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유튜버 반성문

생각이 많고, 의욕이 넘치고, 주제 파악을 하지 못했사옵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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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욕은 정말 과할수록 나쁜 거였습니다


저 드론까지 산 사람입니다. 코카서스 3국(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갈 때요. 항공 촬영까지 해야 진정한 여행 유튜버 아닌가요? 요즘 유튜버들은 날로 먹더군요. 구독자수 빠방하다고, 부끄러움을 몰라요. 그렇게 게을러서 얼마나 가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여행 먹방은요. 길거리에서 꼬치를 하나 먹잖아요? 카메라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서 제 정수리, 꼬치집, 마을, 마을을 낀 강을 줌아웃으로 보여주는 거죠. 네, 테마 기행 찍어 줘야죠. 드론 카메라로 촬영 잘했냐고요? 조지아 친구한테 줘버렸어요. 단 한 번도 찍지 않고요. 아니, 조립도 한 번 안 하고요. 이동하고, 숙소 잡고, 밥 먹고 사이사이 드론을 날려요? 엄두가 안 나더군요. 지금은 세상 모든 유투버님들을 존경합니다. 꾸준히 올리시는 모든 분들은 절 받으세요. 절 받으셔야죠. 어쩜 그리 성실하세요? 어쩜 그리 현란하세요? 시청자로 있을 땐 내셔널 지오그래픽 수준으로 찍을 수 있는 줄 알았죠. 제 절 받으시고, 마음 푸세요. 조회수 올리는 비법 좀 던져 주시고요. 굽실굽실.


2. 개나 소나 쓰는 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 나는 개만도 소만도 못해서 키네 마스터


제가 조지아에서 동영상을 찍고 편집을 더듬더듬하다가 X발이라고 욕을 해버렸어요. 혼잣말이기는 하지만요. 어도비 프리미어가 손쉬운 편집 프로그램이라고요? 와, 세상 사람들이 그리 독한 줄 몰랐습니다. 편집 프로그램만 따로 팔면 더 비싸고, 한 달만 쓰면 더 비싸고, 묶음으로 쓰지도 않는 다른 프로그램을 강매하면 그나마 싸지고. 처음부터 사람 기분 확 상하게 하더군요. 스마트폰 용으로 무지무지 쉬운 프리미어 러시가 출시됐다고 해서 옳다구나 써봐요. 또 X발 욕이 나오더라고요. 뭐든 손에 익으면 쉽겠죠. 저처럼 늙은 기계치들이나 쩔쩔매는 거겠죠. 그리고 국산 키네마스터로 갈아탑니다. 와, 신세계더군요. 자막 하나를 다는 것도 이리 상큼, 쉬워질 줄이야. 처음부터 키네마스터로 편집했다면 저는 좀 더 성실히, 꾸준히 동영상을 올릴 수 있었을 거예요. 설마 어도비가 미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건 아니겠죠? 프리미어 편집 프로그램을 보면 예전 일본이 떠올라요. 복잡하고, 무거운 가전제품으로 첨단 기술을 자랑하다가 삼섬과 LG에게 잡아 먹혔던 그 일본이요. 무슨 소리냐고요? 전문가들은 다 프리미어 쓴다고요? 지금도 한국 방송국들은 소니 카메라 써요. 일부에게만 경쟁력 있는 제품이 되는 거죠. 저처럼 기계치를 홀릴 수 있어야 미래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키네마스터가 미래입니다(아, 뭐 더 좋은 편집 어플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3. 그깟 악플이 뭐라고. 악플은 성공의 현관문


구독자 삼백 명을 갓 넘었으니 변변한 악플도 없어요.


-못생긴 중국인처럼 생겨서 싫어요 누르고 갑니다.


요거 하나? 사람인데 주눅들죠. 목소리로만 승부를 볼까? 탈을 쓸까? 아니면 가면? 나보다 못생긴 유투버도 잘만 나가던데? 그 한 댓글로 별 생각을 다해요. 우연히 성공한 유튜버 영상을 봐요. 악플이 달리기 시작하면 성공한 유튜버래요. 그만큼 관심받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무슨 선지자 같더군요. 이렇게 짧은 식견으로 무슨 유튜버를 한다고 달려든 걸까요? 잘 나가는 유투버들은 처절한 인신공격을 사뿐히 삭제하며 꿋꿋이 버틴 거였어요. 온실 속 화초들은 유튜버 꿈도 꾸지 마시길. 네, 알겠습니다. 욕도 각오하겠습니다. 욕도 관심이랍니다. 가슴까지 와 닿지는 않지만, 외우겠습니다.


4. 왜 이리 가입자가 늘지 않는 걸까요? - 꼴랑 열 편 올리고?


총 열 편 남짓 올렸을까요? 하나 올릴 때마다 백 명씩은 늘어나는 줄 알았어요. 일주일에 한두 편씩은 꾸준히 올려야 한대요. 썸네일도 자극적이면 좋고요. 이런저런 비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널렸더군요. 서부 개척 시대의 금광이 지금은 유튜브죠. 기회의 땅이죠. 먹고살기 힘든 시대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죠. 밥줄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초조해지나 봐요. 이걸 어떻게든 살려서 내 노후를 대비하겠다. 그런 욕심이 있거든요. 날로 먹으려는 초보 유투버는 열 편 올려놓고 초조하기만 합니다.


5. 일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재미가 먼저인데요


연예인도 아닌데, 제 몰골이 어찌 나오나. 이게 먼저더라고요.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는 않아야지. 그러다 보니 영상 찍고, 자막 넣고, 음악 깔고, 더빙하고. 꼭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해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작하려고 하면 한숨부터 나오더라고요. 이걸 언제 끝내나 싶은 거죠. 성공한 유튜버들은 재미로 시작했더군요. 재미가 있으니 자발적으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죠. 저는 일로 뛰어드니까 부담만 생겨요. 재미가 느껴질 리 있겠어요? 이렇게 하면 진짜 웃기겠다. 조금은 천진해질 필요가 있겠어요. 엉뚱하고, 불완전한 모습도 사실 유튜버의 매력이죠. 꼴에 우습게 보이기 싫은가 봐요. 지금이라도 좀 덜 완벽하고, 더 엉뚱한 영상도 올려볼까 봐요. 악플이요? 악플 없는 성공 없다잖아요. 왕관의 무게를 못 견디면 내려와야죠. 초보 유튜버 반성하고 좀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아, 아닙니다.


PS 지금 저는 방콕에 머물면서, 방콕 카페, 식당 콘텐츠를 올리고 있어요. 방문해 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꾸벅


https://www.youtube.com/channel/UCiEOnEhWqN_pTnH2C-jUWGQ?view_as=subscriber

PS 매일 글을 씁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행복이 글에 묻어나게요. 여러분이 찍어 바를 수 있는 넉넉한 행복을 담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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