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간사한 취향의 역사

지금 이 취향도 바뀔 거라는 걸 알아요

by 박민우
20200718_063101.jpg 그런데 태국은 이리 오래 좋아하는 걸 보면 참


고수 냄새 때문에 홍콩에서 쓰러질 뻔했어요


이게 음식 냄새라고? 이 구역질 나는 걸 먹는다고? 홍콩은 고수 지옥이더군요. 어디서나 고수 냄새가 났어요. 여행 경험이 별로 없을 때여서 그 향이 그리 낯설었나 봐요. 국물이건, 딤섬이건, 볶음 요리건 안 들어가는 데가 없더군요. 야시장을 걷는데 그 향이 너무 괴로워서 무릎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쓰러질 뻔했다니까요. 지금요? 더 달라고 해서 먹어요. 들어가야 할 곳에 안 들어가면 음식 맛이 안 살더군요. 왜죠? 왜 저는 그렇게 역겹던 고수를 즐겨 먹는 사람이 됐을까요?


더러운 수염족이 나라니


런던에서 구레나룻 기른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찼죠. 더러워. 저게 멋있나? 네, 지금은 제가 거지꼴로 살아요. 일부러 기른다기보다는, 귀찮아서 안 깎는 거죠. 회사 생활하는 사람도 아닌데요, 뭐. 수염 멋있게 기른 사람들 보면 부럽더라고요.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처럼 기를 마음은 없지만, 구레나룻은 일부러 남겨요. 이발소 가서도 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요. 깜빡하고 깔끔하게 밀어 버리면 화가 나더라고요. 밀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 얼굴이 달걀귀신이 된 것처럼 허전해서 어찌나 속상하던지요. 깔끔은 무슨? 난 수염이 있어야 어울려. 남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제 맘이죠. 제 얼굴이니까요. 어라? 예전엔 그렇게 지저분해 보인다던 수염에 왜 이리 애착을 갖게 된 걸까요?


아직 스키니 바지까지 입지는 않지만요


눈에 익으면 장사 없어요. 예전에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고 버스에 탄 여고생(쯤)을 한참을 봤네요. 저 꼴로 어딜 기어 나와? 25년 전쯤에요. 아니나 다를까 혼잣말로 창밖에 대고 쌍욕을 하는 거예요. 미친 애인가? 옷이 딱 너다.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은 양아치. 그렇게 머릿속에 딱 박히더군요. 이효리가 애니콜 CF에서 아디다스 저지를 입고 춤을 추더군요. 등이 훤히 파진 트레이닝 재킷이었죠. 캬아. 효리빨이겠지만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더군요. 네, 저도 지마켓에서 짝퉁 하나 장만해서 한참 잘 입고 다녔네요. 그것도 외출복으로요. 쌍욕 혼잣말하던 고등학생이 문제였던 거죠.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은 아무 잘못 없어요. 스키니 바지도 저는 잠깐 유행하고 사그라들 줄 알았어요. 그게 스타킹이지 바지예요? 요즘엔 아무 반감 없더군요. 사 입고 싶지는 않아요. 안 어울릴 걸 아니까요.


심지어 문신도 예뻐 보일 줄이야


문신은 인생 포기 선언인 줄 알았어요. 몸에 평생 남는 그림을 왜 남기냐고요. 조폭인가요?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평생 지울 수도 없다면서요(그땐 그렇다고 믿었어요). 늙어서 주글주글 피부에 문신만 남으면 참 보기 좋겠습니다. 후회할 짓을 하는 멍청이들이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몸에 근육이 없어서 못 하네요. 근육만 울퉁불퉁하면 양쪽 알통에 문신 띠를 돌리고 싶어요. 한참 젊었을 때 몸 좀 만들어서 섹시 문신남으로 한 번 살아봤어야 하는데 말이죠. 데이비드 베컴이 큰 역할을 했죠. 그 잘생긴 축구 선수가 문신 중독이라고 하니까 문신이 달리 보이는 걸 어째요. 내가 한다고 베컴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저 멋진 남자가 문신을 좋아하니 문신은 죄가 없게 된 거죠.


왜 취향이 변하나 생각해 봤더니요


횟수의 문제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노출되는가에 따라 반감은 급격히 줄더군요. 최고로 못 생겼다는 개그맨들이 지금은 약간 못 생긴 사람 정도로 보여요. 재밌게 생겼다 정도? 처음엔 좀 충격적이기까지 했는데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제 취향이 조절돼요. 내 취향이 이상한가? 의심스러워지면서요. 남들이 좋다면 좋은 것 같고, 남들이 맛있다면 맛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취향 조절을 당하고(?) 나면, 원래의 제 취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군요. 줏대는 개나 줘버리게 된 거죠. 확신에 차서 뭔가를 싫어하지 않으려고요. 가사가 하나도 안 들리는 아이돌 음악도 좋아질 때가 오겠죠. 시간과 횟수의 힘 앞에서 무력해지는 취향을 꼿꼿이 주장해 봤자 저만 우스워지더라고요. 취향은 사실 움직이는 거였어요. 그걸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요즘엔 분홍색이 그리 좋더군요. 이 취향은 끝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꽃분홍과 꽃무늬를 사랑하는 중년 아재이옵니다. 껄껄껄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돼요. 글을 쓸 수 있어서, 읽힐 수 있어서, 나눌 수 있어서요. 우리 조금씩만 행복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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