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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먹어버린 겨울, 참 잔인한 연말

살아남는 게 전쟁이에요. 우리는 전쟁통에 있어요

by 박민우

스타벅스에 있어요. 방콕은 수치상으로는 코로나 청정국이라서요. 디카페인 커피만 몸이 허락해서 굳이 스타벅스로 와요. 줄기차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네요. 스타벅스 아니었으면, 크리스마스도 없을 뻔했어요. 사실 저에겐 크리스마스는 이제 없어요. 외떨어져서, 불교 국가에서 글 쓰며 살고 있으니까요. 스타벅스의 캐럴이 위로가 돼요. 카페라도 올 수 있어서 감사하죠. 이런 호사도 언제 끝날지 몰라요. 태국도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통금시간이 있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외국인 출입을 꽁꽁 막아서, 그럭저럭 숨은 돌리고 있어요. 방역이 성공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태국에서 출국한 사람들이 일본에서, 미얀마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됐으니까요. 태국 정부는 없다고 하고, 출국하면 환자가 나오고. 각자가 조심하는 수밖에요.


어제 한국은 함박눈이 쏟아졌다면서요? 그래도 눈은 눈인지, 들뜬 사람들이 SNS로 사진들을 올리더군요. 이 더운 나라에서, 내 나라의 눈 소식은 기묘해요. 시원한 눈을 만져보고 싶고, 보고 싶어요. 사진도 찍고, 작은 눈사람도 만들고요. 한국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감금과 다름없는 삶이 또 시작됐어요. 매달 월세를 내야 하는 가게 주인들은 얼마나 피가 마를까요? 분당에서 배달 전문 파스타집을 한 적이 있어요. 경기가 안 좋아서, 여름이라서, 겨울이라서, 방학이라서 장사가 안 됐어요. 주말이니까, 방학이니까, 연휴니까 매출이 또 반짝해요. 종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손님이 또 많았어요. 비를 보면서, 눈을 보면 생각나는 메뉴였나 봐요. 매출이 떨어지는 건 쉬운데, 오르는 건 정말 느려요. 찔끔찔끔 속이 터져요. 주문이 없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고문의 시간이죠. 월세는? 직원들 월급은? 은행 대출은? 담배를 끊을 수가 있어야죠. 침묵의 텅 빈 시간엔 담배만 피워댔죠. 지금도 가게를 하고 있었다면 담배는 못 끊었을 거예요.


요즘 같은 때 식당들은 호흡기만 단 상태죠. 인터넷도, 온라인 마케팅도 모르는 옛날 식당은 눈 뜨고 천천히 말라가고 있어요. 입소문으로 늘 바빴는데,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들마저 서서히 침몰하고 있죠. 설마!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최면이 되어서, 넋 놓고 조금씩 가라앉고 있어요. 포박된 거인이, 달팽이 속도로 질식사하는 게 제 눈에도 보여요. 누구보다 성실했는데,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는데 비극의 주인공이 됐어요. 이 와중에도 온라인 세상을 이해한 사람, SNS 전문가는 매출이 올라요.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거예요. 젊은 손님 필요 없다.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던 주인장들은 완전히 포위됐어요. 호흡기로 아슬아슬 연명하는 중인데, 호흡기까지 떼 갈 판이에요. 자비 없는 코로나가 크고 작은 가게들을, 대형 마트들을 하나씩 파괴하고 있어요.


어차피 와야 할 변화가 앞당겨진 건지도 모르죠. 살아남기 위해선, 새로운 세상을 읽어야 해요. 낯설고, 귀찮더라도요.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으니까요. 코로나가 수습이 돼도, 새로운 바이러스의 공격이 없다는 보장이 없어요. 셀프 격리의 문화는 지속될 거예요. 집에서 외떨어져서 최대치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해요. 집안에서 캠핑을 하고, 파티를 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필요한 것들은 여전히 많을 거예요. 세상 참 공짜 없어요. 욕심 없이 살고 싶은 조촐한 소망도, 발버둥 쳐야 이룰 수 있어요. 캐럴만 들어도 괜히 눈물이 나요. 쌓인 눈이라도 보면서, 잠시라도 시름을 덜기를 바랄게요. 올 겨울은 참 길고, 느릴 거예요. 하지만 봄은 분명히 오니까요. 불변의 진리로 위로를 삼으며 견뎌봐요. 2020년 겨울 속에 있어요. 2021년 반가운 뉴스를 기다립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제 죽은 사람이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뭐였을까? 매일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이 하지 못한 일들, 하고 싶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하루를 씁니다. 우리 죽지 않았으니, 살아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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