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하늘이 도왔죠.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에 부모님과 치앙마이 여행을 끝냈으니까요. 참 무모했죠. 일흔이 넘은 부모님만 치앙마이로 오시는 거였어요. 저는 태국에서 머물고 있었니까요. 영어 까막눈인 두 분이 어떻게 입국 신고서를 쓰고, 복잡한 공항 수속을 마칠 수 있었을까요? 어디서나 당당한 어머니의 생활력과, 그래도 일파벳을 읽으실 수 있는 아버지의 영어 실력을 믿어보기로 했죠. 입국 신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유튜브로 동영상도 찾아서 보내 드렸어요. 민폐 안 끼치고 자력으로 오시면, 다음에도 또 오실 수 있으니까요. 결국 옆자리 한국 아가씨에게 부탁했대요. 그렇게라도 무사히 치앙마이에 오신 게 놀랍기만 했죠. 치앙마이 공항에서 거의 이산가족 상봉이었죠. 반신반의했으니까요. 과연 무사히 오실 수가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했어요. 반가움과 안도감뿐이었으니까요.
각오 단단히 했지만, 부모님과의 여행은 쉽지 않았어요. 새삼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존경합니다. 천 번은 외치고 싶더군요. 5천만 한 성질 한국 사람을 어찌 감당하시는 걸까요? 아니 딱 두 사람일 뿐인데도, 게다가 가족인데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들이 끊이질 않더군요. 한두 가지여야죠. 첫날부터 제 복장에 대한 지적이 이어집니다. 슬리퍼를 왜 신고 다니느냐. 나시 티가 웬 말이냐. 그래요. 마음에 안 드실 수 있죠. 너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 있냐? 창피하다. 그런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다니네요. 네가 서양 사람이냐? 너는 한국 사람이다. 부모님께는 저만 흉물로 보이는 거죠. 식당에서 물값을 왜 받느냐? 왜 한국 식당인데 한국말을 이해 못 하느냐(태국인이 서빙을 받는데도요)? 너는 내 돈 주고 부리는 가이드였으면 소송감이다(아, 이 말씀은 진심 충격이었네요).
아버지가 방이 마음에 안 드셨어요. 낮잠을 주무시다가 모기에 한 방 물리셨거든요. 긁다가 분을 못 참고, 제게 쏘아붙이신 거죠.
-이따위 방을 방이라고 잡았어? 내 돈 주고 여행 왔으면, 이건 소송감이야. 환불감이야.
저 그날 집 나갔잖아요. 아니구나, 방을 나간 거죠. 2019년 12월 31일이 밤이 지긋지긋 생생하네요.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남은 날짜를 어찌 다 채우나. 그 막막한 밤에 여기저기서 폭죽은 터지지. 남들 다 화기애애한 밤에, 끊었던 담배가 간절하더군요.
-그때 찍었던 사진 카톡으로 다 보내 봐라
여행이 끝나고 아버지가 메시지를 다 보내시더군요. 치앙마이를 왜 온 거냐? 우리나라보다 더럽고, 후지다. 음식은 못 먹겠다. 매일 불평뿐이던 아버지가 사진을 다 보내시라네요.
-요즘 안 아프고 잘 지내지?
안부를 묻는 아버지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왜 한 달 씩이나 있었냐고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치매를 예방하는데 여행이 최고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낯선 환경이 뇌에 주는 충격파가 크지 않을까요? 24시간 부모님 병간호를 안 하려면, 치매부터 막아야죠. 그래서 약간은 무모한 여행 계획을 세웠던 거죠. 매일 후회였어요. 괜히 왔다. 괜히 모시고 왔다. 나도 힘들고, 부모님도 힘들고. 여행이 끝나고 나니까요. 소기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아요. 어머니, 아버지는 여행 프로그램을 더 열광적으로 시청하신대요. 나도 저기를 가볼 수 있겠지? 구체적인 상상으로 이어지는 거죠. 두 분이서 치앙마이 여행을 곧잘 화제로 삼으시나 봐요. 코로나가 창궐하니까, 그때 갔다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가슴을 쓸어내리시나 봐요. 뿌듯하기까지 하신가 봐요. 짜증나고 힘들 때 험한 말을 했을지언정, 다녀온 후에는 좋기만 하신 거죠. 코로나가 끝나면 또 여행할 거냐고요? 부모님 모시고요? 해야죠. 매일 후회를 해도 가야죠. 보약이라고 생각하려고요. 매일 부딪히고, 얼굴 붉혀도 그게 다 보약이니까요.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과 향, 사람에 휩싸여서는 쩔쩔매는 게 다 각성이니까요. 뇌가 젊어지는 과정이니까요.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일단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가 진정되는 그때가 오면 우리 가족은 또 어딘가에서 한 달을 머물 거예요. 저는 안 피던 담배를 피울지도 몰라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언젠가 저를 우연히 만나면 아는 척해주세요. 제 글을 읽는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보다 저를 더 잘 알고 계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