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삶을 꿈꾸지 않았다 - 나의 꿈이 변하는 과정

우리를 이끄는 결정적 에너지는 아픔이라든지 병이라든지

by 박민우

중학교 때 꿈은 과학자였고, 대학교 때 꿈은 방송국 PD였어요. 지금 저는 방콕에 11년째 머물면서 글을 써요. 상상조차 못 했어요. 왜 저는 이 먼 땅에 있을까요? 왜 저는 글을 쓸까요?


어릴 때의 꿈,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과학자나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누구라도 알아주기 때문이었죠. 되기 어려우니까 노력을 해야 할 테고, 이룬다는 건 노력의 증거이기도 하고요. 과학자가 꿈일 때는 딱히 취향까지 연결시키지 않았지만 방송국 PD는 취향에도 꼭 들어맞았어요. TV를 종일 끼고 사는데, 이보다 확실한 취향 증거가 있을까요? 방송국 시험도 고시라고 했죠. 언론고시. 그만큼 들어가기 힘들었으니까요. 저도 스터디를 하고, 나름 준비라는 것도 했지만 악착 같이 매달리지는 못했어요. 중간에 아프기까지 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죠.


방송국 PD는 나랑은 안 맞겠군


방송국 PD 중에서 콕 집어서 드라마 PD가 되고 싶었어요. 콕 집어서 MBC PD가 되고 싶었죠. 지금 사람들은 전혀 믿지 못할 걸요? MBC가 드라마 왕국이었다는 걸요. 왕국 정도가 아니라, 그냥 드라마는 MBC였죠. '여명의 눈동자'나 최진실, 최수종이 나오는 드라마 '질투'를 제 손으로도 만들고 싶었어요.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면서 드라마 제작 현장을 자주 찾으며 환상이 깨지더군요. 제작 현장이 정말 살벌해요. 고성을 지르는 감독, 혹은 촬영 감독. 연기가 별로여서, 갑자기 과일 트럭 스피커 소리 때문에 촬영, 또 촬영. 무엇보다 잠을 너무너무 못 자요. 이틀간 여섯 시간 자고 현장에만 있는 것도 봤어요. 편집도 촬영 못지않게 험난하죠. 다큐멘터리 조연출이 편집하다가 사망한 일도 있었죠. 제작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고, 그걸 견뎌가면서 프로그램이 나오는 거였더라고요.


영화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는?


제 꿈 중에는 영화감독도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예술 종합 학교에 시험을 쳤어요. 같은 과(국문과)에 저 말고도 여럿이 원서를 내더군요. 저만 떨어진 거예요. 기가 막혀서. 왜죠? 제가 뭘 잘못했나요? 내가 떨어지면 누가 붙어? 준비는 하나도 안 하고, 거만함만 가지고 시험장에 갔었죠. 나름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초고 작업도 해봤으니, 어리바리 초짜들과는 다른 몸이었으니까요. 그런 인재를 떨구더라고요. 그때는 억울했고, 지금 은 한국 예술 종합학교가 현명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붙었다면 영화 현장에 있었겠죠. 객관적으로 돌아보건대 오래는 못 했을 거예요. 제작사의 간섭, 현장에서 스태프들과의 관계, 배우들과의 조율 등을 잘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방송국 PD나 영화감독은 욕과 담배를 달고 살았어요. 배우들 연기를 뽑아내는 것도 착한 감독은 힘들어요. 아니다 싶을 때 계속 찍으려면 집요하고, 독해야 해요.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런 감독은 배우들 연기를 100% 뽑아낼 수가 없어요. 네, 저는 착하진 않은데, 독하지도 못해요. 그런 현장에서 원하는 장면을 위해 스태프들을 밤새 잡아두는 것도 저는 못 해요. 멘털이 그 정도가 안 돼요.


장기 여행? 그건 노는 거 아닌가?


맞아요. 제가 남미로 14개월 떠난 건 완벽한 도피였어요.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도피해도 되죠? 욕먹을 일은 아니죠? 머리털이 손바닥만큼 빠지는데도 그냥 붙어 있어야만 했나요? 심각한 원형 탈모는 제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와요. 어떻게든 도망가야 한다. 그 마음뿐이었어요.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14개월간 남미를 떠돌았지만, 몸만 멀쩡했다면 한국에서 뭐라도 했겠죠. 그렇게 길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이거 재밌는데? 집에 돌아갈 항공권을 취소하고 오래, 더 오래 머물게 돼요. 우리는 보통 꿈을 미리 정하잖아요. 현장에서 어느 정도 부딪혀 보지도 않고요. 의대생들은 그런 점에서 정말 딱하다고 생각해요. 스무 살에 현장에서 어떤 일로 하루를 보내는지도 모른 채 전부를 걸잖아요. 중간에 포기요? 어떻게 공부했는데요? 쏟아부은 학비만 1억이 넘는데요.


저도 모르는 제 안의 역마살은 그렇게 발견됐어요. 잡지사 일에 지쳐서 글은 안 쓰겠다 다짐했지만, 저절로 글을 쓰게 되더군요. 그 황홀한 경험을 혼자만 담고 사는 건 범죄니까요. 떠돌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지금의 삶에 만족해요. 스무 살의 저라면 지금 제 모습이 불만이겠죠. 욕심도 많고, 세속적인 가치가 최고였던 스무 살이었으니까요.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고요. 현실적으로 능력이 안 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길에서의 시간이 너무 좋기도 했어요. 그 순간들을 다 겪고 나니까 예전의 꿈은 매력적이지가 않았죠. '여우의 신포도'이기도 했어요. 못 먹을 포도, 시다고 불평할 정도의 권리는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는 삶도 자신 없더라고요. 이제는 무엇이 되겠다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자발적인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일, 무의미하게 견디지 않는 일,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일이면 돼요. 앞으로도 나 자신이 파괴되지 않는 선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려고요. 누군가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주는 힘을 믿어요. 우리는 공기로 숨을 쉬는 것 같지만, 우리를 지탱시키는 힘은 '이유'죠. 내가 존재해도 될까? 내가 존재하면 누군가는 더 기쁠까?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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