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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생긴 아이가 자라는 법, 제 이야기 아닙니다만 흥!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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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못 생기지 않았어요. 예쁜 아이가 아니었을 뿐이죠. 어머니가 늘 예쁘다고 하셨으니 믿었어요. 진짜일까? 의심하면 떡이 나오나요? 밥이 나오나요? 우리 집은 미아리 대지극장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했어요. 술집 여자들이 형을 그렇게 예뻐했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안아볼 시간이 없었대요. 돈까지 쥐어줘서 보내더래요. 얼마나 예뻤으며 그랬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는? 어머니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다정하게


-너는 율 브리너였단다.


'왕과 나'에서 왕으로 나왔던 빡빡머리 배우요. 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바리깡으로 빡빡 밀었대요. 문어 같은 아기였던 거죠. 어머니 등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대요. 그래서 다리가 약간 안짱다리예요. 업혀만 있어서, 무릎 아래가 바깥쪽으로 휜 거죠.


형은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요. 친구들이 빨리 나오라고 성화니까요. 왜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까요?


-너는 졸라 못 생겼어. 창우는 잘 생겼는데


형 친구가 앞뒤 없이 그러는 거예요. 이런 언어폭력이 다 있나요?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모욕감과는 다른 충격이었어요. 묻어뒀던 의심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랄까요?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비명을 지르며 울었던 여자 아이, 들어오지 마! 큰집에서 딱 형까지만 사촌 형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 형이 옆집 튜브 수영장에 초대되어 물놀이를 할 때, 문틈으로 훔쳐보며 엉엉 울었던 나. 못 생겨서였어요. 뒤통수는 납작하고, 옆통수는 가로로 긴 역삼각형 오징어였죠. 피부가 모차렐라 치즈처럼 쭉쭉 늘어나요. 여덟 살 아이가 팔자 주름 있는 거 못 보셨죠? 네, 제가 그 힘든 걸 보유한 아이였어요. 눈과 눈 사이는 지나치게 가까워서, 이목구비가 중앙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요. 떡판, 넙죽이. 이런 말들을 듣고 자라면, 위축될 수밖에 없죠. 공주처럼 예쁜 사촌 누나가 형이랑은 놀아줘도 나랑은 안 놀아줘요. 형은 주일학교에서 다윗 역할을 할 때, 저는 손뼉 치는 아이로 만족해야 했어요.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우리 반에 못 생긴 애들이 좀 많았어야죠. 콧물이 얼굴에, 옷소매에 덕지덕지 묻은 애들 천지였어요. 반장들은 어떻게 콧물 자국 하나 없을 수가 있을까요? 손등이 하나도 안 틀 수가 있을까요? 제가 재용이의 가방을 들어준 것도, 제가 못나서였죠. 3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었어요. 2층 양옥집에 살았죠. 어머니는 양장점 사장이었고요. 가방을 들어줘야만, 저랑 놀아줄 것 같은 거예요. 굳이 제가 들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들어줬더니, 짜장면을 시켜 주더라고요. 2층 양옥집 거실에서 반장과 단 둘이 짜장면을 먹은 거예요. 온전히 한 그릇을요. 너무 영광스럽고, 맛있는 시간이었죠. 여자애들이 모두 재용이를 좋아했지만, 그것조차 기뻤어요. 넘볼 수가 없으니, 샘도 나지 않았죠.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지금은 확실히 특유의 못생김이 사라졌어요. 잘 생기진 않았지만, 누추한 느낌은 없어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요. 성장하면서 외모는 바뀌니까요. 서른 살을 기준으로 외모가 조금씩 비중이 줄어들어요. 치명적으로 잘난 사람을 봐도, 잠시 감탄하고 말아요. 저렇게 생기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 생각은 진즉에 사라졌어요. 잘 생겼다고, 생의 고통이 다 비켜갈까요? 전혀 아니라는데, 전재산을 겁니다. 월등한 외모도 늙으면서 평균으로 가요. 별로였던 아이가 근사하게 늙기도 하고요. 젊을 때 외모 평생 간다고요? 전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도 있죠. 아닌 사람도 많아요. 나이 마흔 이후엔 살아온 인생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지도 않아요. 먹고살기 힘들면, 힘듦이 드러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굳이 인격과 연관시켜야 해요? 우리의 겉모습은, 껍질은 끊임없이 변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을 때 꽃을 피우는 건 어때요? 음악을 하는 사람, 명상과 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곱게 늙더군요. 내쉬고, 들이키는 숨에 노화의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죠. 함부로 화내고, 불평하면 에너지가 가파르게 소모되는 것 같아요. 천천히, 모든 감정을 천천히 소모하면 우리의 표정도, 생의 활력도 더 오래 유지될 거예요. 예쁜 할아버지, 예쁜 할머니 되자고요. 외모 후반전, 이왕이면 지지 말자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삶의 바다에서 모두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어요. 파도가 거세다고, 파도 바깥을 부정해서는 안 돼요. 우리가 보는 좁은 시야로, 절망하지 말자고요. 파도 바깥이 있다는 건, 동의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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