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농구 좋아하셨나요? 서장훈은 눈엣 가시였죠. 키만 큰 게 아니라, 슛도 좋고, 볼 장악력도 좋고, 스피드도 나쁘지 않고. 우리 학교(고려대학교)도 가끔 이기기는 했지만, 서장훈이 있는 연세대학교는 천하무적이었죠. 가끔 X발 욕까지 하더라고요. 개싸가지구만. 이상민이나 우지원처럼 곱상한 선수였다면 그렇게까지 미웠을까 싶어요. 인상도 한몫했죠. 저 인간이 질질 짜는 모습을 봐야 하는데. 경기에서 대패하고 통곡하는 모습 보는 게 소원이었죠.
요즘 서장훈이 TV에서 많이 보이죠. 멘트를 칠 때 들어오고, 빠지는 걸 귀신 같이 알더군요. 운동선수라서 그런 걸까요? 오버하지도 않아요. 서장훈이 오버하면 시청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걸요? 뭐 믿고 나대냐면서요. 강렬한 인상 때문에, 싸우자 분위기가 되어 버리기 쉽죠. 그걸 알어서일까요? 절대로 욕심을 드러내지 않아요. 들키지 않는 걸 수도 있죠. 욕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주눅 든 모습도 없어요. 건물주라서일까요? 원래부터 부잣집 아들이었다면서요? 유튜브 '무엇이든 물어보살' 보시나요? 볼 때마다 놀라요. 현실감과 통찰력이 철학과 교수 뺨치더군요. 운동만 했을 텐데, 집도 부잣집이었으면 철 들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의 조언은 책으로 나와도 되겠더군요. 농구 코트의 그 싸가지가 저 서장훈이란 말인가요? 요즘엔 서장훈과 친구인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라니까요. 잘 들어주고, 적당한 선에서만 참견해 주는 듬직한 친구가 딱 서장훈이더군요. 최근에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스무 살 여자가 울먹이며 상담을 해요. 낳아 준 부모님인 줄 알았는데, 키워준 부모였던 거예요. 이제는 독립을 해라. 하아. 친부모도 살아 있더군요. 기른 정이 있을 텐데, 어찌 저리 매정하게 나가라고 할까? 친부모는 이 소녀에게 정부 지원금이 꽤나 나온다는 걸 알고 같이 살재요.이제 와서요. 새삼 세상 참 막장이다 싶더군요. 이 소녀가 가진 돈은 이백만 원이 전부. 독립을 하려고 해도 돈이 없어요.
-키워준 부모님한테 매달 5,60만 원을 드려. 하숙비라 생각하고. 드리고 좀 더 살게 해달라고 해. 서운한 것도 있겠지만, 키워주신 은인이야.
저는 무조건 나오라고 했을 거예요. 키워준 부모도 참 매정하다. 이젠 죽으나 사나 혼자라고 생각하고 이 악물고 살아. 키워준 부모도 다시 볼 일 없는 남남이 라 생각해. 전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적을 만들지 않고, 너무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나요? 서장훈의 이런 놀라운 현실감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물론 오락 프로그램이고 대본일 수 있어요. 서장훈의 말투를 잘 보세요. 내공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와요. 서장훈이 이렇게 멋진 어른이 된 이유가 뭘까요?
1.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서장훈은 중환자실에 두 달간 입원한 적이 있죠. 경추 신경을 다쳐서 어깨와 양팔이 마비가 됐죠. 서장훈 하나 잡으려고 삼성 전자에선 후드려 패는 수준으로 반칙을 했으니까요. 서장훈이 입에 욕을 달고 살았던 건, 그만큼 집단 괴롭힘의 희생양이어서죠. 심판이 안 보면 때리고, 잡아당기는 건 흔하디 흔했던 시대니까요. 저같이 멍청한 사람은 화면에 잡힌 서장훈의 욕설만 보죠. 아무리 맞아도, 말도 안 되는 반책을 해도 입 닥치고 공손하게, 선수답게 페어플레이만 하렴. 그런 사람이 저 하나였겠어요? 늘 억울한데, 욕까지 먹어가면서 선수 생활을 했죠. 아무 희망이 없던 중환자실의 두 달. 약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공부가 되지 않았을까요?
2. 연세대 오빠 부대는 서장훈을 외면했다
여중생, 여고생을 구름 떼처럼 몰고 다니던 팀이 연세대 농구부였죠. 파란색 유니폼은 꽃미남을 상장했죠. 유재학, 문경은, 이상민과 우지원이 그런 연세대학교 이미지에 부합했죠. 네, 서장훈은 아니었죠. 잘해 줘서 고마워. 딱 거기까지. 여성팬들은 냉정했죠. 누군가가 훨씬 더 환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걸 바라만 봐야 했죠.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는 건 어쩐지 씁쓸하죠. 내 노력은 묻히는 건가? 억울할 수도 있죠. 그런 시간을 오래오래 견디면서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요? 잘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더 사랑받는 사람과는 다른 방향성이 생긴 거죠.
3. 이거 안 해도 먹고살아. 그러니까 즐길 수 있음
이 부분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분일 거예요. 서장훈은 연예인과 운동선수 통틀어서도 최상위권 부자라면서요? 방송 안 해도 돼요. 재밌으니까 하는 거겠죠. 잘리면 끝장이다. 벼랑 끝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과는 출발점이 다르죠. 어디서든 오버하지 않는 이유인 거죠. 더 놀라운 건, 그래서 건방지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거죠. 운동선수들이 선후배 위계질서가 좀 엄격한가요? 방송국 회식이나 술 자라에서 깍듯한 모습으로 주위에서 평판도 좋지 않을까요? 능력도 중요하지만, 실제 인성이 별로면 그 바닥 출연은 뚝 끊기거든요. 이제 저는 서장훈을 방송인으로 보지 않아요. 스승님이십니다. 새겨듣자. 경건한 자세로 집중해요. 지금까지 날고 기는 방송인과는 또 다른 모습이죠. 저는 일종의 진화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멋지고, 매력적인 톱 연예인이 또 한 명 생겼군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하루기 길면 여기서 잠시 쉬어가세요. 삶이 만만치 않으시죠? 제가 작은 휴게소가 되겠습니다. 떡라면 한 그릇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