균이라면 위대하신 겁니다

by 박민우
오늘의 태국 방콕 우리 동네


네, 저는 군대에서 고문관이었어요. 용기가 필요한 고백이죠.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텐데요. 군대 인연 중에 지금까지 연락 닿는 사람도 없는데요. 저는 고문관이었어요. 그렇게 될 줄 몰랐죠. 뭐든 중간은 했으니까요. 중간이 어렵나요? 공부를 못 하는 애들이 답답했어요. 반에서 중간이 어러워? 그렇게 쉬운 문제를 어떻게 틀릴 수가 있지? 입대할 때도 딱히 두려움이 없었어요. 행정병으로 차출돼서 문서 작업이나 지겹게 하겠지.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서로 안 데려가려는 거예요. 행정반은 티오가 없대요. 포병이었는데 가방 끈 긴 놈은 필요 없대요. 농사짓다 오거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와야 대접받더군요. 총검술을 해도, 낫을 들고 제초작업을 해도 다들 막 웃어요. 서울 놈은 뭘 해도 어설프다면서요. 총기를 닦아도 더럽대요. 제 눈엔 먼지 하나 안 보여요. 그런데도 총이 더럽다면서 욕을 한 바가지 먹어요. 사격을 하면 열 발 중 두 발만 표적에 들어가 있어요. 행군할 때 다리에 쥐가 나서 구급차에 실려가야 했죠. 일요일이면 모포를 털어요. 먼지를 떨구는 거죠. 둘이 호흡을 맞춰가며 당기면 팡팡 소리가 나요. 그 소리가 저는 안 나요. 저랑 한 조가 되면 모포도 잘 안 털리더라고요. 자신감이 없어지면 더, 더 못 해요. 실수만 하고, 자발적인 의욕은 사라지죠. 나서면 욕이나 먹겠지. 더 기어들어가게 되죠. 사라졌으면, 아무도 내 존재를 몰랐으면. 매 순간이 가시방석이에요.


제 밑으로 서강대생 한 명이 들어와요. 4년제를 다니는 사람도 몇 없던 부대였어요. 이례적인 일이었죠. 2인 1조로 배수로를 파야 했어요. 왜 우리는 한 조가 됐을까요? 그때 제 목표가 뭐였냐면요. 중간만 하자였어요. 각자가 맡은 구역을 열심히 파요. 자연스럽게 시합이 되더군요. 서강대생과 저는 웃음끼도 싹 거두고 곡괭이질을 해요. 우리가 1등이었어요. 횟수로는요. 누구보다 열심히 곡괭이를 꽂았으니까요. 헛구역질이 다 나오더군요. 우린 알았어요. 우리 실력으로 중간도 어렵다는 걸. 해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란 걸.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건 성실함 뿐이었죠. 그리고 우리는 압도적인 꼴찌를 해요. 남들의 반도 못 팠죠.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며 땅에 꽂히기 전까지는 힘을 푸는 요령을 알 리가 없죠. 무조건 힘, 힘, 힘, 이마에 힘줄이 뜯어지도록 강, 강, 강. 그리고 완패했죠. 평균이 이렇게나 어렵다니. 하늘을 우러러 최선을 다했으니, 희망은 없어요. 우린 뭘 해도 웃음거리가 되겠죠. 중간만 하기는 반에서 1등하기보다 훨씬 아득한 과욕이었죠.


땅을 팔 일이 없으니, 지금 저는 고문관이 아니에요. 다시 땅을 파게 된다면 또 웃음거리가 될 테죠. 우린 모두 웃음거리예요. 모두 잘할 수는 없으니까요. 내 안의 열등함을 명심하고, 타인에게 관대해지기. 언젠가 모두가 자신을 비웃을 때, 당당히 맞설 힘을 그렇게 적립해야죠. 세상에 대한 관대한 시선은 결국 나를 위한 거더라고요. 나를 변호하기 위한 작은 저축인 거죠. 무협지에 나오는 고수처럼 주변의 잡초가 후루룩 사라지는 신공을 펼치던 선임들의 낫질이 생생하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은 뭘까요? 그런 질문을 하면서 써요. 질문만 할 수는 없잖아요. 뭐라도 해야죠.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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