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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나라 사람이 싫어요. 내 편견의 가벼움

우리의 혐오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걸요?

by 박민우

중국 사람 좋아하시나요? 열 중 여덟은 싫다고 하겠죠? 일본 사람 좋아하시나요? 역시 열 중 여덟은 별로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우리의 좋고, 싫음은 역사에 기인하죠.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우리가 아니니까요. 당하면서도 오냐오냐하면 호구죠. 잘 입고 다니던 유니클로 재킷은 장롱 깊이 넣어뒀어요. 십 년 전에 산 거지만, 욕먹을 것 같아서요. 일본 친구 집에 방문하게 된다면, 입도 뻥긋하지 말아야죠. 코로나 때문에 갈 수도 없지만, 코로나가 아니어도 이 시국에 일본 여행이라뇨?


사람이 간사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남들이 대놓고 욕해도 멈칫하게 돼요. 일본인 친구 집에서 오래 머물 때, 친구 아버지가 마트에서 먹을 걸 한 보따리 사서 문 밖에 걸어 놓고 가시더라고요. 저 먹으라고요. 제 블로그 글을 읽고 싶으셔서, 프린트해서 번역을 맡기신대요. 제 입에서 일본 놈은 믿지 말아라. 이 말이 어찌 쉽게 나오겠어요? 가시방석이죠. 한국을 혐오하는 일본 놈들 개자식 맞고요. 식민지 역사를 반성할 능력조차 없는 일본 정치인들도 욕이 아까운 놈들 맞아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 사람들은 별개더라고요. 나라대 나라, 인간대 인간. 통일성 있게 적대적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 나라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중국인도 비호감이었죠. 막상 중국 가면 좋은 사람 많던데요? 인터넷과 뉴스로만 접했던 중국인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다른 한국인들 만큼 중국 사람 못 미워하겠어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어떻게 보일까요? 좀 배웠다는 외국 친구들이 한국 가는 걸 그렇게 무서워하더군요. 휴전국이라 이거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준전시 국가니까 언제 미사일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거예요. 한국으로 발령나면, 가족들이 그렇게나 말렸대요. 물론 지금 이야기는 아니고, 몇 년 된 이야기예요. 한국엔 어디나 군인이 있고, 삼엄할 줄 알았대요. 늘 북한의 침입을 두려워하면서요. 이게 바로 뉴스고, 정보예요. 한국인이 보기에도 정확한 인식인가요?


코로나 덕을 본 게 있다면, 선진국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거죠. 우리에게 유럽은 어떤 곳이었나요? 미국은요? 풍요롭고, 완벽한 나라였죠.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자들은 나눔과 공존의 가치를 잘 알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아래 큰 제제 없이도 잘만 굴러가는 나라인 줄 아셨죠? 저축률이 낮은 건, 돈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죠? 뚜껑을 열어보니, 정교하게 도덕적으로 무장한 나라는 아니었어요. 마트에서는 휴지부터 동이 나고, 남은 물건들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고, 먹을 것들이 충분해도 사재기를 하고요. 마스크를 쓰라고 했더니, 총부림, 칼부림 사람을 죽여요. 이런 정보 역시 뉴스로 접하는 거죠. 막상 그 나라에 가면 상식적인 사람이 더 많을 테고, 코로나가 어디에 있나? 언뜻 멀쩡하고, 안정적으로 보일 거예요.


에이즈 초창기 때는 자살하는 보균자가 증상으로 죽는 환자보다 더 많았대요. 너무 무서우니,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거죠. 침을 뱉어도 옮긴다고 믿었으니까요. 목욕탕에만 들어와도, 전염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가족들조차 기겁하고, 멀리 했으니까요. 전설의 농구 선수 매직 존슨도 초창기 감염자 중 한 명이었죠. 지금 그는 LA 다저스 구단주죠. 과연 몇 년이나 살 수 있을까? 왜 병균 덩어리가 올림픽까지 출전하나? 이미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어요. 여러분이라면 견디실 수 있겠어요? 가족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맞지 않나? 이 생각부터 들지 않을까요? 가족들까지 병균 취급받을 게 뻔한데요? 지금 매직 존슨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됐어요. 언제 죽나? 제발 죽어라. 이런 시선들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어요. 세상의 정보에 전적으로 휘둘리지 않았던 덕이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오도 뉴스의 씨앗에서 발아한 거예요. 인터넷 제보로 형성된 거죠. 하지만 그런 정보는 세상의 일부를 보여주는 스케치 정도예요. 전부를 이해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돼요. 어느 나라에 오래 머물면, 그 나라를 혐오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유학파들은 자신이 공부한 나라에 대체로 우호적이죠.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앞뒤 안 재고 베푸는 인연을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정치적으로 분명한 소신이야 있어야죠. 때리는데 맞고만 사는 등신은 되면 안 되죠.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다 쓰레기다. 극단적인 생각은 틀렸어요. 다름으로 존중받을 만한 생각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증오를 녹일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많고 많아요. 증오를 너무 당당하게 과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요. 조종당하지 마세요. 중심을 잡는 건 생각보다 어려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는 모두가 죽으니, 세상 모든 고통은 생의 부분집합일 뿐이죠. 지금의 어려움도 부분집합입니다. 부분집합에 전부를 걸고, 절망하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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