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이상한 놈들

가끔씩 떠올라요. 떠오를 때마다 신기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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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울에도 에어컨을 켜고 자는 사람


이 친구는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였어요. 몸이 너무 뜨거워서 겨울에도 에어컨을 켜야 했어요. 더 신기한 건 이불로 온몸을 감싸고 코끝으로만 냉기를 즐긴데요. 그럴 거면 그냥 에어컨을 켜지 않고, 이불을 안 덮으면 되지 않니? 모르는 소리 말래요. 코 끝을 스치는 그 알싸한 냉기가 꼭 필요하다는 거예요. 난방은 난방대로 켜고, 에어컨도 켜야 한대요. 이 무슨 돈지랄, 에너지 지랄인가요? 저는 몸이 찬 편이라 더욱 기괴하게 들리더군요.


2. 하바드 생인 게 부끄러운 가짜 하바드 졸업생


이 친구 역시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였어요. 멕시코계였나?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하바드 졸업생으로만 본대요. 이만저만 억울한 게 아니래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 달라더군요. 그 친구가 빨래를 너는데 전부 하바드 후드티인 거예요. 하바드 후드티를 사랑하고, 매일매일 하바드 후드티만 입지만, 남들이 하바드 생으로만 보는 건 싫은 친구였던 거죠. 충격적 반전은 이 친구가 하바드를 졸업한 게 아니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사회 교육원 같은 곳을 수료했던 거죠. 그 가짜 학위로 한국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어요. 부잣집 아이들 과외로 돈을 쓸어 담았죠. 미국 친구 답지 않게 더치 페이도 잘 안 했던 친구였네요.


3. 똥 마려우니까 그냥 여기서 쌀게 - 멕시코에서 만난 대담한 일본인


멕시코 시티에서 일본인들과 어울렸어요. 클럽 가는 길이었어요. 갑자기 한 친구가 똥이 마렵다는 거예요. 어쩌지? 화장실이 근처에 있으려나? 이 친구가 갑자기 화단으로 들어가더니 쪼그려 앉는 거예요. 찻길에 작게 꾸며 놓은 화단이었어요. 그리로 쑥 들어가더니 바지를 내리고 볼 일을 보는 거예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요. 다른 일본 친구들도 전혀 동요를 하지 않더군요. 상황 다시 정리합니다. 나 똥 마려. 화단이 보이네. 바지 내릴게. 쭈그려 앉을게. 뿌지직. 나머지 일행은 그래? 너는 싸렴, 우리는 걸을게. 뿌지직 친구 삼십 초만에 재합류. 이렇게 깔끔하게 똥 한 판이 처리됐어요. 제가 너무 당황해서 찬찬히 보지는 못 했는데요. 휴지로 닦는 장면이 기억에 없네요. 차분한 일본 친구들이 더 놀랍더군요. 일본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무엇을 보건, 무엇을 하건 무조건 차분하기. 어메이징, 어메이징 일본.


4. 때리는 여자, 맞는 남자 - 중국은 이게 기본


중국 청두였어요. 여자가 길에서 남자 뺨을 힘차게 갈기더군요. 남자가 뺨을 맞고서는 고개를 푹 숙여요. 얼굴에 빨갛게 손자국 그대로 부풀어 오르더군요. 남자가 뭔가 큰 잘못을 했겠죠? 여기서도 놀라운 건 사람들이에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들 갈길 가더군요. 구경하는 사람조차 없어요. 중국에서 여자가 뺨 때리는 거 처음 봐? 그런 느낌? 저만 촌스럽게 곁눈질로 계속 봤네요. 중국에선 여자가 하늘, 남자가 땅인 경우를 흔히 봤어요. 대신 공사 현장에 여자도 많더군요. 흙이나 돌 같은 걸 등짐에 가득 채워서는 공사장 계단을 오르더군요.


5. 분명히 죽었는데 - 맨해튼에서 쓰러진 노숙자


두 명의 노숙자가 시비가 붙었어요. 몸싸움을 하다가 한 남자가 넘어져요. 뒤로 넘어지면서 그만 차에 목이 꺾여 버려요. 눈을 뜬 채로 입을 벌린 채로요. 아무도 그 사람 가까이 가지 않더군요. 살았나 죽었나라도 살펴야 하잖아요. 호텔 경비원까지 나 몰라라 하더군요.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인데도요. 미국이 소송의 나라라더니, 귀찮게 소송에 휘말리느니 모른 척 하자. 그게 상식인가 보더군요. 남자는 종이 인형처럼 구겨저서는 그 상태로 계속 있어요. 저도 비겁하게 발만 동동 굴렀죠. 한참 후에 구급차가 오더군요. 오면 뭐 해요. 이미 늦었는데요. 그런데 그 남자가 절뚝절뚝 일어나서 구급차에 타는 거예요. 응? 살았어요. 말이 되나요? 목이 꺾여서 눈동자까지 고정된 채로 꼼짝도 안 했다고요. 연기였을까요? 연기였다면 배우를 해야죠. 살기 위해서 죽은 척을 했던 건가요? 더 맞으면 죽는다. 위기감이 미친 연기력으로 이어진 걸까요? 뉴욕 맨해튼에 입성한 첫날 그런 풍경을 봐버렸어요. 그래서 미국은 제게 무서운 나라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아무리 작은 하루도 위대한 기억으로 저장됨을 믿어요. 그래서 기억 속 위대한 하루를 천천히 써 내려갑니다. 제 글이 발자국이 됐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는 길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지도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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