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우연은 없다 - 나는 왜 글쟁이가 됐을까?

중학교 때까지 꿈은 과학자였습니다만

by 박민우
마추픽추2.JPG 뭔가 합성 같네유. 마추픽추야 내가 왔다

그러게요. 중학교 때까지 꿈은 과학자였어요. 남자들 절반은 꿈이 과학자일 때였어요. 그게 불만이었죠. 그래서 구체적으로 '유전공학자'가 되기로 해요. 고려대학교 유전공학과를 가겠다. 날아다니는 돼지, 추운 지방에서도 열리는 바나나를 내 손으로 창조(?)할 셈이었죠. 과학 고등학교를 지원했다니까요. 네, 떨어졌어요.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푸냐고요. 고등학교 때는 저와 비슷한 놈이랑 놀이터에서 세상 걱정만 했어요. 이놈의 독재 정권, 최루탄, 불쌍한 우리 대학생 형, 누나들. 세상이 어찌 되려나 고민을 하는데 한가하게 공부라니요? 사실은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구국을 핑계 삼았죠. 고등학교 수학은 뭔 그리 말이 많아요? 그깟 집합 문제 하나도 주저리주저리. 정석 수학 첫 페이지 펼치고 게보린을 먹었다니까요.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할 필요조차 없던 과목이 수학이었 거든요. 수학이, 물리가, 화학이 이렇게 어려운데 이과는 무슨. 그래서 결국 대학은 국문과로 진학했어요. 국문과에 갔으면 글 쓰기에 관심 좀 있었겠네. 아뇨. 오히려 절대로 글 쓰는 삶은 살지 않겠다. 다짐을 할 정도였죠. 국문과니까 글에 미친놈들이 좀 많겠어요? 희귀해지고 싶죠. 그래서 영화 동아리, 학교 방송국을 전전했죠.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요.


-민우야, 너 아르바이트 좀 해라


과 선배 누나가 웅진 출판사 '월드 트래블' 기자였죠. 저보고 자료 조사 아르바이트 좀 하라는 거예요. 열심히 했죠. 폼 나잖아요. 잡지사 수습, 그것도 여행 잡지. 그게 인연이 돼서 수습 주제에 원고까지 써요. 편집장님의 사랑 듬뿍 받으면서요. 잡자사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라고요. 분당에서 발행된 지역 잡지, 여고생의 다정한 친구(혹은 미용실의 상비 잡지) 유행통신에서 기자 생활을 하죠.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붙었다면 감사히 다녔겠죠. 유행통신은 성에 안 차더라고요. 저는 시건방진 놈이었거든요. 동기, 후배들은 방송국, 신문사에 잘도 붙더라고요. 자격지심이 대단했죠. 학교 다닐 때는 핵인싸였는데 졸업하고선 학교 모임이 꺼려지더군요. 나 자신이 초라해서요.


유행통신 꼴랑 1년 다니고 사직서를 냈어요. 그리고 남미로 떠나죠. 그때도 책을 낸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기자일 하면서 1년 내내 글만 썼어요. 무슨 글을 또 써요? 그만큼 글을 쓰는 직업에 반감이 있었어요. 세상 돌아가는 걸 외면한 채 책상에서 소진하는 삶이 이미 지겨웠죠. 그냥 도피 여행이었어요. 원형 탈모로 손바닥 크기 땜빵이 생겼으니 저는 해독을 해야 했어요. 몸 해독 말고, 이 이상 징후의 해독이요. 일단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니까요. 한국을 떠나라는 계시 아니겠어요? 한국에 계속 있으면 더는 버티지 못할 거야. 암에 걸리거나 자살을 하겠지. 극단적인 두려움이 있었어요. 공포의 끝엔 용기만 남아요. 남미로 가면 총 맞고 뒈질 거라는 협박인지 걱정인지 모르는 말들까지 들어가면서 짐을 쌌죠. 총은 아니지만 칼 든 무장 강도도 만나고, 축구장에서 가방을 통째로 뺏기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 먼 곳까지 와서 무슨 수모를 당하고 있는 건가. 후회하고 절망했죠.


네, 지금은 글을 써요. 매일매일 써요. 제 이름으로 나온 책도 열 권이네요. 왜죠? 저는 분명히 글쟁이 안 하겠다 했는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남미 여행을 끝내고 한동안 얼이 빠져서 살았죠. 다시 짐을 싸야 해. 여행에 눈뜬 이상 일상으로는 못 돌아가. 낯선 곳의 아침 공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달려드는 현지인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던 안데스의 산들, 빙하들, 사막과 마추픽추가 계속 아른거려서요. 이 감정은 나눠야겠다. 나누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나눔의 방법은 글이었어요. 제가 스무 살 젊었다면 유튜브였겠죠. 돌아보니 대학 선배가 지금 삶에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그때 잡지사 알바가 지금 삶의 시발점이었죠. 우연이요? 우연 아니에요. 저는 잡지사 일을 안 할 수도 있었죠. 잠깐만 하고 그만둘 수도 있었죠. 여행 끝나고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골방에 갇혀 글을 썼죠. 다 제가 택했어요. 우연 같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었죠. 환희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글을 택했어요. 뭐가 되겠다 말고, 어떤 감정을 누리고 싶은가? 그걸 알아야,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무슨 직업을 갖든 어려움과 실망은 뒤따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위기를 제압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해요. 제 글이 읽히고 공감받는 게 재밌어요. 그래서 글을 써요. 여전히 저는 글쟁이가 꿈이 아니에요. 즐거움을 나누는 거면 돼요. 글이어도 되고, 영상이어도 돼요. 글을 쓰는 삶을 예측하지 못했듯, 십 년 후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제 모습을 기대해요. 예를 들면 뮤지컬 배우라든지, 발레리노라든지. 아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예를 든 거예요. 예도 못 드나요? 쳇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가 사는 시공간에 작은 의문을 던질 때가 많아요. 나는 왜 존재하지? 지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실체인가? 아닌가? 네, 뜬금없는 공상에 파묻혀 살아요. 또 아나요? 문득 뭐라도 건질지. 공중부양이 소원입니다만.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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