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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pr 27. 2019

천상의 맛 마사만 커리, 박민우가 광주에서 완성

요리 천재가 겸손하게 씀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마사만 커리를 만들어 주겠노라고 했다. 원래는 목포 해양대학 강연이 있던 날 해주기로 했다. 약속은 약속. 약속을 지키려면 이틀은 더 광주에 머물러야 한다. 내가 필요할 때마다 방을 내준 신혼부부다. 현관 비번까지 다 까고 버선발로 나를 환대했다. 글 쓰는 작자답게 예민하다. 나를 불편해하는 낌새가 갯벌 세발낙지 기지개 정도여도 눈치챈다. 내 책의 열혈독자라고 해서, 방콕에서 식사를 함께했다고 해서, 내 집처럼 머무는 거 아니다. 천진함 혹은 허술함의 모호한 지점에서 발랄하다. 편 조서방은 웃을 때 엽기 토끼가 된다(엽기토끼를 검색해 보시오)

아내는 차분하게 수더분. 스스로 일본 달걀귀신을 닮았다고 자랑한다. 아프리카 팔라. 혹은 통영의 고라니인 내가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마사만 커리를 해주겠다 했지만 둘은 친정어머니와 제주도로 떠났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여행이었다. 통영 RCE에서 머물던 때였다.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주인 없는 욕조에서 반신욕만 하고 나왔다. 다음에 꼭 해줄게. 진주에서 광주까지 2시간 거리.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회. 재료를 다 사다 놓았다는 어마어마한 거짓말은 광주 유스퀘어에서 들통난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그 시점을 기다렸다가 카톡을 날린다.


 이따가 재료 사서 들어 갈게요. 쉬고 계세요.


이게 무슨 소리? 우렁 각시가 되어 퇴근길 신혼부부를 놀래 줄 참이었다.


 열 시 이전에만 먹어요 ㅎㅎ.


이런 무근본 ㅎㅎ는 또 뭐야? 밥은 밥때 먹어야지. 무릇 카레는 재료가 뭉근히 우러나야 한다는 상식도 없는 것들. 요리에 요자도 모름서 어디서 요리 좀 한다고 거들먹거리지 마시요잉. 이미 유스퀘어 광주 터널. 반신욕이나 해야지 싶은데, 농부 마트가 저 멀리서 반짝반짝. 광주 신도시 산운 단지 대표 마트 농부 마트. 이마트, 롯데마트에 손님 다 뺏겼을 농부 마트에 작은 도움이고자 한다.


여간 억울한 게 아니지만 닭 한 마리, 고구마(감자 껍질 벗기기 싫다. 통째로 넣겠다), 양파, 우유를 샀다. 우유는 잡내만 없앤다. 진주 최 선생님이 주신 차비가 있다. 사치가 허락된 날. 그래도 서울우유 비싸니까, 빙그레 굿모닝 우유로. 빈집 요리 시작. 인터넷으로 진즉에 주문해 놓은 코코넛 밀크와 마사만 커리 페이스트를 찾아낸다. 500ml 코코넛 밀크 반만 팬에 끓인다. 수분이 날아가면 코코넛 누룽지가 된다. 마사만 페이스트 70그람을 누룽지와 볶는다. 피시소스도 같이 끓여준다. 증발하면서 감칠맛이 폭발한다. 우유 샤워 닭, 껍질 채 고구마, 양파도 넣고 남은 코코넛 밀크와 물 500ml를 붓는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인다. 은근은근 한 시간을 끓인다. 으깬 타마린드를 두 스푼 넣어준다. 타마린드는 동남아시아의 식재료. 곶감과 비슷한데, 엄청 시다. 느끼함을 잡아주는 1등 공신. 근본 없는 광주 커플은 오뚜기 카레처럼 후딱 나오는 줄 아는 마사만 커리다. CNN 선정 세계 1등 맛이다. 태국 음식이니까 태국이 더 맛있지 않나요? 식은 마사만 커리뿐인 태국에선 절대 이맛 불가. 뜨끈하게 내놓는 내 마사만 커리가 우주 1등. 뒤늦게 닭 들고 등장한 광주 부부. 내가 깜빡한 땅콩 사왔구먼. 봐줄게, 땅콩도 넣고 좀 더 푹 끓인다. 난리가 나부렀스. 광주에 마사만 커리집을 열까? 직장생활 피폐해진 남녀가 미래의 돈보따리에 밥을 몇 그릇씩 먹는 거여. 고구마를 넣으니께 설탕을 덜 넣어도 깊은 단맛이 철철, 나도 기가 막히다. 올리고당 약간 넣긴 했지만 대세 단맛은 고구마. 남의 빈집에서 두 팔 걷어붙이고 '사랑'으로 해낸 요리. 짜증도 약간, 아주 약간만 났다. 나는 커리 천사, 커리 성자. 평생 눈에 밟히는 맛인디, 이 맛을 따라 한다고 낼 수 있을까? 글도 잘 써, 요리도 잘해, 얼굴도 잘 생겨. 이해가 안 되면 외우시오. 박민우는 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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