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중에 동생으로 태어나 봤더니

손해 보는 건 있어도 땡잡은 건 아무래도 동생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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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외동이 많죠. 우리 때는 둘이 제일 많았어요.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셋을 낳고 싶어도 둘에서 아쉽게 참는 가정이 많았죠. 어릴 때는 불만도 많았죠. 형한테 맞지, 어머니는 형만 예뻐하지(예뻐하는 것 같지), 옷이란 옷은 죄다 물려받지(심지어 중간엔 제가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장남이 불쌍하다고 느낀 건 어머니에게 맞아가며 한글을 배울 때요.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읽어야 한다며 그렇게 때리시더군요. 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나다라마바사를 쓰는 거죠. 아 두 살만 더 먹으면 나도 저 꼴 나겠구나. 아니던데요? 형에게 기가 다 빨리신 어머니는 저는 방치하시더군요. 국민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깨쳐요. 헬렌 켈러가 물이 워터임을 알았을 때 전율까지는 아니어도, 각각의 사물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이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재미나던지요.


형이 성적표를 받아오면 어머니는 여지없이 몽둥이를 드셨어요. 교육열만 있지, 방법을 모르는 어머니는 잡으면 해결된다 믿으신 거죠. 역사가 좀 된 교육법이에요. 남동생을 그러니까 외삼촌들을 그렇게 때리면서 공부를 시키셨대요. 동생들도 그렇게 잡으셨는데, 형은 한 줌 토끼죠. 어린아이가 스스로 동기 부여될 밥법을 먼저 찾아줬어야죠. 맨날 맞기만 하는데 경기만 들뿐이죠. 공부에 취미를 붙일 수가 있었겠어요? 방어기제인지 몰라도, 저는 알아서 욕심쟁이가 됐어요. 어머니가 때리기 전에 제가 먼저 울었어요. 성적이 안 나오면 쉬는 시간에 집에 와서 울고 교실로 돌아갈 정도였죠. 방치된 아이는 자발적으로 욕심이 생성될 여지가 있었던 거죠.


형은 자유를 택했고, 저는 그래도 학교는 꾸준히 나가는 아이였죠. 자유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교실 맨 뒤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아이들 있잖아요. 영훈고등학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주먹으로 성장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키도 그리 큰 편이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대나무처럼 자라더군요. 덩치가 사람 성격까지 바꾸어 놓더군요. 우리 집안에서 저런 싸움꾼이 나오다니. 말은 안 했지만, 저는 사실 좀 자랑스러웠어요. 새로 이사를 간 연립 주택엔 방이 세 개였어요. 방 하나가 드르륵 미닫이였어요. 형도 저도 미닫이는 죽어도 싫다. 어머니가 미닫이 문이 형 방이라고 못을 박으시더군요. 이런 날도 오는군요. 공부에 담쌓은 형보다 그나마 성적이 나오는 저를 택하신 거죠. 형은 집을 나가서 다음날 들어오더군요. 빼앗긴 사람의 상실감이 더 큰 법이죠. 저도 마음이 안 좋더군요. 아, 그래도 미닫이 문은 안돼요. 꽉 막힌 공간이 아니면 방이 아니죠. 그때 저도 양보 운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네요.


제가 서른 즈음에 형이랑 의기투합 분당에서 피자, 스파게티 집을 열어요. 특이하게 배달 전문 스파게티집이었어요. 대박 났죠. 전화기를 놓을 새가 없었으니까요. 지금도 그런 식당은 없을 거예요. 전화기를 아예 내려놨다니까요. 주문이 무서워서. 세 시간 후에 배달 간다고 해도 먹겠대요. 아오, 스파게티에 미친 수내동 분당 사람들. 이 사업은 된다. 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토바이를 늘리고, 규모를 키웠겠죠. 우린 아무것도 몰랐죠. 차근차근 늘려가자. 그 차근차근이 언제냐고요? 주문해도 기본 두 시간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금씩 매출이 기울더군요. 제가 가게에서 나와 다른 일을 찾아보마. 형이 가게를 책임져라. 그렇게 빠져나와요. 매달 버는 돈을 가게에 보태긴 했죠. 형은 남아서 쌀로 만든 피자를 개발해요. 쌀피자는 우리가 제일 처음이었죠. 그러면 뭐하나요? 특허를 내기를 했나요? 그냥 우리만의 자랑일 뿐이죠. 일들이 잘 풀렸다면 형이 아르헨티나에서 살지 않았겠죠. 결국엔 다 접었죠.


장남이라서 끝까지 남았죠. 저는 장남이 아니라서, 중간에 도망친 거죠. 장남이라서 부모님 바람대로 가정을 이루고, 장남이라서 하고 싶은 것들도 많이 포기했죠. 형이 진짜 역마살 대장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텐트 들고 바닷가에서 잤으니까요. 발랑 까진 거죠. 제가 이렇게 여행하고, 결혼을 안 해도 덜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둘째여서죠. 제가 장남이었다면, 달랐을 거예요. 과감해지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새 옷 조금 더 입고, 관심과 사랑 좀 더 받는 게 뭐가 대단하다고요? 묵직한 책임감까지 생각하면 무조건 반납해야죠. 둘째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첫째로 태어났다면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았겠지만요. 세상의 장남, 장녀님들 존경합니다. 사람들이 안 알아줘도, 알아서 느끼는 책임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조금은 덜 완벽해지셔도 돼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는데, 완벽한 장남, 장녀는 또 어디 있겠어요? 이제라도 조금 내려놓으세요. 양보도 적당히만 하고 사시라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요즘 손가락과 팔목에 동전 파스를 붙여요. 저, 이런 사람입니다. 자랑입니다.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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