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할까?

역마살이 이렇게도 강한 민족이었나요?

by 박민우

2019년 마스터 카드가 세계 주요 도시 200개의 카드 실적을 조사했어요.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카드를 많이 썼을까? 1등은 어느 나라일까요? 중국요? 아직까지는 미국이더라고요. 다음은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요. 그다음이 한국이죠. 6위도 대단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6위 이상의 의미가 있죠. 유럽은 중국과 면적이 비슷해요. 게다가 국가 간의 이동이 자유롭죠. 국내 여행이나 마찬가지죠. 언제든지 국경을 넘을 수 있으니까요. 영국이 최근에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옆 나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 미국도 캐나다나 멕시코 국경선을 넘어 마트를 가거나, 병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죠. 우리나라는 육로로 갈 수 있는 나라는 없어요. 순수 여행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음을 의미하죠.


타이베이의 명동 시먼딩 역에서 깜짝 놀랐네요. 1일 투어를 인터넷으로 예약했거든요. 45인승 버스가 네 대였나? 다섯 대였나? 한국 사람들이 삼삼 오오 모이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당연히 그 버스 중 한 대가 한국 버스인 줄 알았어요. 모두 한국인용 관광버스더군요. 가이드도 한국 사람이고요. 여기가 지금 가을 단풍 보러 온 내장산인가요? 남의 나라 번화가인가요? 여행사를 통해서 온 단체여행객들까지 합쳐 봐요. 그냥 한국 사람 천지예요. 어디를 가도 한국말을 들을 수 있어요.


방콕에서도 소문난 맛집 가면 한국인 뿐이에요. 중국인들도 절대 숫자야 엄청나지만, 우리보다 자유 여행은 상대적으로 적죠. 개개인의 정보력에서도 한국인을 어떻게 쫓아가겠어요? 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핫한 맛집에 한국인들만 우글우글해요. 사촌 형이 방콕 예습을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제가 가이드할 필요가 없겠더군요. 그냥 형이 가자고 하는 곳 졸졸졸 쫓아다녔어요.


한국 사람은 왜 이리 여행을 좋아할까요? 먹고살만해져서요? 여러분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역마살 이유는요.


자본주의 1등의 부작용, 번아웃 - 할 만큼 했다


경제 성장만 보면 이런 기적은 전 세계에 독일 정도나 있을까요? 게다가 우린 침략의 역사가 없어요. 오히려 무수한 침략의 피해자였죠. 잿더미에서 시작했어요. 바닥에서 시작했어요. 우리가 남보다 낫지. 우월감을 느낄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죠. 도시락 싸갈 돈이 없어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터진 무릎과 팔꿈치를 헝겊으로 기워 입으면서 굶어나 죽지 말자. 굶주림의 공포를 불쏘시개로 앞만 보며 달렸죠. 그리고 이뤘어요. 우울증, 공황장애는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 됐죠. 먹고살려고 애를 썼더니 아파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파요.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한강 다리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자신의 몸을 던질까요? 나는 살고 싶다. 그 몸부림이 여행 욕구로 폭발한 게 아닐까 싶어요. 열심히 살았더니 몸도 마음도 건강하더라. 그런 사람들만 있었다면, 열심히 일만 했겠죠. 돈 벌 생각만 했겠죠.


낯선 경험의 호불호? 호가 압도적으로 높다


낯선 곳이 주는 불쾌감이 있죠. 납치되는 건가? 길바닥에서 자는 건가?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다. 아프거나 사고라도 나면 끝장이다. 그런 공포감이 기저에 깔린 사람들은 여행 내내 곤두서요. 자기 돈 주고 굳이 그런 스트레스를 왜 받을까? 이해가 안 되죠. 실제로 한국 여행자들은 투덜이 스머프죠. 방콕 공항에서 정시에 발권을 하는데, 정시보다 더 일찍 발권을 안 해준다고 불평하더군요. 네, 제 뒤의 한국인이요. 식당에 가면 짜다, 싱겁다, 조미료 맛이다, 더럽다, 못 먹겠다. 별별 소리가 필터링 없이 나오죠. 그런 사람들은 과연 여행을 접을까? 아닐 거예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봐도 여행 이젠 여행 못 하겠다. 그 말씀은 절대 안 하시더군요. 불평도 좀 할 수 있지. 잠깐의 화풀이였던 거죠. 낯선 곳에 갔더니 해코지하는 사람보다는 친절한 사람이 더 많죠. 갑자기 날씨가 바뀌고, 색감이 바뀌고, 소음이 바뀌죠.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서, 바뀐 세상에 잡아 먹히죠. 누군가에게는 새로 태어난 느낌까지도 주죠. 한 번뿐인 삶,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낯선 세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 거죠. 나는 그런 낯섦이 지긋지긋해. 그런 사람은 20% 정도 봅니다.


가성비, 여행이 은근히 남는 장사더라


나는 행복해지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돈을 쓰죠. 어디에다 써야 할까요? 누군가는 쇼핑을 하고, 누군가는 맛집을 가고, 누군가는 뮤지컬을 봐요. 형편이 되는 사람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즐기기도 하고요. 여행은 상대적으로 비싼 유흥입니다. 시간의 가치까지 더하면 최고로 비싼 유흥일 걸요? 다른 유흥보다 가성비가 떨어지면 다시는 안 가야죠. 가는 사람들이 또 가요. 더 가요. 여행이란 쾌락은 자랑할 수 있는 쾌락이죠. 인생 사진으로 으스댈 수도 있어요. 가족끼리 십 년 후에 사진만 들춰봐도 남다른 기분이 돼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쾌락, 이게 상당한 가치 아닐까요? 한국 물가가 좀 비싸나요? 국내 여행할 돈이면 이제 동남아시아는 왕처럼 누리다 올 수 있어요. 화려한 호텔에서 마사지까지 받으면서요. 이 돈으로 한국에서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순간순간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누구보다 영리한 한국인에게 여행은 가성비 월등한 놀이인 거죠.


바깥세상이 궁금해 미쳐 버리겠네 - 호기심 강국


미국이나 중국, 브라질 사람들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적더군요. 자기 나라도 못 가본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다른 지방만 가도, 다른 나라 이상의 새로움이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부산을 이제 두 시간 반이면 가요. 강원도는 강원도대로, 부산은 부산대로 휙휙 달라지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확인할 수 있는 '다름'이죠.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다른데,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다를까? 확인하려면 비행기를 탈 수밖에요. 우리나라가 유럽 한가운데 있었다면, 외국인들과 늘 공존했다면 호기심이 덜하지 않았을까요? 일본은 섬나라지만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땅덩어리가 커서인지 해외에 대한 호기심이 시들하더군요. 하긴 한때 일본인들이 세계 엄청 열심히 다녔죠. 요즘엔 씨가 말랐어요. 경제가 정점을 찍고 하강 곡선을 그으면, 우리도 일본처럼 여행 수요가 줄어들까요?


일시적인 유행일 뿐, 여행도 언젠가는 사그라들겠지


말이 나온 김에, 일본 이야기를 계속해보자면요.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는 해외여행을 기피하는 추세라고 해요. 경제적으로 일단 부담스럽고,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우선한다네요. 가까운 친구들이랑 맥주 마시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면 충분하다는 거죠. 우리도 일본을 그대로 따라갈까요? 여행 강연을 가면 요즘 아이들이 게임에만 미쳐서 여행지에서도 방에만 있으려고 한대요. 그 아이들이 크면,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확률도 높죠. 지금 아이들에게는 그깟 비행기, 그깟 호텔이거든요. 뇌를 자극하는 쾌락은 게임이 훨씬 위거든요.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여행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래서 지금의 여행 열풍은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미래의 인류는 키가 2미터에 가까워진대요. 왕성한 혼혈의 결과로요. 아마도 여행은 세상이 섞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일종의 진화적 과정일 수도 있겠네요. 우리야 거대한 흐름을 파악할 만큼 영리하지 못해서, 눈앞의 즐거움만 찾고 있을 뿐이지만요. 역마살의 한국 사람은 지금의 코로나가 누구보다 힘들어요. 하지만 모든 시간엔 분명한 이유와 의미가 있어요. 이 순간을 견디면서 새롭게 진화하는 인류가 되어야죠. 담금질이라고 믿으려고요. 강해지려면 불구덩이에도 들어가 봐야 하니까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여행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다른 여행이 새롭게 시작됨을 믿으려고요. 다르게, 새롭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들이 분명 등장할 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가끔은 쓰기 싫죠. 그런 감정은 진짜일까? 즉흥적인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들여다보는 훈련이 저는 글쓰기예요. 감정에 번번이 지지 않으려고요. 놀아나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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